톨스토이는 이 장에서도 예술의 내용이 점점 빈약해지고, 형식이 더 알 수 없게 된 것을 상류 계급 예술이 민중예술에서 이탈한 결과라고 정리한다. 오죽하면 형식은 더욱 졸렬하여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예술은 위조(僞造) 예술로 바뀌었다고 한탄하기까지 한다. 이런 원인을 예술의 본질에서 찾고 있는 톨스토이는, 벅찬 경험을 전해주고 싶은 욕구에서 탄생했던 민중예술처럼 부유 계급의 예술에서는 진정성이 아닌 오락에서 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안일과 호사 속에서 나날을 보내는 부유 계급 사람들은 예술에서 끊임없는 위안을 찾으므로, 이 욕구를 채우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톨스토이는 예술이 아무리 저급한 종류의 것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상류 계급의 욕구를 위해 예술가들은 모조품을 만들어내는 법을 생각할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고안된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표절(剽竊)이요, 둘째는 모방이며, 셋째는 속임수, 넷째는 흥미다.
이에 대한 상세한 예시와 설명은 이 장 내용 전체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톨스토이는 이런 예술의 변칙적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다고 생각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표절에서 톨스토이가 주목하게 된 것은 전설이나 구전, 고담(孤潭) 따위에서 시적 인물이나 대상으로 여기는 것들이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그 대상들이다.
소녀, 무사, 목동, 은자, 천사, 별의별 모양을 한 악마, 달빛, 번갯불, 산, 바다, 심연, 꽃, 긴 머리카락, 사자, 새끼염소, 비둘기, 꾀꼬리가 있다.
톨스토이가 이런 대상들을 차용한 작품을 표절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가 고정관념에서 시적 이미지로 떠올리는 것들이 인간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솔한 태도와 교훈, 감동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그런 대상들로만 이미지를 만들어 둔갑시키는 차용적인 행태를 비난한 것으로 보인다. 시적 이미지는 그저 아름다운 대상으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더군다나 전형적인 인물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빅토르 쉬클로프스키가 주창한 예술의 속성 중 하나인 ‘낯설게 하기’를 통해 지각을 회복시키는 예술이 아닌 것에 반감을 가졌던 측면이 아닐까, 유추해 볼 수는 있겠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서 예술의 공통된 속성을 추출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모방에 대한 톨스토이의 견해는 그것이 ‘진술하거나 묘사하는 대상을 세밀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고 규정한다. 이를테면, 장편 소설이나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행동에 대한 세밀한 묘사처럼 극(劇) 예술에서 회화(會話)를 모방할 뿐 아니라 목소리와 몸짓, 시늉까지도 묘사한다고 일갈하고 있다. 사진과 그림의 관계, 음악의 리듬과 음향도 모사(模寫)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면 현대 대부분의 예술은 설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속임수와 관련된 항목에 이르는 장에서는 언어, 미술, 음악 분야의 예술에서 자행되고 있는 기만의 서사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언어에서는 ‘성욕을 돋우는 상세하고 에로틱한 묘사나 공포감을 일으키는 고뇌와 죽음의 상세한 서술’ 과정을 비판하기도 하고, 그림에서는 빛과 무서운 것을 묘사하는 것, 극에서는 ‘여자 육체의 노출, 단말마의 고통을 소상히 전달하게 하는 살인’과 같은 다소 자극적인 소재에 의탁한다고 꼬집고 있다. 또한 음악에서는 ‘하모니나 템포나 리듬을 악상(樂想)에 따라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과는 전연 다르게 하여 청중을 놀라게 하는 방법’과 같은 것을 속임수로 정의하고 있다.
흥미라는 단락을 보면, 이를 ‘예술 작품에 부수하는 지적인 관심’이라고 정의하며 다소 특이한 지역, 이를테면, 이집트나 로마 등과 같은 곳에서의 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흥미를 끌려고 시도한다고 비판한다.
톨스토이는 위에서 언급한 표절, 모방, 속임수, 흥미와 같은 키워드로 예술을 참칭 하는 것은 ‘예술의 가치 표준을 이루는 것이 아닐뿐더러 예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시적인 것이란 ‘예술가 자신이 체험한 감정을 전하는 것’이지 타인의 예술에서 빌려온 것을 왜곡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 작품은 ‘완전성(完全性)이나 유기성(有機性)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렇지 않은 ‘차용물(借用物)의 경우에는 자신이 그 작품에서 얻은 감정을 그냥 전달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을 예술이라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다시 한번 속임수와 흥미에 대해 장광설을 풀며 그와 관련된 내용을 대한 예시를 들고 그런 과정이 얼마나 몰이해에 기반한 것인지 주장하고 설득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해서, 예술의 어느 분야에서든 미리 마련되고 고안된 처방에 의하여 예술의 모조품이 만들어지고, 현대의 상류 계급 사람들은 이것을 진정한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귀결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술의 가치를 정면에서 비판한 것이다. 또한 소위 상류층의 고급 예술이라는 불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얼마나 예술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것인지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