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그렇게 임테기가 내 손으로 들어왔다. 5일 배양 눈사람 한 개와 감자 한 개를 이식했는데 빠르면 당일 착상 늦어도 다음날 착상이라고 했는데 5일 차에는 단호박 한 줄이 나왔다. 지난번 동결 1차에는 5일 차에 두줄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깨끗한 임테기를 보고 있자니 실망이 앞섰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날 아침 다시 눈을 뜨자마자 임테기를 했다. 오!! 뭐가 보인다!! 착상을 했나 보다!!
후하다는 원포와 박하다는 스마일 임테기 두 회사 것을 구비해놓고 매일 아침 임테기를 한 후 공책에 한 장 한 장 붙여 나가기 시작했다. 1,2차 피검 사날 안정적인 수치로 피검사를 통과했고 지난 차수에 출혈이 있었던 때에 이번에는 아주 무사히 잘 지나갔다. 하지만 5주가 들어서니 살짝 출혈이 보인다. 그래도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출혈이 멈추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었다. 점점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쌓인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침대에 누웠다. 출혈이 날 때 병원에 달려가 봤자 병원에서는 초음파를 보는 것 외에는 크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내 출혈은 멈췄다.
5주 차에 아기집과 난황을 보고 6주 차에 심장 소리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이제 나도 드디어 임산부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초음파실의 선생님의 반응이 심상찮다. 이리저리 초음파를 움직이며 보더니 아기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초음파를 보고 나서 진료실 앞에서 대기를 하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시험관 맘 카페를 들어가서 검색해보니 6주에 아이가 안 보여도 잘 진행된 케이스가 있지만 대부분 예후가 좋지 않았다. 대기실에 앉아 이미 눈물 콧물 다 쏟은 채 진료실을 들어갔다.
"아이고! 아기가 안 보이네요! 우리 일주일만 더 시간을 줄게요! 그런데 혹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다음 주에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어요. 마취를 해야 하니 전날 12시부터 굶고 오시되, 아기가 생겨서 잘 진행될 수도 있으니 일단 다음 주에 오세요!"
"선생님.. 이렇게 늦게 아기가 보여도 잘 된 케이스가 있나요?"
"그럼요! 물론 있어요!"
답정너와 같은 질문을 한채... 나는 밖으로 나와서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집으로 왔다. 아가가 하루 만에 뿅 생기기도 한다고 해서 나는 병원에 가기 전에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한번 더 보기로 했다. 난임 병원에 다녀온 지 4일 후 할아버지 나이의 지긋한 동네병원의 원장님을 만나 뵈었다.
"아기가 보여야 되는데 안 보인다고 했다고? 어디 보자~"
"지금 막 생긴 것 같은데? 여기 아기가 보이는데 너무 작아서 심장소리는 지금 못 들을 거야"
기적적으로 7주 0일에 아기가 생겨 있었다. 우렁찬 심장소리도 들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아기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기뻤다. 그리고 7주 3일에 난임 병원으로 갔다. 아기가 생겼다는 건 알았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12시부터 쫄쫄 굶은 채 병원으로 갔다. 초음파 실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초음파 선생님은 당황하며 왜 우세요? 무슨 일이 있으세요?라고 물어보셨다.
"저.. 끅끅... 오늘 끅... 소파술이 끅끅.. 예정되어 있어요 끅.... 심장 끅끅 소리가 끅 안 들리면.... 오늘 끅끅 수술해야 된데요"
"어디 봅시다~~ 어머 심장소리 잘 들리는데요!"
하며 선생님은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다!!! 그리고 평소에는 한두 장만 출력해주시는데 오늘은 울고 있는 내가 불쌍했는지 6장이나 사진을 뽑아주셨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ㅠㅠㅠ"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는 마음이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는가...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도 같이 기뻐해 주신다.
"아가가 이렇게 늦게 생겨서 엄마 속을 썪였네~~~ 심장 잘 뛰니까 다음 주에 봅시다!"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그리고 또 긴긴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출혈이 시작되었다. 펑펑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출혈이 있고 멈추고 또 출혈이 있고 멈추고 가 반복되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왠지 잘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서였을까... 병원에 가기 전날 밤 12시부터 자진해서 금식을 했다. 그리고 간 병원...
"자 이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어볼게요"
라고 하시며 초음파 기계를 조작하셨는데 초음파 실에는 적막만 흘렀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옷을 입고 나오려는데 초음파 선생님께서 "그래도 이 사진 드릴게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마지막 초음파 사진을 주셨다.
진료실에서 선생님은 안타깝지만 아무래도 심장이 뛰고 이삼일이 안돼서 심장이 멈춘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출혈이 시작된 날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아기의 유전자 검사를 해보는 것을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당장 제일 빠른 수술방을 알아봐 주셔서 오후 2시에 수술이 진행되었다.
내가 어쩌다 소파술까지 하게 되었을까...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속상할 겨를 조차 없이 나는 수술대에 누웠고 숫자를 셋 세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회복실에서 눈을 떴더니 생리통과 같은 통증이 있었다. 난자 채취를 한 것인지 소파술을 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허무했다.
소파술을 마친 후에 병원 1층의 커피숍에서 아이스 카페 라테를 사서 한잔 들이켰다. 속까지 시원해지는 것이 정신이 바짝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남들은 소파술 후 마치 출산을 한 것처럼 바람도 피하고 미역국으로 며칠을 보낸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호사를 누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사람 북적북적한 백화점 푸드코트에 들려서 회덮밥을 사 먹었다. 초고추장을 싹싹 비벼서 한 그릇을 끝냈다. 사는 게 뭔가 내가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 일은 왜 이렇게 안 이루어지는 것인가... 임신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신은 계신 것인가... 모든 게 야속하게 느껴지지만 나는 그래도 씩씩하게 이 터널을 다시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