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임신 8주 차에 소파술을 한 후 일주일 뒤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수술 후 일주일 뒤 꼭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길래 시간을 내서 왔건만 오늘은 초음파도 보지 않고 진료실에 간단하게 몇 가지 질문과 답변만 오갔다.
"출혈은 어떤가요?"
"이제 조금씩 멈춰가고 있어요."
"다른 아픈 곳은 없으시고요?"
"네.."
"태아 유전자 검사를 맡긴 부분은 한 달 뒤에 나오기 때문에 아직 결과가 안 나왔어요. 생리가 시작하면 다시 방문하시고 혹시나 다다음달 이 날짜까지 생리가 없다면 꼭 병원에 방문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번엔 PGT-A라는 이식 전에 실행하는 배아 유전자 검사를 해보고 통과 배아를 이식해 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아... 카페에서만 보던 PGT-A 이야기가 이제 내 이야기가 되는구나...
이번에는 결승선에 골인할 줄 알았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다시 출발선에 서있자니 프롤루텍스 주사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난임병원에서 프롤루텍스 주사 가방을 들고 있다는 것은 곧 이식을 앞두었거나 이식에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결승선 직전에 있는 그 사람들의 손에 들린 가방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비행기 표를 끊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남편이 있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는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공항 가는 길이 하나도 설레지 않는 길이 된 지는 오래가 되었다. 남편에게 카톡을 한다.
"병원 잘 다녀왔어. 아직 유전자 검사도 안 나오고 오늘 별다른 건 체크한 게 없네.. 그냥 수술 끝나자마자 들어갈 걸 그랬나 봐. 나 내일 독일 가는 표 끊었어."
"그래 조심히 오고! 얼른 와! 보고 싶다!"
힘들다. 마음이 힘들고 몸이 힘들고 스쳐가는 바람에 눈물이 나온다. 하지만 그 힘들다는 말을 차마 남편에게 카톡으로 할 수는 없었다. 혼자 묵묵히 견디고 있을 남편에게 나의 힘듦을 전가하고 싶지는 않다.
독일로 돌아와 다시 일상생활을 시작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집 앞 산책길을 달리고 친구들을 만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일요일엔 교회를 가고 남편 퇴근 무렵이 되면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거나 유튜브로 맛있는 음식을 해서 함께 마주 보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시간이었지만 낮에 홀로 집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한번 눈물이 나면 멈출 수가 없었다. 울만큼 울어야 눈물이 마를 것 같은데 내 눈물은 끝도 없이 줄줄 나온다. 영영 아가가 찾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애기 없는 살은 상상할 수도 없는데? 남들은 그렇게 쉽게 되는 임신이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한국에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관 카페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읽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던 나의 담당 선생님께서 퇴사를 하신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곳에 병원을 개업하신다고 하셨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이 된 느낌이 들었다. 난임병원을 다니다 보면 선생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다른 병원과 다르게 참 크다. 나는 우리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었던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갈길 잃은 어린양의 신세가 되었다. 일단 정신을 차리고 병원 어플로 들어가서 현재 나의 상황에 가장 알맞은 유명 선생님을 예약했다. 한국에 언제 다시 들어갈지.. 그리고 생리가 언제 시작할지 어플을 보며 고심의 고심 끝에 예약을 마쳤다.
너무 많은 변수가 생겨버렸다.
나의 난임의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