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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코포니 Nov 26. 2024

이별의 풍경은 눈사람이었다

snowman 작업기

행복은 이래저래 잘 잡히지 않으니까, 구체적인 이미지로 자주 바꿔보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다양한 풍경들을 지나쳐 겨울의 하얀 행복 위에서 가만히 멈춰있는 나를 발견한다. 날센 추위와 매서움 속에서의 온기보다 더 따뜻한 것은 없으니.


추위를 핑계삼아 그의 손을 내 주머니로 초대하는 일, 차가운 아침에 핫초코를 만들며 다가올 달콤함에 슬며시 웃은 일, 눈송이를 맛보려고 혀를 내미는 나를 말리면서도 웃으며 사진 찍던 일, 하얗던 풍경을 보고 울렁거리던 마음이 고요로 가득 채워지던 일, 머리 위로 떨어지는 가벼운 무게를 얕보고 우산 없이 돌아다니다가 산타클로스냐고 놀림받고는 베시시 웃던 일. 전부 하얀 눈 위에 조용히 쌓여있다.


그리고 그 중에도 선명하게 빛나는 장면 하나.


말랑말랑한 아이였던 시절, 아침에 일어나니 요란스럽게 눈이 세상을 덮었던 날. 온가족이 더 요란스러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어제와는 다른 비현실적인 하양 속에서 나보다도 훨씬 큰 눈덩이를 두 개 모아 우리는 아주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아빠가 잠시 기다리라 말하더니, 어딘가에서 사발면 용기를 가져와 눈사람의 모자로 씌웠다. ‘그게 뭐야!’ 라고 툴툴거리며 말했지만 입꼬리는 바보같이 올라간다. 사실은 눈사람에게 모자가 생겨서 좋았다. 아빠는 앙큼한 아이디어를 보여주고는 나에게 찡긋거리며 웃는 버릇이 있다. 그 때에도 흰 눈 속에서 찡긋하고 웃었다.


한없이 시시하지만 내가 자꾸 들여다보고 쓰다듬어 예쁘게 윤이 나는 장면.


최근에 겪은 이별의 풍경도 눈사람이었다.


대학생 때 잠시했던 가출, 프랑스에서의 유학생활같은 뒤척였던 몇몇 시절들을 뺀다면, 나는 아빠와 평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2018년 엄마가 죽고 집을 떠나도, 2019년 친오빠가 결혼해서 집을 떠나고도, 나는 아빠와 둘이 살았다. 큰 집에서 조금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아빠와는 늘 함께 같은 집에 살았다.


오래 함께 지낸만큼 무척이나 친한 아빠이지만, 우리들은 놀랍게도 타인이었고, 절망에 서툴렀다. 근본적으로 어긋났고, 절망을 해결하지 않은 채로 살만 부대끼며 있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동안 삐죽거리며 힘들었을 터이다.


내가 울면 울지말라고 버럭 화내던 아빠였기에, 나는 몰래 숨어서 울고, 몰래 음악하고, 몰래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 숨기는 마음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토록 집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올해 우연적이지만, 필연적으로 독립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해받지 못했던 어린 마음은 드디어 집을 나올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들떴다. 해방일꺼야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몰래 이만큼이나 부풀렸다.


그리고 이삿날, 툴툴거리지만 늘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아빠였는데, 자기는 나가있을테니 혼자 짐챙겨서 떠나라며 집을 비웠다.


‘정없네-’사실은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짐도 많지 않았기에 알았다고 했다. 평생을 함께 살았는데 챙겨야할 물건은 많이 없었고 시원섭섭하게 집을 나설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문득 현관문으로 들어올 아빠를 상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아빠가 조금 이해가 되면서. 어울리지 않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펜을 들고 몇자 적기 시작하니, 해방의 마음이 풍선이 터지듯이 뻥하고 사라진다. 뜨거운 눈물이 폭죽의 잔여물처럼 뺨을 타고 끊이질 않는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콧물도 줄줄.


“해방이 아니라 이별이구나, 이별이라니.”


불행이라 믿었던 기억들에 어설픈 행복들이 붙더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계속 굴리다보니 상처를 덮는 것을 넘어서 포동하게 살이 찐다.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 새하얗게 두터워진다. 지나간 시간들이 굴러 지금을 포옹하고 있다.


나만 30년 동안 이 눈덩이를 굴린 것이 아닌가보다. 아빠도 자신의 인생동안 굴려버린 눈덩이를 들고 이 순간에 서있다. 눈덩이 안에는 어떻게든 이 험한 사건들에도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하얀 마음이 있다.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두 마음을 합쳐 눈사람을 만든다. 눈물에도, 비명에도, 허망함에도 녹지않을 그런 눈사람을.


뭐라고 적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드디어 탈출해서 행복할 줄 알았는데, 다른 마음이 요동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저 함께 만들었던 눈사람이 떠올랐다. 아빠의 하얘진 머리랑, 튀어나온 동그란 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1월 말이다. 이제 곧 첫눈이 올 터이다. 누군가와 함께 만들던 눈사람을 떠올리며 다가올 겨울에 설레이기 좋은 날이다. 올해는 또 어떤 말갛고 하얀 행복을 쌓으려나.





< 가사>


Stepping out with a bag

Into the scenery I've dreamed of

Just a few clothes, perfume, a doll

There wasn't much to bring along

Yet, the mold blooming in my heart

Even under sunlight, it hurts

The warm smile that makes my today so difficult


가방을 챙기고 문을 나서요

영원히 꿈꿔웠던 풍경으로

옷 몇가지와 향수, 화장품, 인형

챙길 것도 얼마 없었죠

그런데 마음에 피어난 곰팡이는

햇빛을 받아도 아프기만 해요

따뜻한 미소 때문에 오늘이 어려워져요


The shape of your love doesn’t fit on me

But I can’t help admitting that it's love

The horrifying memory from when I was five

Is from the same place where we built a snowman

The lonely snowman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모양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게 사랑이긴 하다는걸 인정할 수밖에 없죠

5살 때 당한 끔찍한 기억과

함께 눈사람을 만든 곳은 같은 곳이니까요

외로운 눈사람


I thought it was an escape  but it was but it was

I thought it was an escape

but it was but it was


나는 탈출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건 하지만 이건

나는 탈출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건 하지만 이건


You didn't wish for an unhappy daughter

But that's how I was born, I am sorry

The words "I love you" that  felt meaningless before

Today, we rolled them to make a snowman

The lovely snowman


당신은 불행한 딸을 원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렇게 태어났죠 미안해요

의미 없이 느껴지던 사랑한다는 그 말을

굴려서 오늘은 우리 눈사람을 만들어요

사랑스러운 눈사람


I thought it was an escape

but it was but it was

I thought it was an escape

but it was but it was


나는 탈출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건 하지만 이건

나는 탈출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건 하지만 이건




tmi 1 

<마지막 알라뷰의 정체>


아빠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온몸으로 사랑이다. 나를 보면 함박 웃음을 짓고, 내가 하나도 필요하지않는 많은 물건들을 사오고, 나에게 요리해주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먹고 엄지를 척하고 내밀면 찡긋하고 웃는다. 그런데 말로는 부끄러운지 절대 하지 않는다.


엄마가 죽음에 가까워질 무렵, 아빠는 나를 노래방에 데려갔다. 엄마에게 직접 말할 자신은 없으니,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찍어서 엄마에게 전하라 말했다. 아빠는 소주를 연거푸 잔뜩 마시고는 노래 하기 전에 멘트를 꽤나 길게 했다. 거기서도 사랑한다는 말이 입술을 지나 퍼지는 것이 두려운지, 대신 무언가를 잔뜩 웅얼거리더니 ’알라뷰‘라고 꽤나 정확하게 말했다. 그 때의 영상에서 아빠의 목소리를 가져와 마지막에 넣었다. 결국 나에게 이 눈사람이라는 노래는 알라뷰였으니.




tmi2

<쓰잘데기 없지만 중요한 생각>


노래부르는 데에 감을 잡기 힘들었다. 내 주특기인 슬픔을 담기는 싫었고, 3집 때의 매혹적인 캐릭터는 어울리지 않았다. 공연 때도 몇 번 했는데도 묘하게 어떻게 불러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기분이 엄습했다.녹음을 쉽사리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오히려 뮤직비디오 기획을 하고 노래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음악에서 탄생한 이미지가 되려 노래에게 손을 뻗다니.


거창한 건 아니고 나비처럼 노래할래- 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무슨 원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테이크가 빨리 나왔으니 됐다.


나의 음악작업은 매번 이렇게 논리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마법처럼 흘러간다. 계획이나 연습에 환장하지만, 나는 늘 매 작업에서 모든 계획을 무너뜨려버린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되어서 무섭지만 실은 즐기는 중이다. 무너뜨리기 위해서 음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tmi3

<뮤직비디오에도 스노우맨이 있다>


아빠와 나의 관계는, 모든 것을 터놓지 않고 그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티격태격 아무말이나 하는 관계다.

나는 이 장난스러움 마저 뮤직비디오에 녹아있으면 했다. 자신의 아내가 죽어가도 ‘사랑한다’아닌 ‘알라뷰’인 것처럼. 또 올해의 활동 목표는 편안하게 여러가지 해보는 것이니, 장난스럽게 뭔가를 해볼까가 뮤직비디오의 시작이었다.


그림자에게 쫓기는 악몽을 꾼 소녀, 곧이어 소녀의 현실도 점점 기이하게 변화한다. 소녀는 악몽의 실체를 찾아 떠난다. 알고보니 그 실체는 소녀와 만나고 싶던 귀여운 마녀였다. (애석하게도 눈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이 마녀의 장난들 , 자신을 보러와달라고 악몽을 만들고 현실을 뒤틀게 하는 이 행동들에 아빠를 투영한 것 같다. 분명 사랑일텐데, 나에게는 한껏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이한 행동들. 오히려 상처이기도, 두렵기도 했던 이상한 사건들. 그런데 알고보니 조금 서툴고 귀여운 아빠였을 뿐.


나는 이번에 겪은 이별로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만났다. 이별 노래이지만 만남을 그린 이유도 그러하다. 나의 목소리와 아빠의 목소리가 마지막에 만나듯이, 둘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눈덩이 두 개가 만나야 눈사람이 되니까.


snowman 뮤직비디오 장면들





tmi4

<이별이 아닐지도>


아빠랑 이별했다고 거창하게 곡을 쓰고 글도 쓰고 있는데 사실 아빠랑 매주 2번 정도는 본다. 오늘도 함께 불고기에 쌈채소를 곁들여 먹었다.




snowman 노래 보고 듣기 

https://youtu.be/HkQ6kibuniM  


snowman과 함께한 인터뷰 보러가기

https://youtu.be/g8OyzEzUD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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