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아르카나 0. 여행자(In Nenenki)

천년초타로, 부엉이의 여행 (0)

by 천년초

천년초타로의 메이저 아르카나를 여는 '여행자' 카드는 원본인 라이더-웨이트 타로의 '멍청이' 카드에 대응하지만 훨씬 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 카드는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충고와 격려를 동시에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의 중앙에서 날고 있는 우리의 사랑스런 부엉이 '쫄리(Joli)'는 살아가는 모든 이를 대표합니다. 스스로도 어디서 끝날지 모를 여행을 막 시작한 참입니다. 그러나 쫄리가 박차고 날아오른 땅과 멀리 보이는 산들은 삶이라는 이 여행길을 먼저 떠난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녀석에게도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뭔가를 희생할 것을 요구합니다.


앞서 아스테카 전통에서는 땅을 비롯한 이 세계 전부가 신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모든 존재는 희생이라는 세계의 원리에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역사적으로 잔혹한 인신공양을 정당화하는 제국의 통치 논리로 활용된 바 있으나, 이는 희생의 본뜻을 왜곡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희생 원리의 본질은 세계의 모든 존재가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의 시간과 에너지, 생명을 소비하며 죽은 뒤에는 또다른 존재들을 위한 양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쫄리가 땅이 요구하는 희생의 피를 흘려 발 아래 돌들을 붉게 물들인 것은 이러한 원리를 자신의 여행길에서 항상 기억함으로써, 먼저 살아간 이들에게 보답하고 미래를 살아갈 이들을 위한 토양을 마련해 주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행동입니다. 세간에는 희생이라 하면 뭔가 거창한 봉사활동을 하거나 때로는 남의 피까지도 흘려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이 만연해 있는데, 사실 희생은 어떤 일을 할 때 다른 존재를 고려하며 이타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항상 생명은 이러한 희생들 위에 자라나 왔습니다. 이 카드에서도 피를 머금은 땅 위에서 푸르른 선인장 두 그루가 솟아나 그러한 진실을 묵묵히 말해 줍니다.


쫄리의 머리 위에는 녀석의 여행을 지켜보는 별들이 떠 있습니다. 모 일본 만화에 나오는 '포켓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게 아니라 아스테카 전통을 따라 별을 안구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옛날 나와족들은 별들을 신들의 눈이라 생각하여 그림을 그릴 때 안구 모양으로 묘사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신들이 인간들의 감시자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그랬다지만 이 그림에서의 별들은 감시가 아닌 사랑을 의미합니다. 무한한 사랑 그 자체인 신들은 사람들이 의무감이나 욕심이 아닌 사랑에 기반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이 그림의 별들은 삶이라는 여행길을 비추는 그분들의 눈으로서, 인생을 진정으로 즐기는 길이 사랑이란 좌표를 따라가는 데 있음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천년초타로의 여행자 카드는 인생의 의미가 이타적인 사랑에 기반한 희생이라는 점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카드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생명체들과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원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향해 걷기 위해서는 항상 진심 어린 사랑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해야 한다는 걸 알려줍니다.


행동의 중심에 사랑이 자리잡고 있는 한 희생은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여행길의 고된 순간들도 사랑이 있다면 남은 여정을 비추는 든든한 길동무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