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노동일까 치유일까

음식을 주고받는 위로

by Dada

요리를 하는 것은 노동이지만 치유받는 일이기도 하다. 요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노동이다. 가족을 위해서든, 친구를 위해서든, 나 자신을 위해서든. 이 음식을 먹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뭘 좋아하지 않는지, 그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건 뭔지 계속 생각해야 하는데, 그 과정 모두가 사랑의 행위이며 곧 치유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번의 요리를 하기 위해서도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 정하고 장을 보며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야채를 손질하는 것은 어찌나 또 손이 많이 가는지, 그리고 야채를 손질하고 나면 양파껍질, 대파 꽁지, 애호박 꼭지 등 뒤처리해야 하는 잔여물도 많이 발생한다. 요리가 되는 중에는 지금 불 세기가 적당한지, 재료들이 타고 있지는 않은 지, 혹은 설 익는 것은 아닌지, 물 양이 적당한 건지,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하며 한눈팔 사이가 없다. 상당히 귀찮고 수고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몰입하며 요리를 완성한 뒤에는 ‘누군가’ 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음식을 먹으며 누가 미소 지을 때, 내 음식을 먹으며 가족들이 화기애애하게 대화할 때, 어떻게 맛을 낸 것이냐 물어보며 호기심이 넘쳐질 때, 요리를 준비하며 있었던 노고는 잊힌다. 그런 여운이 남는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하는 시간마저 즐겁다.


효율과 성과를 따진다면 이미 완성된 음식을 사 오거나 배달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요리를 할 때는 재료를 정하고, 준비하고,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그 모든 수고로운 과정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귀찮은 과정들을 즐길 때 잡다한 생각들은 잊히고 요리하는 행위로부터 치유받는다. 어쩌면 요리하는 시간도 명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리를 받는 것 역시 ‘치유’ 받는 일인데,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니 내가 요리를 받는 것은 사랑을 받는 일인 건데, 어머니의 음식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한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듯이 나를 생각하며 만들어진 음식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결혼하고 나니 이제야 어머니의 음식을 매일 먹던 시간이 소중했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지금 함께 사는 남편의 요리도 훌륭하다. 언젠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앓아누웠을 때, 남편이 해줬던 전복 요리가 기억이 난다. 퇴근길에 시장에서 전복을 사 온 남편이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부엌에서 전복을 손질하며 팬에 굽던 모습이 귀여워서 감기에 걸린 일이 행복한 경험으로 남았다.

남편이 해줬던 전복 버터 간장 조림(그의 전복 요리에 이름을 붙인다면 대충 이런 이름이 될 것 같다)

관계에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게 종류가 많겠지만, 음식을 주고받는 것이 그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벗어나기 어려운 마음,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