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나바사나와의 전쟁
사람마다 유난히 잘 되지 않는 자세들이 있다. 나에게는 ‘나바사나’다. 나바사나는 엉덩이만 바닥에 대고 발 끝을 머리 높이로 뻗는 자세인데, ‘보트 자세’라고도 한다. 나바사나를 가볍게 하는 사람들은 초보자들도 곧잘 한다. 요가를 시작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나바사나가 정말 어렵다.
며칠 전 요가 수업이 마침 나바사나 시리즈였다. 각종 나바사나 변형 흐름들이 많았다. ‘하기 싫은 자세가 나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하지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제대로 동작들을 따라 하지 못하는 내 몸에 화가 솟구쳤다. 한참 수업이 진행 중인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차마 매트를 박차고 일어나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하는 수련이었다면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물론 집에서 하는 셀프 수련이었다면 각종 나바사나 관련 흐름으로 스스로 수련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머리로는 선생님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오늘 수업에 나바사나를 많이 넣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도대체 왜 나바사나를 오늘 이렇게 많이 하는 것인지 선생님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다들 그럴듯하게 따라 하는 나바사나 흐름에서 나 혼자 허둥지둥하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고 바보 같았다. 요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수련이 아니라지만 사람이 꽉 찬 수련실에서 나 혼자서 아등바등하는 기분은 좋지만은 않다. 나바사나를 하며 아등바등할 때엔 왠지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든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대체 왜 나는 나바사나가 어려운 것인지 고민해 봤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께 질문을 했었다. “선생님, 저는 나바사나를 할 때 꼬리뼈가 아픈데요, 왜 그럴까요?” 선생님은 아주 간단하다는 듯이 답을 해주셨다. “그건 몸을 뒤로 기울여서 그래요. 그렇게 하면 저도 아파요. 몸을 좀 앞으로 가져오세요.” 그때부터는 꼬리뼈에 고통을 덜 주면서 나바사나를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수련이 어려웠던 것은 비단 꼬리뼈 문제만은 아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챗GPT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내가 다리가 무거워서 그런 가? 허리가 길어서 그런 가? 척추가 휘어서 그런 가? 꼬리뼈가 튀어나왔나?’ 챗GPT는 다리가 무겁다면 코어 힘이 두세 배로 더 필요하고, 허리가 길고 요추 전만이 있으면 골반이 뒤로 밀려 꼬리뼈가 눌리기 쉽고, 사람마다 꼬리뼈의 길이나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개인 몸의 구조에 따라 통증이 잘 생길 수도 있다는 답을 줬다. GPT의 말에 따르면 내 신체적 특징이 대체로 나바사나를 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긴 했다. GPT의 말이 맞다면, 통상적인 나바사나를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코어 힘을 보통사람의 2-3배는 더 강하게 하는 거였다.
언제 나바사나를 무서워하지 않고 할 수 있게 될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처음 발가락도 바닥에서 떼기 힘들어하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것이긴 하다. 이렇게 느릿느릿 수련하다 보면 어느 날 선물처럼 나바사나가 찾아올까, 아니면 나바사나 특훈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걸까. “가장 하기 싫은 동작이 나에게 가장 필요한 동작.’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더 기억해 본다.
한편으로는, 어떤 이유로든 매트 위에서 화가 날 때에는 일상에서 화가 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날도 나바사나를 하지 못하는 내 몸에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디선가 억누르고 있던 마음을 마침 나바사나를 절절 매는 나 자신에게 뱉어낸 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