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날 경험하는 따뜻함
살다 보면 ‘흰 쌀죽’을 먹게 되는 때가 있다. 음식을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목 통증이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다. 평소에는 온갖 맛있는 음식을 찾으며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흰 쌀죽’이지만, 흰 쌀죽이 아닌 음식은 모두 목구멍에 고통을 주기만 하는 때가 있다.
흰 쌀죽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쌀을 불리고, 냄비에 물을 적당량 넣고 끓이고 잠시 뜸을 들이면 된다. 하지만 몸이 아픈 때 먹는 흰 쌀죽에서는 왠지 더 향긋한 맛이 난다. 평소에 먹는 음식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향긋함이다. 그런 흰 쌀죽은 보통 ‘나 만을 위해’ 만들어진다. 어릴 때는 엄마가 나를 위해 가족 식사 외에 따로 흰 쌀죽을 끓여주었고, 지금은 남편이 내가 자는 사이에 다음날 먹을 죽을 끓여 놓는다. 그 죽을 먹을 때에는 참기름을 둘러서 고소한 것인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겨서 고소한 것인지 헷갈린다. 아무렴 어떤가, 음식이 고소한 이유가 중요한가, 그 흰 쌀죽을 먹을 때에는 잠시 목이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허겁지겁 해치운다.
최근에도 흰 쌀죽을 먹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심한 목 통증에 (의사 선생님은 인두에 염증이 어쩌고… 그랬다.) 저녁 식사를 겨우겨우 삼켰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바로 흰 쌀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에 먹으란다. 약기운에 초저녁부터 침대에 누워 남편이 죽을 끓인다고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참기름 냄새도 났다. 그렇게 남편이 죽을 끓이는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며 잠이 스르륵 들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괴로운 풍파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아파서 고생한 것보다 고소한 향기를 맡으며 편안하게 잠이 들고, 아침에는 애정이 담긴 죽을 먹은 것이 기억에 남을 거다.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어쩌면 별로 거창하지 않다. 죽을 끓이는 달그락 소리에 사랑이 있었고, 흰 쌀 한 컵으로도 사랑의 맛을 낼 수 있었다. (상대방이 아플 때에는 흰 쌀 한 컵으로 사랑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 걸 수 있다.) 소소한 사랑의 경험들이 쌓여 우리 인생을 덥힐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