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OO
오늘은 내 마흔한 번째 생일이다.
언제나 특별해야 될만한 마땅한 기념일보다는 평소를 특별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생일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학창 시절이나 20대까지만 해도 다가오는 생일 일주일 전부터 너무 기대되고 설레하고 여기저기 축하받는 것을 즐겼다.
커다란 원형케이크에 숫자가 늘 든 말든 상관없는 초를 켜고 한동안은 그렇게 충분히 즐기며 9월을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의 생일엔 나도 태어나느라 고생했지만 우리 엄마가 나를 낳느라 크게 혼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혼하고부터는 신랑 생일에 시어머님께 용돈을 드리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물론 우리 엄마에게도.....
형광등이 노래져야 출산을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힘겹던 40년 전의 오늘일 텐데
엄마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불고기를 하고 계신다.
신랑은 아침에 먹을 미역국을 끓여 주었고 시어머님은 어제 고기 저녁을 사 주셨다.
언니는 가을에 입을 편한 원피스를 생일선물로
사 준다며 인터넷 쇼핑 중이다.
주변의 친구들도 축하 인사를 많이 해 주었고
때로는 각종 기프트콘들이 인사를 대신해 주었다.
이쯤 되면 난 행복한 사람이다.
어떤 후배는 12살 차이가 나는 띠동갑에 나와 생일이 같아 항상 서로 챙기는 사이가 되었는데 올해는 마사지건을 선물로 쏴 주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또 한 번 나이를 실감한다.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기억하는 사람이나 기억되는 사람이나 서로에게 큰 영광인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서로를 기억한다는 것이
소중하고 값지다.
누구나 생일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누구나 딱 하루이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각자 위치에서 탄생의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은 1년에 한 번씩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아이의 생일을 끔찍이 행복하도록
챙겨준다.
생일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하는 일도 없다.
누구나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출발을 할 뿐이다.
최근 만 나이가 바뀌는 제도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자신의 생일이 지나야 비로소 1살이 더해지는 만 나이 도입으로 나이를 세는 것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내 나이를 따지는 건 쉽겠지만 남의나이는 생일을 알아야 따질 수 있게 되었다.
1월 1일에 태어난 사람과 12월 31일에 태어난 사람이 한해에 태어난 것으로 엮이는 것은 뭔가
불공평하다.
12월 31일에 아이를 낳지 않고 1월 1일로 넘겨보려고 노력하는 산모들이 많아진다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물론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 상황이 되면
모든 산모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어릴 때는 나이가 많아지고 싶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철부지 초등학생 시절에는 빨리 중학생이 되고 싶었고 어리기도 다 크지도 않은 애매한 중학생을 보낼 때는 막연한 고등학생을 꿈꿨다.
전체적인 나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했던 고등학교 3년 생활 중에는 지금만 버티면 펼쳐질 자유로운 대학생을 꿈꿨다.
그러면서 점점 나이가 많아지길 바랐으나 이제는
한 살이라고 덜 먹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안 먹을 수 있다라면 나는 평생 떡국을 안 먹을 수도 있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저물어 가는 생일날이 아쉽지만
초심의 마음으로
특별 생일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매일의 평소를 특별하게 보내기로 다시 한번 다짐하며
그래도 나를 있게 해 준 엄마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갓 태어난 나를 안고 흐뭇하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