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이가 40을 훌쩍 넘겼다.
20대 대학시절 성당에서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였던 40대 아저씨도 바로 내 옆에 있다.
그 당시 결혼을 안 했던 그래서 조금은 외로워 보였던 청년부의 마지노선 40대 청년들이
여럿 무리를 지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된 것이다.
결혼의 유무와 상관없이 한없이 아저씨 같고 아줌마 같았던 그들의 세계에 나도 모르게 합류했나 보다.
젊었을 때는 몰랐다.
내가 40대가 될 줄은......
나이는 늘 테지만 여전히 좋은 기량을 유지하며 좋은 컨디션으로 20대처럼 살 줄 알았다.
갑자기 팔다리가 꺾였다.
알 수 없는 울퉁불퉁 거대한 혹이 내 몸 안에 있단다.
예상이라도 했으면 덜 놀랬을 텐데 예상밖의 출현으로 그 혹은 단숨에 주인공이 되었다.
주인공은 언제나 주목받지만 마지막 퇴장은 누구보다 초라하고 쓸쓸하다.
3개월의 치료와 수술을 끝으로 내 몸에서 분리된 혹은 저만치 수술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을 것이다.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애증의 혹!
이 혹으로 인해 나는 휴직을 얻었고 이는 내 삶의 단단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회복은 생각보다 빨랐고 이후의 삶은 예상대로 꾸밈없이 흘러갔다.
워킹맘 13년의 경력으로 오롯이 아이들을 챙기는
시간들이 너무 낯설고 서투르다.
그동안 나는 시어머님과 친정엄마의 토스를 전달받아 스파이크만 때리던 무늬만 엄마였다.
늘 좋은 토스만 받아 힘을 실어 스파이크를 때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이나 그 때나 살림까지 살뜰하게 챙겨주신
어머님의 수고는 잊지 못할 고마움으로 기억된다.
끔찍이 손주를 위해 주셨고, 아낌없는 애정을 쏟아부으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비슷하게 나고 자라게 된 시누이의 아이들과 한집에서 공동육아를 하게 되는 날이 많았다.
양육자에 입장에서는 아이를 혼자 보는 것보다는 함께 보는 것이 덜 힘들 것 같고, 시간도 잘 갈 것이고,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아이 입장에서는 그래도 또래의 아이와 함께 지내면 덜 심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조카는 엄마랑 하루종일 있는데 우리 아이는 할머니와 고모와 있는 상황이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고 장난감을 뺏기지 않는 모습이 괜찮았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빠를 잘 따랐다.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는 단언컨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엄마보다는 아빠라는 전제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나는 아이들을 케어하기엔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아니 안 맞다.
그래서 나의 몫까지 다해주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항상 준비성이 철저해야 하고 스케줄 정리도 필수이고 무엇보다도 아이와 공감을 해야 하는데...
나는 핸드폰 충전 하는 것이 어렵다.
미리미리 무언가를 못 하겠다.
귀찮아서.....
핸드폰 충전도 간신히 하는데 에어팟, 패드등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경의롭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아도 시원찮을 귀찮음 병
환자다.
나 혼자야 그렇게 살면 그만인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은 조금 복잡해졌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 없이 역시 둘째까지 낳아 버렸다.
그래도 얼렁뚱땅 대충대충 무념무상으로 사는
인생이었지만 타인에게 누가 되거나 피해는 입히지 않았고 약속이나 지각이나 출근이나 퇴근에는 문제없었다.
남들보다 솔선수범하는 성실함은 없었지만 내 일을 미루거나 그르친 적은 없는 개인적 성실함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 육아에는 커다란 달력에 무조건 메모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힘썼다.
일하면서 아이들의 이것저것 챙기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그러나 휴직 중인 지금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거 보면 이는 아무래도 성격 문제일 듯싶다.
얼마 전
하나도 예민하지 않은 나의 성격인데 아이들 문제가 관련되면 예민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난생처음 듣게 되는 말이었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예민하다는 말이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에 솔깃했었다.
나는 내 삶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내 삶이 보장되어야 다른 사람도 보이고 주변도
보인다.
학창 시절에는 나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야 된다고
믿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 중심으로 변했다.
어린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또다시 나의 중심세계가 올 테지만
이제는 조금 너그럽고 다른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이룰 수 있는 만큼 이루었고,
하고 싶은 만큼 해냈고,
사고 싶을 만큼 샀고,
먹고 싶을 만큼 먹었다.
그리고 가지고 싶은 만큼 가졌다.
아이들도 이제는 꼬꼬마 시절이 지나갔고
두 손으로 잡고 걸었다면 살포시 한 손은 놓아줄 시기가 온 것 같다.
힘겹던 가족육아가 끝나갈 때쯤
이제는 온전히 머리싸움으로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사춘기와 교육 입시 문제가 시작된다.
이 또한 무던한 나의 성격으로 얼렁뚱땅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
세세하게 하나하나 신경 쓰지는 못하지만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는 커다란 나무처럼 든든하게
버텨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