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왔다.
수술을 위해 병원으로 가던 날
조금의 불안함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나와 남편이 없을 3박 4일의 시간이 처음이라 내내 담담했던 아들은
눈이 빨개지도록 눈물을 흘렸다.
매일밤 걱정하며 잠을 청하던 어린 딸보다도
뭔가를 알고서 눈물을 흘리는
큰 아들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됐다.
집에 오니 어머님이 몸보신 갈비탕을 하고 계셨고
엄마가 제육볶음과 오징어채 무말랭이를 가지고 오셨다.
진짜 엄마들이 안 계셨으면 어쩔 뻔했는지 너무 좋다.
당분간 먹는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병원생활이 기억난다.
적당히 낮은 저층 병실에
적당히 꾸며진 창밖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서
적당히 잘 쉬었고
적당한 날짜를 보냈고
의료진도 적당히 친절했다.
무엇보다도 적당한 온도, 습도가 쾌적했고 끼니때마다 나오는 식사도 적당히 맛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안 되는 상황도 적당히 땡큐다.
물론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서 병문안을 와주는 것이 엄청나게 고마운 일이고 평생 함께 같이 가는 인연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는 환자가 좀 더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수술전일이나 당일에 전화도 별로 반갑지 않다.
환자가 적당한 시간에 답할 수 있도록 문자 정도가 적당하다.
짧은 3박 4일의 병원생활은 마치 휴가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수술하고 싶었지만 병원 스케줄상 두 달의 시간이 걸렸고 나보다 급한 환자들의 수술이 당연히 먼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도 억울하지 않았다.
뱃속의 10cm가 넘는 혹을 두고 더 커지지 않을까
우려되긴 했으나 복강경으로 가능해야 하기에 쓸데없이 인터넷 수술후기를 읽기 시작했다.
간간히 더 큰 혹들의 후기가 보였고 어땐 글은 20cm나 된다는 두 배 더 큰 혹의 후기도 있었다.
의사를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질문과 답변을 인터넷으로 많이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병원에서의 진료시간도 그렇고 대기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의사들도 한 명의 환자를 오래도록 찬찬히 깊이 있게 진료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소연한다.
예약을 했어도 2시간 넘게 대기하고 3분 진료 보는
병원시스템이기 때문에 도대체 의사가 나라는 환자를 파악은 하고 있을까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의사보다는 스케줄관리 예약관리를 잡아주는 간호사가 더 분주해 보인다.
간호사는 의사를 보조해 주는 의학상식을 배운 전문직이지만 대학병원의 간호사만큼은 의사를 보조해 치료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케줄을 관리하는 비서 같았다.
그리고 나는 3분 진료를 봐도 되는 병의 상태이기 때문에 중증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병원을 다녔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아니고서야 2시간 기다리고 3분 진료 후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절대 안 나올 것이다.
나의 수술은 당일 세 번째로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두 번째 수술은 30분 안에 진행되어 끝나고 다음
1시간 30분으로 잡혀 있었다.
입원실도 부족해서 당일입원을 할 수도 있었기에
오전시간으로 수술일정이 잡힌 것에 또 한 번 감사했다.
그래, 수술은 오전에 하랫어....
그런데 앞에 두 사람은 수술시간 30분인데
나는 왜 1시간 30분이지?
궁금해서 간호사에 물어봤다.
앞의 두 사람은 혹의 크기가 작아서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 그렇단다.
결국 크기가 문제였어......
절대 모양의 문제는 아니야.
(나의 혹은 격막이 존재하는 굉장히 난해한 모양이었다.)
오전 10시쯤 두 명의 간단한 수술이 끝났는지
나를 대기시켰고
무뚝뚝한 신랑은 별소리 없이 나를
수술실로 보냈다.
수술방은 마치 공장처럼 수십 개가 넘는 수술대가 있었고 환자에게 번호를 매겨 상품처럼 입고되었다.
하자 있는 상품들이 재정비를 거쳐 새 상품으로 출고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새 상품으로 출고되어야지 불량품으로 재분류되면 안 되는데......
그러나 곧 깊은 마취가 기대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고 나의 이름을 한번 더 대답하고 7번 방으로 입고되었다.
3시간쯤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수술방도 회복실도 아닌 병실에서 나를 병상침대로 옮기는 중이었다.
그렇게 나는 출고되었다.
신랑에게 시간을 물어보니 예상시간보다 빨랐고 빨랐다는 것은 수술이 일찍 끝났고 예상보다 수월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됐다.
마취가 끝나고 바로인 시점인데도 정신이 멀쩡했다.
수술도중 응급조직검사를 한다기에 결과를 제일 먼저 물어봤다.
그냥 보이는 아무 사람에게.....
수간호사처럼 보이는 여자가 조심스레 묻는 나에게
결과를 알아봐 주겠다고 속삭였다.
그 시간이 제일 긴장됐다.
그동안의 영상검사, 의사의 진료 보다도 혹을 떼어내고 실체를 판독한 결과가 가장 중요했으므로.....
예상대로 양성이었고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나는
살짝 눈물을 훔쳤던 것 같다.
역시 나에게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구나!
감사하다.
그동안 수없이 읽어냈던 수술후기에 암인 줄 알았는데 양성이라는 글의 주인공이 내심 부러웠었는데 나도 그 주인공이 된 것 같아 감사했다.
그 기억은 꽤 오래갈 것 같고 잊지 못할 것 같고
소중한 경험일 것 같다.
어찌 보면 안 겪어도 되는 경험일 수도 있는데
너무 긍정적인 걸까?
그러기엔 느낀 것이 너무 많고 그로 인해 변한 삶도 너무 강력하다.
병실에 있는 동안 비가 많이 왔다.
코로나로 건물밖을 나가지를 못하니 알 수 없는
날씨 상황이 속절없이 내리는 비만큼이나 답답했다.
등학교 하는 아이들이 걱정돼 자주 체크했다.
그 이후
병실 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되었다.
나는 틈틈이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명상도 했다.
수술 후 걷기 연습은 큰 마음먹고 여러 번 했다.
걷기 연습을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옆 환자의 상담내용까지도 들릴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보호자인 신랑은 덩달아 건물밖을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불만 없이 편안하게 지냈다.
매일 저녁시간이 되면 내가 먹은 환자식을 정리해 주고는 속옷과 갈아입을 옷등이 들어 있는
큰 가방을 메고 저녁을 먹으러 유유히 지하로 갔다.
돌아온 길에 보호자샤워실에서 샤워하고 다음날 먹을 아침을 편의점에서 골라왔다.
환자식을 추가해서 같이 먹자고 했으나 환자가 된 것 같아 싫다고 했다.
놀라운 생활패턴이다.
그 시간 이외에는 항상 옆에 있었으나 생각보다도
훨씬 좋은 나의 컨디션 때문에 별다른 간호는 없었다.
그 정도로 나는 화장실 갈 때도 혼자 일어나고 걷기 연습할 때도 혼자 갔었다.
유일하게 붙어 있는 배 위의 반창고가 안 보였으면
어디를 수술했는지도 모를 정도의 양호한 상태로 지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의 외래약속을 끝으로 별다른 이벤트 없이 몸도 마음도 가볍게 퇴원을 했다.
특히 12cm 혹을 뗀 나의 몸은 물론이거니와
암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워들은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