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의 끝판왕, 빠이로 떠나다
느지막이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도 역시 계획 따윈 없다.
호텔을 해자 내 싼 호스텔로 옮기려고 해자로 차를 몰았다.
호스텔에 도착하여 방이 있냐니까
400밧짜리 방을 보여준다.
"방좀 볼 수 있나요?"
"그냥 그림으로만...."
"여기 주차장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숙박 불가네.. 우리 같은 렌트가 모는 사람들에겐..
호스텔을 빠져 나와
어디 한 번 네비에 ‘빠이’나 찍어보자. 오! 3시간! 그래, 가보자 빠이!
완전 즉흥, 완전 P형 인간다운 선택이다.
란나 골프장을 지나 주유소에서 기름을 ‘만땅’ 채운다. 1950밧!
와우, 이건 거의 출정식이네.
주유소 안 카페에서 달랑 샌드위치 하나를 들고 나온다. 음료수는 주유소에서 준 서비스 물 한병.
이것이 아점이자 오늘의 에너지.
빠이로 가는 길, 커브가 760개라던데?
그게 얼마나 구불구불하길래 다들 멀미약을 먹고 탄다는 건지.
하지만 나는 운전자니까 멀미 따윈 안 하지.
문득 떠오른 기억.
예전에 대마도 갈 때, 파도가 하늘까지 치솟던 날.
배가 바이킹처럼 출렁였는데 나는 하나도 멀미를 안 했다.
방법이 있다.
배 중간에 앉아서 배와 내가 일심동체가 되어 바이킹 타는 느낌으로 왔기 때문이다.
치앙마이를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나 산길로 들어섰다.
이제 시작이다.
구불구불 커브에 커브, 그야말로 레이싱 게임 같다.
정신 바짝 차리고 760개를 돌고 돌아, 2시간 45분 만에 도착한 곳은 바로 빠이.
도심? 아니, 읍내 정도.
읍내를 스캔하다가
구글맵에 ‘빠이 관광지’를 검색해 보니 가장 먼저 뜨는 건 ‘빠이 캐년’.
입장료 단돈 1밧!
풍경은 뭐, 막 대단하진 않다.
그래도 인증샷 찍고 내려오니 슬슬 배가 고프다.
올라갈 때 눈여겨봤던 노점에서 옥수수 하나. 20밧. 고소하니 맛은 최고다.
화장실? 입장료가 5밧이다. 음… 이 정도면 괜찮아.
다음 목적지는 프라닷 매옌 사원.
언덕 중턱에 거대한 불상이 보인다.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계단 오르기. 도이수텝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른다.
정상에 올라서니 빠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화롭고 조용한 부락. 스쿠터 천국답게 곳곳을 누비는 서양 청년 배낭여행자들.
이제 숙소를 잡아야지. 검색도 없이 그냥 돌아다니다가 The Queater라는 숙소 발견. 카운터에 가서 “원 나잇 플리즈!” 했더니, 아뿔싸. 방이 없단다. 단 하나 남은 방은 5000밧짜리 패밀리룸.
"팽막(너무비싸요!) 당연히 잘 수 없지"
그럼… 돌아가자. 오늘이 주말이라 다른 호텔도 방이 없을 수도 있다.
지금 시간은 4시 40분. 해도 지기 전이다. 그냥 치앙마이로 돌아가자.
출발하자마자 네비가 번아웃되어 감으로 길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동네 한복판에서 이 집 저 집
집집마다 죄다 인사하고 나왔다.
핸드폰 배터리는 이미 사망. 네비 없이 빠이에서 치앙마이로 돌아가는 길은…
감이다. 그냥 감. 기억에 의지해 산을 넘고 또 넘는다.
해는 지고, 길은 여전히 꼬불꼬불. 대관령 고갯길 느낌이랄까? 빠이로 갈 때는 길고 긴 꼬부랑길을 올라가면 급경사 내리막
오는 길은 그 반대.
앞에 화물차라도 만나면? 얘네들 시속 10km. 인내심 테스트다.
추월할때 쫄리지만 잽싸게!
그렇게 그렇게
산을 넘고 평지에 다다르니 드디어 도시의 불빛.
치앙마이에 돌아왔다!
3시간 운전 끝에 도착한 ZAK Residence.
다행히 어제와 같은 방이 있다.
체크인 후, 바로 향한 곳은 종로뼈다귀해장국.
해장국 한 그릇, 참이슬 한 병.
오늘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린다.
오늘 총지출 계산:
기름값 1950밧
샌드위치 55밧
캐년 입장료 1밧
화장실 5밧
옥수수 20밧
호텔비 1000밧
해장국+소주 450밧
청소부팁 20밧
= 총 3,501밧.
지금 내 지갑엔? 22,400밧. 오차범위 안이다.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고
리오 맥주를 사러 간다.
세븐일레븐에서 리오 맥주 2병 세트가 얼마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