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가고 싶은 히말라야
포카라를 아십니까?
네팔 제2의 도시입니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려면 일단 인천공항에서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로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포카라로 가야 합니다. 지난 2022년 1월에 포카라로 가는 네팔 여객기가 추락하여 72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2017년 12월 히말라야를 다녀왔을 때 탔던 바로 그 비행기입니다. 이 비행기 한 대로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왔다 갔다 하는 비행기입니다. 내가 탔던 그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소식에 안타깝기도 하고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는 해외여행을 많이 가지만 언제 비행기가 떨어져서 한꺼번에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세계를 일주할 뿐이지요.
다시 포카라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이 비행기는 2차 대전 때 일본 군인들이 쓰던 비행기입니다. 완전 프로펠러식 비행기예요. 제트엔진이 아닌 거죠. 근데 저는 이 비행기를 타면서 완전 내 스타일이라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요즘 우리가 타는 비행기가 디지털식이라면 이 비행기는 아날로그식입니다. 엔진 소리가 엄청 커서 비행기가 이륙하면 스튜어디스가 솜을 나누어 줍니다. 소음 때문에 귀를 막으라는 용도입니다. 이륙 착륙도 거의 자갈밭에서 하는 수준입니다. 카트만두를 이륙하여 한 30분 비행 후 포카라에 착륙할 때는 조종사가 활주로를 잘못 맞추었는지 거의 착륙하려다가 다시 이륙하여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착륙하더군요. 완전 장난감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포카라에 도착하여 수하물을 받는데 무슨 외양간인지 알았어요. 조그마한 수하물 내려놓는 곳에 우리 짐이 하나둘 놓여 있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짐을 챙기고 우리는 사진을 연신 찍었습니다. 히말라야 꼭대기 산에 하얗게 눈이 보이는 배경을 벗 삼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버스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걸려서 어느 시골 마을로 갔습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히말라야 등반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을 식당에서 요리사가 해 주는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들고 간 배낭은 포터들이 벌써 챙겨 들고 먼저 떠났습니다. 우리는 그냥 맨몸으로 걷기만 하면 됐습니다. 우리 일행은 5명이었는데 여기에 포터가 5명 그리고 우리 밥을 해 주는 요리사가 3명 그리고 가이드 1명 이렇게 총 14명이 한 팀이었습니다. 마을을 몇 개 지나고 이제 서서히 오르막 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등반은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이렇게 걷는 일정이었습니다. 첫날은 오후 4시간을 걸어서 첫날밤을 지낼 롯지에 도착했습니다. 롯지는 네팔식 산장인데 오두막이라는 번역처럼 작은 방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 방에 두 개의 간이침대에서 한 명씩 잘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계단식 논밭으로 형성되어 있는 네팔 마을을 바라다보며 맥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히말라야 산속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깥 날씨가 엄청 춥지는 않았으나 롯지 안의 간이침대는 난방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잘 때 핫팩을 등짝에 두 개 정도 붙이고 자야 합니다. 첫날밤에 저는 핫팩을 붙이지 않고 자서 너무 추워서 잠을 설친 기억이 있습니다. 히말라야 갈 때 핫팩 준비는 필수입니다.
다음 날 일어나 우리는 고양이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히말라야에 가서는 씻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아니 차라리 산중으로 올라갈수록 씻으면 안 됩니다.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머리를 감는다거나 하면 바로 저산소증에 빠진다고 가이드가 말해 주었습니다. 이른바 고산병인 거죠. 그래서 며칠 동안은 아예 세수도 안 하고 원시인처럼 지냈습니다. 둘째 날 아침을 먹고 푼힐이라는 곳으로 출발했습니다. 둘째 날은 그야말로 끝도 없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는 등반이었습니다. 날씨는 우리나라 11월 중순 정도의 날씨라 춥지는 않았습니다. 등산복 겉옷을 벗고 걸을 정도로 땀이 났습니다. 우리는 핸드폰에 정확한 고도계라는 앱을 다운받아 지금 우리가 얼마만큼 올라왔는지 계속 체크하면서 올라갔습니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면서 지금 얼마만큼 올라왔는지 고도계로 계속 체크하는 일은 재미있기도 하고 아예 습관이 되더군요. 오전에 4시간을 계속 올라가니까 요리사들이 점심을 해 놓은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땀을 엄청 흘렸으니 맥주를 마셔 댔습니다. 히말라야에 가면 에베레스트라는 네팔 맥주가 있는데 맛이 괜찮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간 요리사가 완전 한국식 요리를 한국 주방장보다 더 잘했습니다. 김치찌개, 미역국, 매운 감자찌개 등등 정말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물론 운동하고 난 후의 식사라 그런 면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나중에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회식하는 날 제가 고맙다고 요리사에게 팁을 주기도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등반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후에도 계속 오르고 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다 보니 초등학교도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한 초등학생이 학교를 다니는데 반대편 산 중턱에 있는 초등학교를 걸어서 다녀야 하는데 산 높이가 장난이 아니므로 이 초등학생은 끝도 없이 계단을 내려가서 다시 끝도 없이 올라가야 학교에 등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을 매일매일 다닌다고 했습니다. 보자기에 책을 말아 대각선으로 질끈 묶은 초등학생을 뒤로하고 우리는 계속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4시간을 걷자 푼힐이라는 정상이 나왔습니다.
히말라야에서 푼힐이라는 곳은 중고등학생들이 히말라야 등반을 오면 목표로 삼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새벽에 히말라야 일출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푼힐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우리는 난로가에 앉아 몸을 녹였습니다. 계속 올라와서 저 아래보다는 바깥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초겨울 날씨 정도 됐습니다. 내일 아침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일출을 보러 약 1시간 등반해야 하므로 일찍 잤습니다. 등에 핫팩을 붙이고 잤는데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그런대로 잘 잤습니다. 둘째 날쯤 되면 내 몸이 히말라야에 적응해 가는 느낌이 듭니다. 속세의 노폐물이 땀으로 다 배출되고 이제 서서히 자연인이 되어 가는 느낌이 납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속세에서 노폐물을 몸에 지니고 사는지 실감하게 되더군요. 히말라야를 갔다 오면서 아! 한국에 가서도 이렇게 배낭 메고 등반을 하면 노폐물이 없어지는 경험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겠구나! 등산화 신고 배낭 메고 이런저런 산에 많이 다녀야지 맹세했지만 그때뿐이었고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땀 흘리는 등산을 해야겠습니다. 몸속 노폐물을 배출하기 위해서요.
새벽 4시에 가이드가 깨워서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등산복을 꾸역꾸역 입고 가이드를 따라 등반하기 시작했습니다. 캄캄한 밤에 핸드폰 플래시 불빛을 비추어 가며 앞사람을 따라 오르고 또 올라갔습니다. 가이드는 한국에 와서 7년 동안 일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한국말을 잘했고 나중에 히말라야를 다시 오면 여행사 없이 그냥 연락만 하고 오기로 하고 전화번호도 받아 놨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고 해외 나가 본 지 오래됐고, 또 그때 마음이랑 지금은 다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거의 없습니다. 히말라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습니다. 아! 전 세계에서 이렇게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명소가 한 다섯 군데쯤 된다고 우리가 토론했었는데 더 늙기 전에 거기를 가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로키산맥 트레킹, 스위스 알프스 트레킹, 호주 사막 트레킹 등등.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해외는 기회 있을 때 무조건 가야 합니다. 나중은 없습니다. 쟤 미친 거 아냐?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야 그나마 중간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길에는 뭔 할 일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일에 치어 살다가 죽는 게 우리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깜깜한 새벽에 가이드를 따라 한 시간 걸어 올라가니 푼힐이라는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주위는 아직 어두웠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으로 한 200명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30분 지나자 해가 서서히 떠올랐습니다. 건너편 정상에 보이는 히말라야 꼭대기 에베레스트부터 햇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완전 노란색이었습니다. 푼힐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 정상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래 바로 이게 히말라야야! 라는 경탄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달력에서 보는 그림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푼힐까지만 와도 히말라야에서 느끼는 감동과 경탄을 다 느낄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왜 여기까지만 수학여행을 오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이므로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푼힐에서 히말라야 일출을 한 시간 정도 보고 내려와 아침을 먹고 우리는 다시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등반은 오르막이 아니라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능선도 걷고 계곡도 걷고 하는 그야말로 트레킹 코스였습니다. 그 높은 지대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양 떼를 몰고 가는 목동도 만나고 마을 사람도 만나고 네팔 개도 만났습니다. 네팔 개들은 한결같이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 네팔 개가 진짜 상팔자구나~ 라고 하면서 지나쳤습니다. 한 마을을 지나는데 한 마리 네팔 개가 우리를 배웅해 줬습니다. 그런데 이 개는 배웅을 한 1km도 더했습니다. 우리를 계속 따라왔습니다. 그러다가 언제 없어졌는지 인사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오전에 4시간을 걷고 요리사가 해 준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다가 다시 출발했습니다. 중간에 걷다 보면 휴게소 비슷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잠시 쉬면서 에베레스트 네팔 맥주를 마셨습니다. 맥주 한 잔을 들고 히말라야 흰 봉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큰딸에게 보냈더니 큰딸이 하는 말이 눈 속에서 뒹굴고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네 라고 톡을 보내왔습니다. 히말라야 등반 8일 중에 처음 4일은 이렇게 네팔 트레킹입니다. 둘째 날 빡세게 올라와 푼힐에 도착한 후 셋째 날 넷째 날은 네팔의 이 산 저 산등성이를 걷고 또 걷고 가다 보면 이 마을도 지나고 저 마을도 지나는 네팔 트레킹입니다. 셋째 날을 롯지에서 자고 그다음 날도 똑같이 걷고 또 걸어서 넷째 날 롯지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마을이 꽤 컸습니다. 가이드가 이제 내일부터 진짜 히말라야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뭔가 긴장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저녁에 맥주도 마시고 기타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행 중에 히말라야까지 기타를 가지고 간 친구도 있었는데 한 네팔 친구가 자기 기타를 가지고 와서 서로 배틀을 겨루며 거기에 맞춰 노래도 엄청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재미있게 노니까 인도네시아나 사우디에서 온 친구들도 끼어 달라고 해서 같이 놀았습니다. 그렇게 넷째 날 밤이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배낭을 챙겨 메고 히말라야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계곡이 점점 더 좁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고개를 뒤로 젖혀야 양옆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암벽으로 구성된 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 4시간 등반 후 점심을 먹고 난 후 가게에 한국 라면이 있길래 반가워서 주인한테 끓여 달라고 해서 한 젓가락씩 먹고 오후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같이 간 포터나 요리사들은 우리가 점심 먹을 때 어디 가서 먹는지 모르지만 뒤켠에서 자기들끼리 식사를 하나 봅니다. 그리고 잠도 우리는 롯지에서 자지만 그들은 근처에 천막 비슷한 걸 치고 거기서 자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포터나 요리사로 따라올 수 있는 것만도 네팔에서는 큰 돈벌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롯지 주인들은 네팔에서는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3년간 이들도 배를 쫄쫄 굶고 살았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방문객이 줄어들었을 테니까요. 네팔 가이드나 포터, 요리사들도 모두 실업자가 되어 지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코로나도 끝났으니 히말라야가 다시 활기를 띠기 바랍니다.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을 걸어 뱀부라고 하는 롯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서서히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자다가 등짝에 이불이 뭉쳐서 이불을 펴려고 등을 들어 올리면서 손으로 이불을 빼는 동작을 하고 나면 숨이 찼습니다. 그만큼 주위에 산소가 부족해 조심조심 행동해야 합니다. 이때부터는 세수도 안 했습니다. 머리를 감는 건 금기 사항입니다. 뱀부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가는 날이었습니다. 앞 글자를 따서 ABC라고 부릅니다. ABC 가기 전에 NBC라는 곳이 있습니다. 뱀부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NBC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바로 ABC로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갔던 때가 12월 중순이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눈 속을 걷지는 않았습니다. 가이드가 운이 좋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웅장한 히말라야 봉우리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걸어가면서 가이드에게 내가 뒷머리가 땡긴다고 말했더니 가이드가 모자 쓰세요 라고 해서 마침 사 두었던 네팔 털모자를 쓰니 금방 괜찮아졌습니다. 가이드의 경험이 드러나는 대목이었습니다.
오후 4시간을 걸어 올라가니 거대한 히말라야 밑에 자리 잡은 그 유명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기념으로 만세를 부르며 사진도 엄청 찍어 댔습니다. 베이스 캠프는 엄청 넓은 평지였는데 바로 눈앞에 어마어마한 빙벽인 히말라야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저 빙벽을 등반한다고 하니 대단한 등반가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가면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다가 사망한 산악인들의 위폐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스 캠프는 뭔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ABC에서 저녁을 먹고 롯지에서 잤는데 히말라야 밤 중에서 가장 추운 밤이었습니다. 밤중에 화장실에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우연히 하늘을 보았는데 그야말로 감탄이었습니다. 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바라보던 밤하늘의 별도 엄청 많았지만 히말라야에서 바라본 밤하늘의 별은 그 두 배는 많았고요 밝기도 엄청 반짝거렸습니다. 핸드폰 사진에 담아 왔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그렇게 베이스 캠프에서의 밤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우리는 하산을 준비했습니다. 히말라야 봉우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출발했습니다. 하산 속도는 등산보다 두 배 빠릅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넷째 날 기타 치고 놀던 롯지까지 하루 만에 도착했습니다. 등산의 묘미는 하산에 있습니다. 모든 긴장이 풀어지고 여유를 느끼면서 내려오면 됩니다. 물론 안전에는 조심해야겠지만요. 이 롯지에 도착해서야 핸드폰 와이파이가 터졌습니다. 그러니까 한 3일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던 거지요. 와이프에게 카톡을 보내니 살아 있었느냐고 톡이 왔습니다. 롯지에서 자고 다음 날 반대편 마을까지 이동했습니다. 반대편 마을이지만 두 시간 정도 걸어서 왔습니다. 여기서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히말라야 마지막 롯지로 내려갔습니다. 여기는 온천도 있었습니다. 롯지에서 약 10분쯤 걸어 내려가면 개울가에 야외온천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온천욕도 하면서 히말라야의 마지막 날을 즐겼습니다. 온천욕을 마치고 오후에 좀 쉬다가 저녁에 우리 모든 일행들과 회식을 했습니다. 포터 5명, 요리사 3명, 가이드, 그리고 우리 일행 5명 이렇게 회식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 준 주방장 요리사에게 팁을 주면서 마침 내 생일날 맛있는 미역국을 끓여 주어서 주는 팁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말을 하면 가이드가 통역을 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버스 타는 곳까지 이동했습니다. 계속 걸어 내려와서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왔습니다. 우리나라 1970년대 시골버스랑 똑같았습니다. 그 버스에는 포터와 요리사들이 타고 떠나고 우리 5명은 랙스톤 비슷한 차가 와서 그걸 타고 버스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중간에 버스가 펑크 나는 바람에 바퀴도 갈고 내려왔습니다. 완전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풍경이랑 똑같았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히말라야 등반을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 했던 포터, 요리사들과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리고는 렉스톤을 타고 포카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포카라라는 도시는 아주 깨끗한 이미지의 도시입니다. 히말라야 눈이 녹은 물로 깨끗한 호수를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고 호수 근처에 가서 바비큐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호텔에서 밤을 보낸 후 다음 날 우리는 포카라 공항으로 가서 처음 카트만두에서 타고 왔던 그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로 돌아왔습니다.
카트만두라는 도시는 회색빛 도시입니다. 사람은 엄청 많지만 못 사는 티가 나는 도시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카트만두 공항에서 가이드와 헤어지고 우리 일행은 대한항공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밤새 달려왔습니다. 제트 기류를 타고 비행기는 시속 1000km까지 달리더군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와인을 얼마나 달래서 먹었는지 머리가 아팠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 새벽에 내려서 일행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오면서 지인들에게 히말라야를 다녀온 소감을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그때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 톡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히말라야 일정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히말라야는 한번 가는 사람은 없다는군요. 아예 못 가든지 아니면 한번 가서 느낀 감동 때문에 다시 한번 간다고 합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히말라야를 다시 한번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