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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Nov 21. 2017

오늘은 좀 솔직해지기로 한다

암 경험자로 씩씩하게 살기

오늘은 좀 솔직해지기로 한다


사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매순간순간이 짜증 난다


조금만 몸 한 편이 아파도, 혹시 하는 마음과 함께 덜컥 겁이 난다


몸 어딘가 천형처럼 낙인이 찍힌 것 같다.


이번에도 좀 아끼고 살아보자고 알뜰해졌는데


급작스런 복통의 원인을 찾 각종 검사를 하느라 검사비로만 100여만 원이 훌쩍 나갔다.


내가 그동안 뭐 때문에 아등바등 절약을 한 건지 허무하기 짝이 없다.


건강한 몸이라면 며칠 버티다 안 아프면 그하고 말 텐데.


혹시라도 다른 곳으로의 전이나 재발이 있을까 겁 먹어 정밀 조사까지 한 것이다


암을 경험한 자의 업보다.


 


짜증으로 인해 제일 먼저 드는 생각,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끈질김으로 내 몸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는 생각


나는 왜 암에 걸린 걸까?


현대 의학에서 여지껏 불치의 영역으로 남아 있고


싸구려 감성팔이 드라마에서 적당한 반전이 없을 때 쉽게 들이대는 종양, 캔서


그 미지의 영역이 왜 내 몸에서 자라났을까?


 


사실 암 발병 전후로 나의 삶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가진 것은 없지만 거칠 것도 없었던당당한 하루하루가


여기 뭐가 만져져요,


종양이 꽤 번졌습니다,로 인생길이 급전환하여


자연의 삶, 원초적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


 


발병 초기의 표준 치료기간에는 오직 생존, 살아남기가 목표였다


화학적 치료야 그렇다치더라도


즐기던 커피도 끊고 채식으로의 완전 전환이 좋다하여, 채식..


그리고 2년 여의 치료가 지난 지금의 안정기


안정기라고 하지만 아직도 몸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암 찌끄레기


 


앞으로의 삶은 두 가지다


암 같은 중병을 겪은 사람들의 비슷한 마음은


이제부터 좋은 시간을 보내겠다, 이제까지와는 달라진 삶을 살겠다, 이다


매순간 소중히 성실히...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지 않다


이제껏 무수히 그냥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아깝고 아깝다


그러니까 앞으로의 삶은 매순간을 기쁘고 소중하게 보람되게 보내고 싶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이다


동감한다.


하지만 한가한 오후 아무 생각없이 부담없이 미드를 보면서 흘려 보내는 것은 나쁜 건가?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그냥 허비해?


미친 거 아냐?”


모르겠다.


예전에는 마지막 삶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뭐 해야지, 뭐 하고 싶은데, 하는 생각만으로 하루하루를 미루고 지냈다


중학교 동창 애가 늘 하던 말,


태양이 녹 스냐, 시간이 좀 먹냐?


절대 태양과 절대 시간은 그럴 일이 없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좀 먹고 녹슬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남은 시간이 유한하니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사는 일이 다급해서 우선 순위로 밀린 일들.


그래도 한세상 살다가는데, 하고 싶은 일 하나쯤은 하고 가야지 않을까 싶다.


내 생각들을 풀어내고 동감 받고 위로 받고 싶은 마음.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처럼 글쓰기보다 책 만들기를 먼저 익힌 사람은 자기 검열이 심해서 더 그렇다.


 


처음 발병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방마다 쌓인 무수한 책들을 처분하는 거였다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습관처럼 쌓아 놓았던 책들


다시 볼 시간이 없을 것도 같았고


그렇게 책으로 둘러싸인 방들이 나의 지적 허영을 드러내는 것 같아


대학 때부터 지니고 있던 전공서적


아이들이 보던 책들


일로 필요해서 산 책들, 기타 등등


한 달 여에 걸쳐 책을 버리고 책장을 들어내고


그 방은 상징처럼 내 육신을 위한 황토방으로 만들었다


면역력은 잠에서 나온다 하기에.


오로지 목표는 살아남기다.


 


그래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내 생의 종착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추고만 있다.


굳이 내가 그 지점을 알려 할 필요는 없다.


 


해이한 하루하루가 계속 되고


스트레스 받고 길거리 음식 먹는 옛날의 습관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끌려 간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안 될까?


안 죽는 사람이 어딨어?

 

날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그냥 맘대로 살 수도


환자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몸을 사리며 살 수도.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지만 이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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