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오후 Jun 15. 2018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음식 에세이

 

책 속으로

-나는 다만 자연의 아이였을 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지명은 전라남도 곡성이지만 내 고향은 곡성이라기보다 자연이다. 내게 먹을 것을 끊임없이 내보내준 흙과 물과 공기와 햇빛과 별빛과 새소리와 꽃향기……. 그것들이 나를 키웠다. 그것은 경상도 봉화에서 태어난 이도 그럴 것이고 삼천포에서 태어난 이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다만 하루하루 밤과 낮을 보내면서 자연이 준 먹거리를 먹으며 산다. 봉화사람은 봉화가 키운 게 아니고 봉화의 자연이 키웠다. 곡성 사람인 나도 그렇다. 나는 다만 자연의 아이였을 뿐이다. 자연의 아이들은 비 오면 비 온다고 가슴 설레고, 해 나면 해 난다고, 밤 되면 밤 온다고 혼자 가슴 두근거리게 되어 있다. 그것이 그렇다.(11쪽)

-인생의 쓴맛을 달래주는 머구

인생사 버거울 때 우리는 그래서 목구멍을 치받고 올라오는 체기 같은 울음도 ‘얼릉얼릉’ 꿀꺽꿀꺽 삼켜버릴 줄 알게 되었다. 된장에 무친 머구 삼키듯이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쓴내보다 더 비릿한 인생의 풋내 때문에 몸을 떨어야 할 일이 오게 되고야 말 것을 알기 때문에.

(33쪽)


-조금이라도 먹어줘야 덜 미안한 죽순

나중에 도회지에 와서야 나는 죽순이 고급 음식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하긴 예전에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웰빙 바람을 타고 고급 대접 받는 게 꽤 있다. 다슬기가 그렇고 메밀묵이 그렇고 호박이 그렇고……. 어디 음식들뿐이랴. 우리는 그때 살기 싫어도 할 수 없이 살았던 흙집도 그렇고, 나무 때는 아궁이도 그렇고, 그렇게도 입기 싫었던 무명옷도 그렇고……. 나는 예전에 우리가 그렇게 귀한지 모르고 그냥 우리와 함께 살았던 그것들, 나를 살렸던 그것들한테 미안해졌다. 미안해지면서 또 야속해졌다. 내가 귀하게 여기고 싶지 않아서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걸 그것들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64쪽)

-힘들어도 내게는 초록이 있다.

나는 온 가을을 무, 배추와 함께 산다. 학교 갔다와서 가는 곳은 언제나 무, 배추밭이다. 밭에 할 일이 없어도 간다. 나는 가을 무, 배추밭이 좋다. 메밀이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소슬한 산언덕 밭. 보랏빛 씀바귀꽃이 수풀 속에서 호젓하게 피어 있는 그 가을 산언덕에 나는 간다. 활짝 꽃 피우기 전 물기 가득 머금은 듯한 억새, 온 세상이 단풍으로 물들기 직전 수풀들의 초록은 너무나 투명하다. 너무 투명해서 또 너무 고요하다. 봄날의 초록은 아직 세상을 안 살아본 초록이고 여름 수풀의 초록은 결코 그 투명해서 고요한 '경지'가 없이 은성스러웠다. 나는 바로 그 투명한 고요를 찾아 산언덕 밭으로 가는 것이다. 거기서 보는 무, 배추밭이 발산하는 초록의 아름다움에 내 어린 가슴은 설렌다.(229)

 

 고구마는 추석 무렵이나 되어야 제법 튼실해지고 단맛도 배어들어서 추석에 많은 음식을 장만할 형편이 못 되는 집들은 끝물 옥수수와 첫물 고구마를 추석 음식으로 내어놓기도 했다. 옥수수는 끝물이라 아쉬운 마음이 들어 맛있고, 첫물 고구마는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향기가 정말 달콤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첫물 고구마의 향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리고 그 맛은 또 어떻다고 말해야 할까. 햅쌀 햇밤 햇대추가 그렇듯이, 햇고구마는 그냥 고구마가 아니라 거의 축복이다. 자연의 축복! 그러니 따로 이것저것 추석 음식을 장만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튼실한 옥수수와 뽀오얀 고구마를 삶아 집에서 가장 예쁜 바구니에 정갈히 담아 내놓을 때, 식구들은 그 음식들에 절로 경배를 드리고 싶어했던 것이다.(237쪽)


  출판사 서평 출판사에서 준비한 서평 

 먹을거리들의 전설

어쩌면 이 글은 먹을거리들의 전설인지도 모른다. 먹을거리에 관한 온갖 언설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전설 속의 ‘나의 식재료’들은 고요하다. 또한 이 글은 먹을거리에 관해서 시끄럽게 떠들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요한 시절의 고요한 나의 감자들, 나의 가죽나무, 나의 솔, 나의 쌀들....의 아침과 저녁에 관한 슬픈 보고서인지도. <재출간에 부쳐, 공선옥>


이 책은 <행복한 만찬>으로 십년 전에 출간된 것을 ‘가지·오이’들의 이야기를 새로 덧붙여 새로운 편집과 삽화로 재단장하여 출간하게 되었다. 어머니와의 추억을 공유하며 작가의 따님이 그린 삽화를 만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진짜 삶을, 먹거리를 통한 추억의 공유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먹거리만의 이야기가 아닌 자식을 먹이고 키우는 어미의 고된 한해살이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의 재발견이다.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살림을 하는 시골 아낙들은, 일년을 시작하는 봄날에 푸짐한 쑥전을 부치며 한해살이 먹거리를 시작한다. 먹거리 풍성한 여름에는 오히려 비린 것을 곁들인 더 풍성한 밥상을 차려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볕 좋은 날에 먹을거리들을 말리면서 자식의 끼니를 곯게 하지 않으려 애쓴다. 풍성한 가을걷이에서도 내년의 삶을 의지할 씨앗 갈무리하고, 거둘 것 없는 들녘에서 돈 살 수 있는 더덕을 찾아 산속을 헤맨다. 

“밥은 먹어야지.”

가난했지만 먹을거리에 대한 감사와 먹을거리로 나눈 이웃에 대한 배려는 먹을 걱정이 없어진 요즘에는 오히려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먹거리의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형태와 종류는 달라져도 여전히 밥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자 사랑이다. 작가의 유년속의 먹거리들은 지금은 전설 속에서 고요하다. 그래서 그 의미가 더욱 이 시대에 부각된다.

 여전히 우리는 밥심으로 산다. 배고플 때, 힘들 때, 밥 한 그릇 뚝딱하면 생기가 오르고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듯이, 집밥이든 혼밥이든 밥 그 자체로 소중한고 귀한 것이다. 밥상 앞에서 어머니의 집밥을 떠올리거나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할 때 따뜻하게 한마디 건네보자.“밥은 먹어야지.

“산다는 것은 이런 맛이로구나.”

희망의 새순이 돋아나는 봄나물

인생의 쓴맛을 알려주는 머구

조금이라도 먹어줘야 덜 미안한 죽순

메밀나물에 보리밥 비비며 엄마가 웃는다

마음까지 정갈해지는 한여름 대사리탕 

햇볕과 바람에 꼬들꼬들 마른 시래기

먹을 것들이 말라가는 가을 마당이 주는 안도감,

메주 쑤는 푸근한 겨울


                                                                                                                                                                                                                                 

교보에는 발빠르게 정보가 올라와있네요

구매도 가능합니다


책 만드는 이야기는 찬찬히 올리겟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96393106&orderClick=LEA&Kc=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