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오후 Jul 23. 2018

항암 중 나를 지켜 준 신의 과일-복숭아

복숭아_항암 중 나를 지켜 준 신의 과일


6월에 들어서면 바야흐로 복숭아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제 기억으로 복숭아는 아버지의 과일입니다. 형편은 넉넉지 않은데 자식들은 많아서 엄마는 늘 자식들 배 안 곯게 하려 무척 애쓰셨습니다.

학교 갔다 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고, 지금처럼 뭐 사먹거나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어서 엄마는 늘 냉장고에 먹을 것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주로 찬밥을 비벼먹을 수 있는 나물 종류들이었습니다.

나이 터울 만큼 하교 시간이 차이가 나므로 형제들은 집에 오는 순서대로 냉장고를 뒤져 나물 넣고 밥 넣어 고추장과 참기름에 비벼서 먹었습니다.

철철이 제철 과일도 빠지지 않았는데, 대부분 멀쩡한 것보다는 어디 한 귀퉁이가 손상되어서 상품 가치가 다소 떨어진, 그러나 먹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을 박스째 사다 채워 두셨습니다.

엄마도 시장 한 귀퉁이에서 좌판을 열고 장사를 하던 처지라, 다소 못난이 상품을 헐값에 사오신 듯합니다. 아니면 박스째 사는 것은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어쨌거나 한창 먹을 나이인 우리 오남매는 냉장고가 채워지기 무섭게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이맘때쯤이면 냉장고에 멀쩡한, 그것도 엄청 크고 고급진 과일이 보입니다. 그건 다름 아닌 복숭아입니다. 한 입 베어 물기만 해도 단물이 뚝뚝 떨어질 거 같이 먹음직스런 자태로 말이죠. 지금도 값이 만만치 않은 복숭아 한 개가 냉장고에 모셔진 수준으로 있는데, 그건 아버지 몫임을 굳이 일러두지 않아도 우리 형제들은 압니다. 

아버지는 벌이가 솔찮지 않은데도 입은 고급인지 모양도 값도 헐한 과일은 마다하고 꼭 복숭아만 드셨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형편에도 엄마는 가끔 복숭아를 구해다 모셔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과일 복숭아를 값 생각도 안하고 내가 원없이 먹은 시절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항암, 방사선 치료중이었습니다.


항암 방사까지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정신이야 있든지 없든지 간에 시간은 무심하고도 고맙게 흘러서 표준치료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방사선 치료만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몸을 보한다고 해도 이미 항암으로 인해 몸은 피폐해져 있었고 입맛 또한 멀리 달아난 지 오래여서 제대로 된 음식을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한겨울에 시작한 항암 6차 후, 5월에 수술하고 다시 3주 지나 6주에 걸친 방사선 치료를 하다보니 그간 몸에 쌓인 항암약으로 몸이 많이 고되기도 했고, 입안도 헐어서 제대로 음식을 먹질 못해서 몸무게가 10kg가 빠졌습니다. 


한여름에 더위는 건강한 사람도 지칠 정도인데, 매일 방사선 치료까지 받느라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대체음식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한달 반 이상 매일 병원에 드나들던 6,7월은 복숭아가 제철인 시기라 아버지가 드셨던 것만큼 먹음직스러운 복숭아를 매일 먹었습니다.

그때 만난 복숭아는 신의 과일이었습니다. 달디단것은 물론이거니와 입에 들어가기만 해도 사르르 녹는 과육의 맛은 황홀 그 자체였습니다. 복숭아가 몸에 좋고 안 좋고를 떠나 입을 통해 몸으로 들어가는 데 아무 거리낌 없는 먹거리가 있다는 거에 절하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하루 세 끼니를 복숭아로 연명을 하고 여름을 보내니 어느새 항암도 끝나 있었습니다. 지금도 복승이를 보면 그 여름이 생각납니다.

알고 보니 복숭아는 여러 모로 암 치료에 이로운 과일입니다. 각종 항산화 성분이 들어있어 체내의 유해 활성 산소를 제거해 질병위험을 낮추고 노화를 방지합니다. 또한 항염 및 항암 효과가 있는 페놀 및 각종 카로티노이드 화합물이 들어 있어 유방암 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위시라이프에서 만든 두번째 책

소설가 공선옥이 쓴 음식 산문집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를 만나 보세요

몸도 마음도 따듯하게 채울 수 있습니다.


교보문고와 알라딘 예스24, 전국 서점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96393106&orderClick=LEA&Kc=




매거진의 이전글 젊은 날의 초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