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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Aug 12. 2018

다시 북에디터로 살기로 했다

왜 다시 편집자인가

나는 왜 편집일을 다시 시작했나, 반백살을 넘어가는 시점에.


1. 생존 수명이 늘어나 소일거리가 필요해서

2. 노후 자금이 필요해서

3. 내 기술을 묵히기 아까워서

--정답은 셋, 다다.


혹시 정답을 한 가지로만 예상했다면 당신은 옛날 사람, 언제부터인지 창의성 교육이 시작되고 난 이래 정답은 사지 선다상에만 있지도 않고, 정답이 한 개뿐이라는 통념도 사라졌다. 혹여 내가 마련한 정답대로 2~3개를 꼽았다면 당신은 이미 창의적인 북에디터가 될 자질이 충분히 넘친다.

격변의 시대


한창 출판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은 1990년대다. (내 연식이 다 드러나는 구절이다. 뭐 어떠랴, 나이 먹은 게 죄는 아니니까.) 편집 환경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데 출판 경향과 독자 취향은 늘 새롭다. 

단순히 "옛날에는 말이야~~"가 아닌 30년을 넘나드는 출판 환경 속에서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 지켜야 할 것들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자연스럽게 30년을 넘나드는 출판계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할 때는 어쩌고” 하면서 꼰대질을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일하면서 느끼던 감정을 가감 없이 친구나 지인에게 얘기하듯이 풀어가려 한다.


나는 북에디터로서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 활자 조판 시대에 작업을 시작해 컴퓨터 식자 시대를 지나 현재 인디자인 편집 시대를 살고 있고, 편집자가 만능인 시대(편집자가 표지까지 디자인을 다하는)에서, 단행본 출판에 북디자인이라는 직업이 생기고 편집의 역할보다 디자인이 다소 우세한 시대(영업 판매에 관한 한 다소 진실이다)를 살고 있다.

편집자? 북에디터?


매거진 제목을 왜 <오래된 편집자>라고 했을까. 당당하게 커리어 넘치는, 능력 있는 편집자의 출판 이야기라고 쓰고 싶지만, 사실은 나는 돌아온 편집자다. 20년의 간극을 넘어온. 그래서 오래되기는 했지만 한동안 쓰이기보다는 묵혀 있었던 편집자다. 오래 숙성된 묵은지와 와인에서 기대하는 그런 완숙함으로 책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실 나는 편집, 편집자, 편집인이라는 말이 익숙하고 내게도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북에디터라는 말에 비해 편집인은 시대성이나 세련면에서 어감상 밀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매거진 제목은 <오래된 편집자>라 하고 글쓰기에서는 북에디터라 쓰려고 한다. 그나마 내 직업을 젊은 사람들에게 다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려는 작은 욕심이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계속 출판 편집일을 해왔다면 굳이 이런 글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 존재 자체가 편집 커리어이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와 출판계에 내 자리를 마련하려 하는 중이고, 모든 것을 배우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다.


몸에 밴, 체험으로 익힌 재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간 해온 일이나 나의 성향상 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책을 통해 글을 따지고 새로 쓰는 생활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사실상 굉장히 깐깐한 독자이기도 하다.


책을 떠났던 것은 책이 싫어서가 아니고, 책의 중요한 역할을 몰라서도 아니고..... 돈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에 비해 고도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요구하지만 밥벌이에는 그리 착실한 편이 못 된다.


만 여원 남짓한 책값이
너무나 미안한

어쨌든 나는 인생을 한 바퀴 돈 후에 그럼에도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북에디터로 살기로 했다. 제목이나 명성에 비해 너무도 부실한 책 때문에 화난 적도 있지만, 이런 책이 있을까 하고 찾아보면 어김없이 있었던 책들 때문에, 필요한 책을 놓치지 않고 만들어낸 편집자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내가 책과 바꾼 만 여원 남짓한 책값이 너무나 미안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

시대는 지났지만 출판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책을 만드는 도구만 업그레이드되었고,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이고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도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일인출판 독립출판의 시대다. 사실 이건 굉장히 큰 발전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나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좋은 직업이다. 처음 편집일을 시작할 때의 순박했던 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좋아하는 책을 하루 종일 보는데 봉급까지 받는다? 


책에게 순정을 바치는 마음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책에게 순정을 바치는 마음으로 한권 한권 만들고 있다. 제대로 된 책이 세상에 나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인지 늘 염두에 두면서, 책세상에 누를 끼치지 않고, 욕심 내지 않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을 만들고 싶다. 내가 만드는 책에 대한 기록이 될 수도, 한주간의 편집일기가 될 이 글쓰기의 시동을 걸어본다.

더불어 이제 막 북에디터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출판 편집일을 알리는 조그만 정보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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