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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Aug 28. 2018

음식으로 누군가를 추억하는 건 행복입니다

공선옥 음식 에세이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올여름은 너무 더워서 지내기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여름이면 돌아가신 친정 엄마의 기일이 찾아옵니다.

첫애를 낳고 아프신 엄마께 산후조리를 의지하던 계절도 여름입니다.

장마로 습한 집안에 군불을 때 가며 당신의 첫 손주를 반겨 주셨습니다.

거의 30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엄마를 이야기할 때면 울음이 묻어 나옵니다.

너무 일찍 가셨음에 대한 아쉬움이 두고두고 서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공선옥 작가의 <그 밥이 어디서 왔을까>를 읽을 때마다 친정 엄마를 추억합니다.

작가의 친정 어머니는 전라도 곡성 산골짝에서 세 자매를 키우느라 집 안팎의 텃밭을 오가며 애면글면 자식의 끼니를 준비합니다.

작가는 진정한 시골살이의 시작은 가을이라고 합니다. 먹을거리가 넘치는 결실의 계절 가을에도 당장의 끼니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끼니까지를 준비하는 마음이 보입니다.


생각해 보면 시골살이의 사계절이라는 것은 가을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옳다. 씨앗들은 보통 가을에 나오는 것이 많으니까. 물기 없는 대기와 쨍쨍한 가실 볕에 꼭꼭 여물어 톡톡 볼가진, 바람 한번 불면 천지사방으로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릴 씨들을 엄마는 사각 귀퉁이 반듯한 종이에 착착 싸서 어딘가에 뒀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쌀밥은 병든 아이를 벌떡 일어나게 하는 약 같은 밥입니다

엄마는 내가 아파 칭얼대면 늘 이런 말로 나를 달랬다. “미역국에 쌀밥 말아주게 언능 인나소 와.” 무엇 무엇 하소 와,라고 전라도 엄마들이 말할 때, 아픈 전라도 아이들은 혼몽중에도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번지기 십상이었다. 더군다나 미역국에 쌀밥이라니. 사시사철 국이라곤 막된장 푼 토장국이었다. 미역국은 생일날과 명절에만 먹는 국이었다.

이런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식들은 먹을 것이라 하면 어미 입 속에 든 것까지 빼앗아 먹을 기세로 덤빕니다. 그만큼 먹을거리가 귀한 시절이었을까요?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지금 세상에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장에 갔다온 엄마가 부엌에서 뭔가를 와삭와삭 씹는 소리를 내기에 부리나케 부엌으로 쫓아 들어간 적이 있다..... 엄마가 아이들 몰래 먹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어터진 싱건지 무 토막, 짜디짠 고추짠지 한 입, 바람에 떨어진 떫은 풋감, 그리고 막 시어가기 시작한 젬피 넣은 겉절이 한 가닥.

먹을거리가 끊이지 않는 여름에조차 풍성한 밥상에 비린내 나는 고기 반찬 못 올리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해주고 또 해주고도, 더 해주고픈 어미의 마음이 보입니다.

때마다 먹을거리를 내서 밥상을 차리기 위해 엄마는 계절을 몇 달씩 앞서갑니다. 바쁜 모내기철에 짬 내서 심은 고구마순이, 어느새 튼실한 고구마로 자라 겨우내 엄동설한 긴긴밤에 출출한 배를 달래줄 간식거리가 됩니다.

이제 작가는 능숙하게 엄마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엄마가 되었지만, 한상 잘 차려 드리고픈 어머니는 이제 안 계시고, 바쁜 자식들은 일을 찾아 집을 떠나 있습니다.

예전의 엄마처럼 능숙하게 토란잎 무침과 토란대 나물과 토란탕을 끓일 줄 알게 되었다. 명절이라고 집에 찾아온 아이들한테 나도 예전의 울 엄마처럼 토란 한 가지만으로도 풍성한 상을 차려줄 줄 알게 되었다....세상의 많은 이들이 음식을 만들면서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을 떠올린다고 한다.
엄마 흉내를 내보려고 시장에서 무를 살 때 꼭 무청까지 얻어와 끓인 무청 된장국은, 그러나 엄마의 부재만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거기에는 햇빛과 바람에 꼬실꼬실 마른 엄마의 눈물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책을 읽 동안 친정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작가의 엄마처럼 먹을거리를 위해 사계절 내내 농사짓지는 않으셨지만 자식이 다섯이나 있는 내 엄마의 도회 생활도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여름이면 오이지를 많이 먹습니다. 맛있고 화려한 음식이 넘쳐나는 이 시절에 짜디짠 오이지가 웬 말일까요?

제 어머니의 음식입니다. 어려운 살림에 1남 4녀를 키우느라 시장에서 좌판을 벌여 생활을 끌어나간 엄마는 늘 바빴습니다.

여름철에 싸고 흔한 오이를 사다 오이지를 한 통 가득 담가 두고는 오이지무침도 하고 물김치도 하고 여름 내내 드셨습니다. 그것도 부엌에서 선 채로, 후딱.

우리 자매들은 여름이면 각자의 방식으로 오이지를 담아 엄마를 추억합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면 아삭아삭하고 매콤하고 짭조름한 오이지무침이 무척 그립습니다.

책에서처럼 다양한 먹을거리들은 접해보지 못하고 자랐지만 엄마의 정성이 깃든 밥은 제 육체와 영혼을 키워냈습니다.

작가의 글에서처럼 음식을 먹으면서 누군가를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여름처럼 살다 여름에 가신 제 엄마가 유독 여름에 더 그리운 것은 차라리 다행입니다. 더위에 지쳐도 엄마와 함께한 오이지를 먹으면 엄마를 추억하고 기운도 차릴 수 있으니까요. 오독오독 짭짤한 오이지를 먹으면서 당시에는 제법 핫한 음식이었다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울까요.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는 혹 너무 오래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그런 식재료들은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음식일 뿐이고, 생장과정을 모르는 화려한 먹을거리에 열광하는 세태 속에서, 자신의 식재료들은 전설처럼 고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트나 시장 식당에서 만나는 음식들은 누군가의 정성이 깃든 음식입니다. 돈벌이 수단으로 키워진 먹을거리들이지만 우리들 한 끼 식사로 허기를 달래줄 음식들입니다. 단지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을 뿐이지요.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지만 배고프다고 돈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무심코 만나는 식당에서의 한 끼도  누군가가 때맞춰 씨 뿌리고 키워서 거둔 음식들입니다.

밥을 지어 파는 사람도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짓습니다. 밥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혼자 만나는 간편식, 즉석밥도 밥 짓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밥을 지을 때는 누구나 어미의 마음이 됩니다.

책 한 권을 읽었는데 마음까지 든든한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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