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랗고 하얗고 포근포근 맛있는 토란
토란탕을 맛있게 끓이는 첫 번째 비결은 먼저 토란을 뜨물에 담가 두는 것이다. 그리고 맑은 뜨물에 끓이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생깨를 갈아 넣는 것이다. 톱톱하게 거른 깻국물에 토란이 완전히 익게 끓이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음식은 자기 입맛에 맞게, 자기 식대로 요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요리법일 터. 토란국은 내 출출한 속을 채우며 말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향기로 내 근원적 외로움까지 위로해주는 것 같다.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180쪽>
토란을 발음하면 토란처럼 입이 동그래진다. 어린 시절 소나기 퍼붓는 한여름 낮의 널찍한 토란잎은 환희였다. 추석이면 언제나 엄마는 토란잎 무침과 토란대 나물과 토란국만으로도 풍성한 추석상을 차려냈다.
먹을 것들이 말라 가는
마당이 주는 안도감
이른 봄에 심은 토란은 여름이 얼추 끝나갈 무렵에 토란대와 토란잎을 거두어 삶아 쨍쨍한 팔구월 볕에 말린다. 호박오가리와 가지와 붉은 고추와 나란히 토란잎, 토란대가 가득 펼쳐진 마당 한옆에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피어나서 흡사 그 집에 사는 사람들과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한식구처럼 여겨지는 맨드라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햇볕에 나서면 한여름보다 따갑고 그늘에 있으면 온몸이 까슬까슬해지도록 서늘한 그런 날, 오래된 집 마루에 누워 마당에서 말라가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어린 나이에도 ‘삶’이 느껴졌다.
평상과 멍석에는 봄에 심고 여름에 가꾸어서 다시 그것들을 심을 때까지 먹게 될 온갖 것들이 말라 가는 집에 들어섰을 때 드는 안도감이란! 그래서 우리집에 아직 사람이 사는 것이 그렇게 고맙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토란잎 무침도 못 먹고살다가, 어느 해 정월 보름 저녁 고향 큰댁에 가서, 큰엄마가 내놓은 시커먼 토란잎 무침을 보고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타향살이의 회한도
토란잎과 함께 밀어 넣었다
큰엄마, 하고 들어선 큰집 구들방에서 나는 인정 없는 도회의 거리를 떠돌다 어둠을 틈타 돌아온 귀향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큰어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으로 무쳐낸 그 토란잎 무침을 찰밥과 함께 정신없이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말할 수 없는 타향살이의 회한도 토란잎과 함께 밀어 넣었다.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185쪽>
ⓒ 일러스트_나혜원
가난한 삶에
환한 감나무 한 그루
추석 명절 도시에서 온 자식들이 꼭 한 가지씩 꺾어가서 객지의 가난한 방 바람벽에 걸어두고 싶어 했던 감. 그렇게 바람벽에 걸어놓은 감은 굳이 장식용이라기보다는 쓸쓸한 도회 생활의 위안용이었으리라.
엄마는 감이 노래지기를 기다려 ‘감지’를 담갔다. 감지 담글 감은 색깔만 노랗고 속은 아직 떫고 딱딱한 ‘장둥감’이다. 장둥감은 먹감보다 크고 홍시가 되어도 별로 맛이 없다. 짱뚱어처럼 넓적 길쭉해서 장둥감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장둥감을 대바구니 가득 따서 납닥 납닥 썰어 고추장에 박아놓으면, 이듬해 봄에 그 빛깔이 그렇게 곱고 투명할 수가 없는 감지가 되는 것이다.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200쪽>
따가운 가을볕 아래서 오직 쌀밥 먹을 생각에 그 고된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그 여인네들의 유일한 간식은 감. 내가 학교 갔다가 집에 들어서니, 이 수척한 여인네 셋이서 빼쪽감을 깎아 맛나게 잡수시고 있었다. 나도 군침이 돌아 엄마 입에 들어가는 걸 빼앗다시피 해서 입 속에 넣은 찰나, 나는 그만 입 안을 온통 뻑뻑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떫은 감 맛에 우물가로 달려가야만 했으니. 떫은맛으로 분탕칠이 된 입 안은 아무리 물로 가셔내도 좀체 그 떫은맛이 가셔지지 않았다. 그런 감을 어찌 그 여인네들은 그리도 맛나게 잡수셨던 것일까.
함께 나누는 고향 이야기
풍성한 한가위입니다. 고향생각 부모님 생각이 더욱 나는 계절입니다. 공선옥의 음식 에세이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에는 따듯한 고향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몇 가지 안 되는 재료만으로도 풍성한 음식을 추석상을 가득 채워내는 어머니의 마음이 있고도 회지의 객지 생활에서 위로로 삼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함께 나누는 고향 이야기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을 잘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 내는 공선옥 작가는 어린 시절 추억 속 산과 들에서 자란 먹을거리 이야기를 정겨운 사투리와 함께 맛깔나게 따듯한 밥으로 한상 지어냈습니다.
책 속의 일러스트는 엄마처럼 곡성에서 나고 자란 따님 나혜원 작가가 동화 같은 수채화로 엄마와의 추억을 나눴습니다
밥 짓는 엄마의 마음
책가방을 선택하는 리워드에서 수미네 반찬 두건(청색, 백색 중 하난 선택)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메모로 남겨주세요. 밥 짓는 엄마의 마음을 상징하는 두건입니다. 메모란에 원하시는 것을 적어 주세요. 책가방 청색 두건 백색 두건으로 남겨주세요. 책과 함께 밥 짓는 마음이 전달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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