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공선옥이 전하는 밥 이야기
밥 먹었어요?
얼굴을 마주치면 가볍게 건네는 인사말입니다. 사실은 밥이 궁금하기보다는 당신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겁니다.
잘 지내냐고 물어오면, 자신의 상태 그대로 답하기가 쉽지 않은데, “식사하셨나요? 밥 먹었어요?” 하고 물어오면 대답하기가 훨씬 가벼워집니다.
“먹었어요.” 하거나 “이제 먹으려구요,” 라고 답하면서 좋거나 조금 부족한 내 상태를 밥으로 표현합니다.
“밥은 먹어야지요”라며 상대는 나를 격려합니다.
아들, 밥 먹었니?
동화약품 활명수 광고 중에서
부모님은 늘 자식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에둘러 물으십니다. 광고 속 아버지는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닌 그저 밥 먹었냐고 묻지만, 밥 먹었니? 밥은 먹고 다니니? 밥 먹고 해라, 라는말에는 사랑한다, 널 믿는다는 응원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따듯했던 엄마의 밥
공선옥 작가
그래서 소설 쓰는 공선옥 작가는 밥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의 평안함을 밥 이야기로 묻고 있습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엄마의 밥 이야기를 하면서요.
가을이면 어머니는 봄부터 일궈놓은 작물을 거두어 말리고 저장하여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장만합니다.
꽃 같았던 우리 생의
어느 한때
ⓒ 일러스트 나혜원
온세상의 것들이 다 노랗게, 혹은 잿빛으로 시들어가고 말라갈 때 누런 논둑에서 올라온 푸른 고들빼기. 사람이 키우지 않았는데도 가을 들녘에서 독야청청 푸른 고들빼기를 한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캤다.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208쪽>
ⓒ 일러스트 나혜원
잎이 노랗게 시들기 시작할 때부터 완전히 질 때까지 온산을 헤집고 다니며 딱주를 캐서 돈을 산다. 딱주를 캐러 산에 다닐 무렵의 엄마들은 꼭 산사람 같다. 내일도 그 여인들은 홀쭉한 허리에 베보자기를 차거나 망태기를 둘러메고 딱주를 캐러 갈 것이다.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189쪽>
고기보다 맛나야 했던 시래기
ⓒ 일러스트 나혜원
무청을 햇빛과 바람에 말린 시래기는 겨우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된다. 시래기를 엮어서 시래기를 말리는 것은 제 눈물을 엮어서 제 눈물을 말리는 일. 그래서 시래깃국을 먹는다는 것은 햇빛과 바람과 잘 마른 누군가의 눈물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218쪽>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맛이로구나
겨울이면 무를 채 쳐서 무쇠솥 바닥에 깔고 무밥을 지어, 참기름 넣고 김을 부수어 썩썩 비벼 먹었다. 그럴 때 세상은 온통 하얀 것 천지, 무밥도 하얗고 무밥에서 올라오는 김도 하얗고 바깥에는 함박눈이 펑펑.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231쪽>
절하고 싶도록 달았던 그 뿌리
ⓒ 일러스트 나혜원
겨울밤 간식거리로 가장 만만한 건 언제나 고구마뿐, 내 기억속 먹을거리 중에 고구마는 언제나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내 허기를 달래준 음식이다.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236쪽>
선옥이를 찾아랏!
곡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공선옥 작가와 책속 삽화를 그린 따님 나혜원 작가는 같은 고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추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엄마와 저의 추억이 겹치고 또한 독자의 추억과도 겹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렸습니다. 책을 보는 모든 분들 마음도 배도 두둑하시길 바랍니다."
나혜원 작가의 말
글로 읽어도 좋고
그림으로 보아도 흐믓한 책
먹을거리에 얽힌 에피소드가 그림만 보아도 떠오릅니다.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를 읽는 또 다른 재미. 그림속에서 선옥이가 아닌 장면을 찾아보세요. 어린 시절의 공선옥 작가가 대부분 나오지만, 작가가 아닌 것 같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연결시켜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 일러스트 나혜원
작년부터 시작된 기획은 올 6월이 되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푸른 대사리탕으로 시작한 펀딩을 따듯한 고구마 이야기로 마칩니다. 올 한해 이 책으로 인해 모든 순간 따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소중한 후원을 해주신 후원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매일 맞는 밥상만큼 매끼매끼 따듯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