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오후 Mar 06. 2019

봄날, 엄마들의 일탈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엄마들은 왜 봄날 일철에 화전놀이를 갔을까
엄마들은 일철 시작되기 직전의 어느 봄날, 하루 날을 잡았다.
한복을 일단 곱게 입었지만 하루 종일 춤추고 놀기 좋게 
허리말기쯤은 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손장단 잘 맞추는 남원댁이 장구 둘러메고, 
음식 솜씨보다 마음씨가 더 좋은 구례댁은 무쇠 솥뚜껑을 뽑아들고, 
순천댁은 참기름에, 곡성댁은 찹쌀반죽이 든 함지박을 이고지고 
매년 정해놓고 노는 뒷산으로 올라갔다.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서 화덕에 걸쳐놓고,
반으로 자른 무에 참기름을 슬쩍 묻혀 빙 두르고, 
반죽한 찹쌀을 꾹 눌러 지지면서 쑥 몇 닢을 박아놓으면
그게 바로 화전이었다.
한쪽에서는 막걸리에 취한 엄마들이 치마말기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만화방창 사시절에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노래 부르고 춤추고, 
어린애들은 화전 얻어먹으며 술 취한 엄마 부르며 울다가 또 화전 한입 뜯어 먹으며 
그렇게 봄볕 아래서 하루 종일 지치도록 놀다가 해거름에야 동네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또 그냥 흩어지지 못하고 
 어느 한 집 마당에서 달이 둥실 떠오를 때까지 춤추고 놀았다.
그날은 온 동네 아낙들의 해방의 날,
어떤 아낙 하나 식구들 밥 해줄 생각하는 사람 없고,
어느 남정네 하나 밥하라고 성화부리는 사람 없었다.
--공선옥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11쪽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가 봄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몸도 마음도 바빠진다

고구마 등과 섞어 간신히 한겨울 동안 끼니를 거르지 않았으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년 날 채비를 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열심히 몸을 놀려야 가을에 먹을거리 걱정을 안 한다는 말이다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30~40년 전 이야기다.

  작가 공선옥의 나이가 아직 60이 안됐고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니


지금이야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무엇을 어디서 먹을까까지 걱정하는 시대에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이야기다.


봄이면 들에 지천으로 나는 나물 캐다 식량을 보충해야 하고

지난 가을에 갈무리 해둔 씨앗도 심어야 하고

이제부터는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아진다.


말하자면 화전놀이는 전야제와 같은 것이다.

아낙네들의 고단한 일년을 미리 위로해주는 축제다

요즘의 여유있는 꽃놀이와는 정서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먹고 사는 것이 많이 좋아진 지금, 눈도 입도 즐거운 식탁에서

먹을 것이 귀했던 시대,

입안이 깔깔할 정도로 거친 밥을 먹으면서 

느낀 엄마의 마음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먼산에 잔설이 희끗희끗 남아 있지만
양지쪽에 우북우북 달래 냉이가 삐죽삐죽 올라올 때
쑥과 싸래기를 버무려 쑥버무래기, 쑥개떡을 만들어 먹고
마음속에 희망의 새순을 키우며 봄을 맞는다    

예스 24 링크합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1564727?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도 책 읽을 줄 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