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고, 키우고, 마주하기까지의 여정
아침에 임당 통과 문자가 왔다. 수치는 120.
140 이하면 통과다. 다행이었지만 빈혈 수치가 평균보다 낮아서 빈혈약을 두 배로 먹게 되었다. 평소였으면 임당 통과에 기뻐하며 여기저기 소식을 알렸을 텐데 할머니의 장례로 다른 것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할머니의 입관 날.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화장터 냄새가 아기한테 안 좋다고 다들 강력하게 말리는 바람에 발인도 못 갔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꼼지를 생각해서 참았다.
오후에 빵과 커피를 사들고 친척들이 모인 할머니 댁에 갔다. 동생과 친척 동생들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마지막은 어땠냐고. 동생은 나의 마음을 알아채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친척들과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싶었다. 다행히 할머니께서는 연세가 많으셔서 집안 분위기가 그렇게 울적하진 않았다. 아빠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고모가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며, 아빠가 할머니 속을 많이 썩였다고 했다. 아빠는 하지 말라며 고모를 다그쳤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덤덤한 아버지였지만, 그 순간 눈가가 축축했다.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을 때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고모가 문을 여니 웬 할머니 한 분께서 서 계셨다. 할머니를 찾고 있었다.
“여기 할머니 어딨 있는가?”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습니다.”
“아....”
할머니는 서 계셨지만 내 눈에는 순간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탄식 후에 잠깐의 침묵.
할머니께서는 주머니에서 꾸깃한 종잇돈을 꺼내 고모 손에 쥐어 주셨다.
“이거 써라.”
“안 줘도 됩니다.”
“아니다.”
할머니는 고모의 만류에도 고개를 완강히 저으셨다.
“하나 남은 내 친구였는데....”
쥐어짜듯 힘없이 이야기하시는 할머니를 고모는 끝까지 배웅을 해 주셨다. 어른들은 그저 가만히 그 둘을 보고 있었다.
할머니를 배웅하고 오신 고모는 자주 찾아오는 할머니의 친구라고 하셨다. 고모도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이제 혼자 남아가 오래 못 살지....”
고모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간다는 건 어떤 심정일까? 나는 차마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행복할 거다. 자식들이 이렇게 끝까지 잘 모시다가 오래 사시고 가셨으니까.”
“에휴 할머니. 넘어지지만 않으셨어도 더 오래 살다가 갔을 텐데....”
아빠는 한숨을 쉬었지만 나도 할머니께서 아주 행복하게 살다가 가셨다고 생각한다. 할머니 주변에는 항상 아빠와 큰아빠, 고모들이 있었다. 할머니가 조금만 아파도 우리 아빠는 맨발로 뛰어가서 보살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들에게 둘러 쌓인다는 것. 자식들이 나를 자주 찾아 준다는 것. 나도, 꼼지에게, 그것을 바란다면 너무 욕심일까?
할머니, 그곳에서 행복하시지요?
오늘도 할머니 생각을 해요. 우리는 다들 잘 지내고 있어요. 할머니의 냄새가 나는 할머니의 집에서, 우리는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께서 우리 꼼지를 보고 가셨으면 했어요. 꼼지가 태어나면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어릴 때 할머니가 미웠던 적이 있어요. 저한테 항상 잔소리를 하셨죠. 그래도 명절 때는 늘 용돈을 주셨어요. 할머니는 다정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저한테 애정을 표현하셨지요.
제가 만든 빵을 할머니께서 아주 좋아했다는 말을 고모한테 들었어요. 더 구워서 드릴 걸 그랬어요. 이왕이면 직접 찾아서 드릴 걸 그랬어요.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네요. 너무 늦어버렸어요.
할머니 주신 사랑 정말 감사해요. 이제 손녀가 자라서 든든한 남편을 만나고 자식을 낳아요. 씩씩하게 살아갈게요. 새로운 생명과 함께.
할머니,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