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명과 태몽

생명을 품고, 키우고, 마주하기까지의 여정

by 글루



나는 차갑고 선선한 밤공기를 좋아한다.


겨울밤은 무척 춥지만 다른 계절의 밤은 모두 다 매력적이다. 여름밤은 어둡지만 가벼운 옷을 걸치고 돌아다닐 수 있어서 특히나 더 매력적이다. 남편과 나는 아기를 품기 전, 한 여름밤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아이 태명은 뭘로 하지?”



시시덕거리면서도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태명이야 이름을 짓기 전에 잠시 사용하는 거니까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곧 아이가 생기고, 태명으로 부를 상상을 하니 가슴이 슬금 간지러웠다. 누군가는 그날 먹던 음식을 태명으로 짓기도 하고, 누군가는 갑자기 떠오르는 단어를 태명으로 짓기도 한다. 남편이 말했다.



“꼼지는 어때?”

“왜 꼼지야?”

“그야... 네가 하도 꼼지락거리니까.”



남편의 말에 우리 둘 다 푸하하 웃었다. 꼼지라는 태명이 참 마음에 들었다. 우리 아기가 꼼질꼼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기가 생기면 태명은 꼼지로 해야지.




“산모님. 아기 태명이 어떻게 되죠?”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던 날, 나는 아기 수첩을 받으며 그 질문을 들었다.


“꼼지예요.”

“네, 꼼지 어머님.”



간호사는 아기 수첩 이름란에 ‘꼼지’를 적어 나에게 주셨다. 우리 아기 이름이라니. 꼼지라니! 너무 귀엽잖아. 그리고 옆에 하트는 더 귀여워! 나는 아기 수첩에 적힌 꼼지라는 글자를 쓰다듬었다.


꼼지야, 열 달 동안 잘 부탁해.







예전부터 나는 내 아기의 태몽을 직접 꿀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난 어릴 때부터 특이한 꿈을 자주 꾸었기 때문이다. 자각몽이라던지 가위눌린 꿈, 스토리가 이어지는 꿈 등 이상한 것들을 자주 꿨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처럼, 일부러 옥상에서 떨어지면서 꿈을 깨는 하루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직 아기의 임신 소식을 알기 전,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태몽을 꿨는데 너의 태몽이 아니냐는 것이다.



할머니는 아주 너른 바닷가에 서 있었다고 한다. 그 바다 안에는 무수히 많은 잉어들이 있었다. 그중 한 마리의 큰 잉어가 펄쩍 뛰어오르더니, 할머니의 품에 폭 안겼다. 할머니는 눈을 뜨자마자 태몽임을 확신하고 가족들을 살펴보았으나 임신을 할만한 사람은 나뿐이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그 꿈은 우리 꼼지의 태몽이 되었다.


나는 어디서 잉어의 색깔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를 주워듣고는 잉어의 색을 물었지만, 할머니는 잉어의 색이 기억이 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다만 엄청 곱고 예쁜 잉어였다고 한다. 우리 아기의 태몽을 내가 직접 꾸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할머니가 대신 꿔서 참으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우리 할머니는 꼼지를 안아보지도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할머니의 삼일장을 치른 건 30주가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할머니가 아파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날부터 하루하루 후회했다. 조금이라도 할머니를 찾아 뵐 걸. 할머니가 우리 꼼지를 안아보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명은 또 이렇게 지고, 이렇게 새롭게 태어나는 걸까.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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