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책은 그렇게 양식이 된다.

카모메 식당 원작소설과 영화

by 얼세이


(소품 역할인 책 사진은 5월 7일에 올라갑니다.)


"책은 글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독서는 첫 장을 펼쳤을 때는 아무것도 없이 들어가지만 책 뒤편을 덮을 때는 마음 한가득 뭔가를 담아낸 기분과 함께 덮는다 이는 마음의 양식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바쁜 현대인들에겐 쉽지 않은 취미가 되었다. 책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줄거리와 작가의 세계에 공감해야 하는 순간이기에 일종의 작가와 교류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교류라는 것이 정성을 다해 상대를 알아가면서 지식과 정보 그리고 감성을 얻어내는 행위라서 독서는 책이 아무리 얇더라도 금방 읽어지지 않는 긴 취미이다. (그렇기에 책을 덮는 순간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친 삶에는 감성 대신 자극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독서대신 영화를 영화대신 스포츠를 자신의 소중한 시간에 쓰는 것이다. 하지만 감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베스트셀러의 여운을 전달해주려 한다. 그렇게 영화화가 만들어진다. 내가 접했던 소설책도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나의 원조 일상영화 카모메 식당 원작소설은 10년 동안 다양한 감정 속에서 읽다가 끝내 성우 공부를 할 때 대본으로 썼더니 너덜너덜 해지면서 페이지가 찢어지고 말았다.


카모메식당의 포스터 2006년에 개봉했다.



"그 영화는 쉽게 말하면 힐링 음식 영화였다. 일본은

특유의 편안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힐링을 좋아했다."



카모메식당을 접한 건 영화로 먼저였다. 고등학교 1학년때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오기 전 선생님들은 따분함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영화를 틀어주어야 했다. 교실에 선생님만 들어오면 영화 틀어달라고 애들이 생떼를 부렸었다. 그걸 알기에 도덕시간엔 선생님이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재생한 영화가 바로 카모메식당이었다. 그리고 첫 감상평은 요리를 담은 영화의 색감이 맛있어 보였지만 재밌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좀 지루했다는 것이 더 맞았다 힐링영화는 액션이나 판타지보다 더욱 현실성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원작을 더 알고 싶어 졌고 처음으로 원작소설을 접하는 계기를 가졌다. 물론 다 이해하는데 1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이해하게 된 이후로 이해하지 못했던 세월 또한 소중하게 여겨졌다.

on 카모메식당 원작 소설의 표지로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사치에의 모습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견뎌야 하는 지친 일생"


이 영화는 핀란드로 이민을 간 30대 중반 일본인 여성 요리사 사치에가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가정식 식당을 개업하고 그 식당에서 만나는 손님들과의 소소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중립적인 말로는 누군가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저 일상이다. 그래도 그 내용에서 영화화까지 될 명분이 담긴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 짭짤하게 간이 배인 전개를 한 스푼 넣었을 뿐 맵거나 쓴 내용이 아닌 정말 영화에서 사치에가 핀란드 사람들에게 먹여주고 싶은 "오니기리 주먹밥"처럼 고슬고슬하고 짭조름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영화 줄거리는 평화로운 일상이 주 메인을 차지하고 지칠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힐링영화의 표본이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별 탈 없이 해결되고 걱정하지 않고 다시 음식영화답게 맛있는 식사로 잔잔한 하루가 마무리되는 내용이 힐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아마 어떻게든 큰 걱정 없이 마무리되는 그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을 갖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잔잔한 일상을 위해 지친 일생을 견디는 것이다.) 저마다 패스트푸드처럼 빨리 목구멍으로 넘어가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유롭고 편안하면서 정성을 다해 지은 따듯한 밥 한 공기를 먹는 시간과 과정은 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일이 걱정이고 지금이 근심인 우리의 인생에서 영화의 인생을 받은 주인공 사치에는 아무런 불안도 걱정도 없이 하루를 평화롭게 보내고 고민거리라곤 어떻게 핀란드 사람들에게 오니기리를 전파할지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에 비하면 너무 소박하다고 생각이 들었을지 모른다.


htm_20150331163222s060s063.jpg 따듯한 한 끼 식사를 먹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사치에의 친구 미도리 지친 삶을 살았다.

"제대로 된 식사가 필요한 이유"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봤던 날은 20살 초반 당시 지방에서 호텔리어로 근무를 하며 부모님과 2년 넘게 떨어져 지내던 날이 늘어가던 때 저녁밥으로 편의점 컵라면을 먹으며 넷플릭스에 올라온 카모메식당을 보고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요리 중에서 내가 받은 마음의 양식은 "나의 소중함은 식사와 대조된다"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진수성찬을 차려먹는 게 아닌 소박하더라도 밥 한 공기를 천천히 씹어 넘기면서 남들이 내게 차가웠더라도 나 자신 만큼에겐 따듯한 식사 같은 격려를 줘야 한다고. 사치에도 영화에선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런 식사를 차려먹으며 식당이 잘 운영되기를 바라는 위안을 삼켰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17살에 봤던 영화를 힘든 20대 때 다시 봤을 땐 작가와 감독의 의도 중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그 후 원작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지금 봐도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이 안 들고 오히려 별일 없어서 다행이라고 작가에게 감사한다.) 물론 원작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천천히 읽었으나 17살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아서 옛날엔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책들이 많았다. 그러나 카모메식당 원작소설은 어른이 될 때까지 버리지 않고 읽었던 몇 안 되는 소설책이었기에 지금도 이런 글로 감상평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소설은 생각보다 어른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대목이 많았다. 예를 들면 사치에는 30대 후반의 중년 여성인데 동안 외모라서 핀란드 현지인들이 20살로 착각하고 작업을 거는 내용도 있다.



%C4%AB%B8%F0%B8%DE_%BD%C4%B4%E7_%28Kamome_Diner_2006%29.avi_002207705.jpg?type=w2 카모메식당의 첫 손님 토미 힐트넨 일본역사에 관심이 많다. 이 청년을 시작으로 가게에 핀란드인이 많이 찾아온다.

핀란드에서 가정식 식당을 개업한 주인공 사치에는 첫 손님으로 젊은 핀란드 청년을 맞이하게 되고 그 청년은 일본을 동경하였으며 그녀에게 유명한 일본 만화 주제가를 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잘 모르는 그녀는 주제가를 웅얼거리며 서점을 들어갔더니 일본서적을 읽고 있는 지친 일상을 도피하러 여행온 일본인 미도리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부탁해 사치에는 만화 주제가를 알아내게 된다. 그리고 답례로 사치에는 미도리에게 동거를 제안하는데.. 영화도 책도 둘 다 초반 전개부터 알 수 없는 극단적인 사치에의 결정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내용이었다. 일반화하면 안 되지만 처음 접한 일상영화였기에 전혀 일상 같지 않은 점이 영화 같았고 영화이기에 일상에 비를 내려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에서 평화를 찾는 것도 일상물의 특징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만난 지 5분도 안된 사람 덜컥 덜컥 재워주진 말자) 잠시 지쳤다거나 이날을 위해 기다렸다거나 어느 이유든 새로운 선택은 굳이 영화가 아니어도 새로운 일상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그 자리에서 찾은 만족은 힐링 그 자체가 된다. 원작 소설에서 영화로는 묘사되지 않은 사치에가 일본이 아닌 핀란드에서 식당을 개업한 자세한 이유가 그녀를 핀란드로 가는 선택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결국엔 현지인들에게 오니기리를 맛보게 해 주고 식당도 대성하면서 사치에의 만족을 찾는 과정이었단 걸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늦게 깨달았다.


IMG_7162.jpg?type=w800 카모메식당에서 처음으로 나온 정식 판매요리 시나몬롤

"이거 어쨌든 음식영화이기도 해요"


카모메식당에선 노력 끝에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핀란드 청년은 거의 놀러 오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점이 영화의 귀여운 점을 맡고 있다.) 요리의 정성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을 아는 사치에는 미도리의 제안으로 오니기리에 순록고기나 청어등을 넣으면서 퓨전 삼각김밥을 개발해 보지만 실패했고 다른 메뉴인 시나몬롤을 만들면서 가게에 고소한 빵냄새가 잔뜩 퍼지면서 영화 초반에 텅 빈 카모메식당을 쑥덕이며 지나치기만 했던 핀란드 어르신 세분이 빵냄새에 마음이 차올라 식당에 들어가 빵과 커피를 먹으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낯선 타지에 발을 들인 사치에와 미도리가 조금씩 핀란드의 현지인들과 가까워지고 경계의 벽을 허무는 장면처럼 보였다. 그 후에도 카모메식당엔 가정식을 먹으러오는 현지인들이 하나둘씩 늘었고 모두 식사를 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데 사치에의 바람이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암시하는 듯 보여 보는 나도 흐뭇해졌다. 영화 내에서 중요한 대화나 전개에는 앞뒤 중간에 모두 음식이 한 가지 이상 등장하는데 첫 손님이었던 핀란드청년 토미와 영화 중간에 중요인물로 나오는 다른 한 손님은 커피를 슬픈 사연을 안고 식당을 찾은 다른 여성은 술을 마시며 대놓고 보여주지는 않는 사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후에 영화 중반에서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치에가 배고프다며 다 같이 오니기리를 만들어먹는 장면에선 가장 따듯한 식사가 나오면서 모두를 위안해 주는 장면처럼 보인다. 카모메식당은 만드는 과정도 보기 좋게 잡히지만 먹는 장면도 무척 신경 써서 촬영한 것 같았다. 식사라는 것은 위안을 주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다가 우는 장면이 나오는 매체도 많고 먹는다는 것 자체가 오로지 나를 위한 행동이고 나를 챙기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먹을 때 유독 눈물이 차오르나 보다. 힘든 일을 겪고 따듯한 밥 한 숟갈에 눈물을 흘린 미도리처럼. 음식영화는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음으로써 음식영화가 되나 보다.




20240321_223734.jpg?type=w773 이제는 찢어져 펼치기 힘든 책.

"영화나 책을 보지 않아도 괜찮으니 힘들수록 따듯하고 든든하게 한 끼 챙겨드세요."


영화는 재밌었고 소설원작은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자세한 사정이 들어있다. 카모메식당을 찾은 손님은 글에서 다루지 않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사연을 더 자세하게 적는 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그리고 조금 피곤하니 독자에게 직접 찾아보는 것에 맡기기로. (쓰는데 4시간이 걸렸다.) 사치에는 왜 핀란드에 식당을 차렸는지 미도리는 어떤 힘든 일을 겪고 핀란드로 왔는지 그리고 영화 포스터처럼 또 한 명의 카모메식당과 함께하는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그 인물이 전하는 양식을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에서만 보여주는 상징적이고 예술적인 장면으로는 그 등장인물의 마음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그 장면이 글로 읽히면서 이해할 수 있었고 본다면 영화와 책 둘 다 보는 것을 추천한다. 확실한 건 둘 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점이다. 카모메식당의 해피엔딩이란 사치에가 계속 식당을 운영하면서 핀란드에 완전히 적응해 가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소박하고 따스한 한 끼 식사를 팔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느낀 대로 감상평을 적자면 작가에게 들려주는 독후감이 아닌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쓰는 글로 본인이 지치고 힘들수록 "진정한 위로나 위안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사치에가 맛있는 요리를 해주어도 삼키는 것은 먹는 사람 스스로였듯이. 나를 구원하는 것은 타인의 도움이 있어도 결국엔 행동하는 나 자신이란 점을 영화를 7번째 본 지금 그렇게 해석할 수 있었다.


ps. 이 영화에 엽기적인 장면이 조금 등장하는데 너무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흠칫했다.

이 부분에서 이게 무슨 힐링영화야 싶었지만 지금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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