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낡은 거북이 인형
아이들 소리가 분주한 흰색의 낡은 아파트 단지와 그 사이에 심은 초록의 높은 나무들 파란 바탕의 하늘과 햇살이 건물을 가르며 그림자를 나누는 순간이 눈에 보이면 마치 과거로 돌아온 느낌이 난다. 아파트의 옥상은 동그랗게 돌아가는 환풍구와 옥상 지붕으로 가는 계단과 사다리가 있다. 그리고 파란 하늘이 누런 아파트와 그림을 이룬다. 지금도 가끔 그곳의 계단을 올라가는 상상을 한다. 나는 이런 풍경과 생각으로부터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곤 한다.
내가 이런 아파트의 풍경을 보면서 자라던 초등학생의 날. 그날은 바자회를 구경하러 간 날이었다. 우리 동네에선 한 달에 두 번 토요일마다 바자회를 열었다. 필요 없어진 물건들은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는 날. 현금이 오고 가면서 사람과 사물이 새로운 만남을 가지는 날. 엄마들이 쓸만한 옷을 집어보고 대보는 날. 아빠들이 오래된 물건을 보고 추억에 젖어 집어 드는 날. 아이들이 꼬깃꼬깃하고 짤랑거리는 용돈으로 골똘히 고민하면서 탐나는 장난감을 사는 날이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으면 좋겠지만 그때 나는 아직 용돈의 개념이 없었던 미숙한 딸이었다. (진짜 돈의 가치를 몰라서 용돈을 모르는 애들한테 가질래? 하고 줘버려서 엄청 혼난 적이 있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엄마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놓은 추억이었던 것들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돗자리에 아무렇게나 놓인 빛바랜 장난감과 책들 그리고 골동품과 오래된 옷들 그 특유의 빛바랜 색들은 나에겐 수수하고 차분한 꽃밭이었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시선을 뺏는 꽃들이나 다름없었다. 새것보다 손때묻은 헌것들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것들.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만날 준비가 된 것들. 지금의 내가 중고마켓이나 핸드메이드 제품 플리마켓 등을 좋아하는 이유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거 같다. 엄마 손을 놓고 사람들이 파는 물건을 구경하면서 딱히 무언가 갖고 싶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구경을 좋아하는 것과 가지고 싶은 것은 바다와 강만큼 달랐고 그 사이의 하구 지점처럼 가지고 싶은 게 하나쯤은 있을법했는데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 안에서 하구를 헤엄치는 생물을 만난 것이다.
바자회가 열린 거리의 배치도는 긴 도로를 중심으로 한자 석 삼자(三)처럼 긴 줄이 세 번 나누어져 있었는데 맨 안쪽 줄을 한번 그리고 가운뎃 줄을 유턴하면서 두 번 그리고 다시 우회전하면서 마지막 바깥 주을 구경할 수 있는 구조였다. 나는 가운뎃줄 맨 끝자리에서 돗자리를 편 6인 가족이 파는 거북이 인형을 만났다.
그 거북이 인형은 작은 아이의 손바닥만 한 크기에 거북이 형태를 띤 노란 몸통, 초콜릿 색깔의 갈색 등껍질, 깨알만 하지만 빛이 반사되면 작은 흰 자가 생기는 검은색 구슬 눈동자. 색도 바래지고 보풀도 일었을 테지만 온전한 거북이었던 그 인형은 내가 마음에 드는 결정적인 매력이 있었는데 바로 코를 가까이 대면 케이크 냄새가 났다는 점이다. 그 냄새를 맡은 순간 물건을 파는 이 6인 가족의 집이 상상이 갔다. 햇빛이 잘 드는 작은 아파트에서 장난감이 늘어진 거실에는 뚱뚱한 티브이와 쩍쩍 붙는 소파가 마주 보고 위에는 꽃무늬 프레임에 걸린 가족사진이 걸려있으며 부모는 소파에 아이들은 거실 바닥에 앉아 일상을 보내는 가족을 표현한 특유의 사람 냄새였다. 촉촉한 빵 시트의 냄새라고 해야 더 적절한 비유지만 나는 케이크 냄새라고 칭했다. 그 냄새가 마음에 들었다.
얼마냐는 질문에 오백 원이라고 돌아왔고 그때 나는 사고 싶다는 눈빛을 줬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엄마가 눈치챌 만큼 적극적이지 못해서 가자는 말에 그만 일어나서 다른 돗자리로 갔다. 그렇게 마지막 자리까지 모두 다 구경했고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아까 그 거북이 몸통처럼 연한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면서 그림자들이 집에 가자고 사람들을 잡아당겼다. 사람들은 물건들을 정리했고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거북이 인형과 멀어지면서 내 마음은 거북이걸음처럼 느릿느릿 해지다가 이내 멈췄다. 그 케이크 냄새가 자꾸 코 주변에 침식된 기분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서있을 뿐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사고 싶은 게 있었는지. 나는 분명히 있었지만 이상하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돈이 아니라서 눈치가 보였던 걸까? 아님 엄마는 진짜로 사줄 수 있는 의향이 있었음에도 내가 그걸 스스로 의심해서였을까. 아마 미성숙한 머리로 느낀 망설임이었나 싶었지만 머리가 커버린 지금은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종종 내게 말했다. 망설이지 말라고. 망설이다가 놓친 후회와 일단 쟁취하고 난 뒤 느끼는 후회는 다르다고 하셨다. 나는 이 말을 아직도 기억해 두고 산다. 종종 말하고 싶어도 자신감 없어 우물쭈물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항상 말한다 망설이지 말라고. 결국 엄마는 거북이 인형이 사고 싶다는 내 의지를 500원을 주고 샀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바자회는 순식간에 끝이 나있었다. 바람에 날아다는 나뭇잎처럼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있었고 다들 집에 갈 준비를 하며 짐을 쌌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토끼처럼 뛰었다. 맨 끝자리에 있었던 만큼 전력을 다해 뛰었고 후회 없이 살기를 배운 보답인지 그 6인 가족은 아직 떠나지 않고 짐을 싸고 있었다. 그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와 아빠는 큰 가방을 벌리고 아이들은 물건을 집어넣고 있었던 모습을 그 주변은 텅 비어있고 아무도 없어서 마치 나와 그 가족들만 있는 자리가 낯설었던 것을. 웬 어린아이가 앞에 멀뚱히 서있자 가족들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옆에 있었던 친언니가 (처음부터 계속 옆에 있었고 망설이고 있을 때 살 건지 말 건지 옆에서 계속 부추겨줬다.) 답답함에 "얘가 거북이 인형 사고 싶대요" 하고 도와줬다. 그 말에 그 가족들은 가방을 다시 뒤졌고 거북이는 가방 밖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오백 원을 주고 그 거북이 인형을 구입했다. 코에 대고 냄새를 맡으며 회상 속의 하얀 아파트로 돌아가던 그날 저녁. 그래봤자 케이크 냄새가 나는 인형일 뿐인데 무척 비상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조금 우습긴 했다.
그날 저녁 일기장에는 그 거북이 인형을 산 이야기와 연필로 끄적인 거북이 그림이 있었다.
인형과 함께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틈만 나면 인형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가지고 놀았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거북이는 여전히 내방 책상 한곳에 존재한다. 케이크 냄새는 이제 사라졌다. 그 냄새는 어디서도 비슷한 걸 맡을 수 없었고 진짜 케이크 냄새도 아니었다는 걸 깨달아서 냄새를 맡았던 그 시절이 추억만이 남고 형체도 없는 향수병이 되었다. 어쩌면 다른 가족의 냄새는 지워지고 내가 새로운 가족이 되면서 나는 맡을 수 없는 나의 냄새로 옮겨가서가 아닐까. 참으로 신기하다 냄새가 추억이 된다는 게. 그 거북이 인형의 냄새가 좋았던 것이 추억이 되고 그 냄새를 맡으며 같이 산 세월도 추억이 되니까 추억은 보는 것 듣는 것뿐만 아닌 냄새로도 존재하면서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이후 나의 빈티지 아이템 사랑의 태초에는 그 거북이 인형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뒤로 오래된 물건을 사 모으지 않아도 내 방에 오랜 시간 동안 있었던 것들에게 추억이 부여되면서 소중한 것들이 많아졌다. 바자회도 자주 가게 되었다. 오래된 물건에서만 찾을 수 있는 사연을 추정하는 재미도 있고 과거에만 있었던 화려하면서도 클래식한 미적감각을 감상하는 것도 또 유행이 돌고 돈다는 것을 증명하듯 과거에 유행했던 것들이 다시금 떠오르는 걸 보면 추억은 마치 형체가 없는 추상적인 문학 같다. 머릿속으로만 존재하고 상상으로 싸도 불완전한 존재로 결국 미화되어 남는 것. 결국엔 삶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 우리는 그래서 소비하고 읽고 감상하고 시향을 하나보다. 그것이 오래되었다 한들 다른 사람의 손을 타고 새로운 추억을 시작한다면 더욱 문학적이고 낭만 있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남들 알게 모르게 낭만이 섞인 삶을 살고 있다.
작년 5월 매번 구경만 하던 바자회에 처음으로 참가를 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가져가도 좋을 물건들을 정리할 겸 저렴하게 팔기로 했다. (그리고 재밌어 보이기도 했고.) 돗자리에 잔뜩 늘여놓고 앉아서 호객행위를 하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물건들을 사가기 시작했다. 다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보다가 하나를 고르는 모습을 물건을 파는 입장에선 사람 구경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어린 초등학생들이었다. 그때의 내가 보여서 괜히 덤으로 판매하는 캐릭터 카드 한 장 덤으로 주면서 잘 쓰라는 말도 얹어줬던 거 같다. 내가 샀던 거북이 인형처럼 내 물건들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분홍색 천사 모양의 피규어를 사간 여학생, 플라스틱 부채의 그림이 예쁘다며 골라 가져간 남자아이들, 장 볼 때 적합할 거 같다며 초록색 앵무새가 그려진 라탄 장바구니를 사간 아주머니, 애인에게 잘 어울리겠다며 노란 스포츠 반바지를 사간 여자친구, 그중에선 거북이 인형처럼 10년을 함께했던 곰인형을 사간 모녀도 있었다. 10년 전 명동에서 산 흰색 곰인형이었는데 바자회 마감 직전에 나타나선 유치원생 딸에게 사주고 싶다며 이천 원을 주고 곰인형을 가져갔던 모녀가 있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긴 물건을 다른 사람들도 소중하게 써줄 것을 생각하면 그것 또한 나눠 쓰는 것의 장점이 아닐까. 이제 그 인형은 아이의 방에 진열되어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줄 것이다. 케이크 냄새가 났던 거북이 인형처럼. 다른 것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다른 추억과 낭만을 만들어주기 위해 과거는 더욱더 빛을 내며 깊어진다.
(여담)
(이 거북이 인형을 유심히 보던 중 발견한 사실. 이 거북이는 배 부분에 천으로 된 걸이가 달려있었는데 최근에야 이게 행주에 붙어있는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녀석은 행주에서 분리된 인형이었나 보다. 혹시 케이크 냄새가 났던 건 진짜로 주방에서 케이크를 구울 때 베인 냄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