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을 모르는 낡은 강아지인형
아버지가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신 날, 현관문 앞에서 방안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서류 가방에서 작은 강아지 인형 두 개를 꺼내 딸들 손에 올려주었다. 첫 해외출장 기념 선물이었다. 우리는 받자마자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아끼는 사람들 한정으로 선물을 주는 행위는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성된다는 점이 무척 낭만적이고 만인의 자상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선물 하나를 주는데 많은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분명 먼 나라의 선물가게 점원에게 인형을 포장해달라고 부탁했을 테고 점원은 손에서 포장지로 싸매지고 쇼핑봉투에 담아 아버지 손에 건넸을 테고 아버진 그걸 들고 공항을 통과하고 가방 속에 넣어 비행기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어두운 아파트 단지를 뚜벅뚜벅 걸어와 마침내 선물의 주인에게 도달하기까지를 상상해 본다면 결코 선물 봉투의 시선에선 짧은 과정은 아니었을 테다. 이 과정 중에서 하나라도 빠진다 해서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정성이 거쳐갔는지 섬세하게 생각해 보면 나름 즐거워지는 것이 있다.
강아지 인형은 하나는 하얀 몸통에 노란 얼룩무늬가 하나는 온몸이 누렁 색이었다. 인형과 우리의 만남은 아버지의 사랑하는 마음이 만든 필연적인 만남이었겠지만 언니와 나는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쁨으로 그것이 추후 운명적인 우연의 일치를 만들 거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자매는 인형에게 즉석으로 베베와 키키라고 이름을 지었다. 베베가 하얀 강아지 키키가 누렁 강아지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키키와 베베를 들고 매일 외출을 했다. 한창 수영을 배우고 있었는데 수영장에 갈 때마다 손에 쥐고 갔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따라 하고 도로 옆에 핀 노란 꽃들에게 고개를 밀어주고 그랬다. 그러다가 한번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베베와 키키를 들고 수영장으로 가던 날 인도 옆에 넓은 들판을 가둔 초록색 펜스에 베베의 머리를 대고 쭉 걸었다. 인형과 펜스가 부딪히며 팅, 팅, 팅 하고 재밌는 소리가 났다. 베베의 코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강아지 코여서 재밌는 소리가 날 수 있었던 것이다. 신호등을 건너면서 다시 본 베베는 검둥이 강아지처럼 얼굴이 새까맣게 얼룩져있었다. (이날은 매연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물로 박박 씻겨보고 말려보고 세탁기도 돌렸지만 결국 베베는 수염 난 아저씨처럼 입 주변이 까맣게 물들어버렸다. 게다가 배를 누르면 말하는 인형이었는데 세탁기까지 돌리는 바람에 영원히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예쁜 분홍색 강아지 옷도 입고 있었는데 말리고 입히는 걸 깜박해서 옷까지 잃어버렸다. (이런 주인한테 온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은 참 잔혹한 거 같다.) 수염이 생긴 베베를 보고 앞으로는 어디에도 안 가져가고 집에만 두기로 했다. 수영장에 가는 날 베베를 거실에 두고 신발을 신자같이 나선 언니가 왜 베베는 안 데려가냐고 물자 또 더러워질까 봐라고 말하지 않고 베베는 집에서 놀고 싶대라고 어린아이다운 변명을 지었다. 하지만 언니는 키키도 가는데 왜 안가? 그냥 데리고 가자 조심하면 되잖아.라고 했고 언니 말을 잘 듣는 편이었던 나는 (그렇다고 좋은 동생은 아니었지만) 곧바로 작심 삼분으로 베베를 들고 수영장을 갔다. 혼자 키키를 들고 가면 재미없어서였을까. 아이들의 첫 친구는 대부분 인형이라는 말이 있듯 어느새 인형은 장난감에서 친구로 건너갔다. 인형은 인형의 친구이기도 하고 나의 친구이기도 한 셈이다. 밖으로 가지고 나가 한번 더럽혀오기라도 하면 아껴주고 소중하게 대해주는 연습을 인형으로부터 배우게 된다. 그 생각은 아끼는 인형에서 다음으로 넘어가 사람으로 바뀌어 가족에서 친구, 선생님, 이웃, 약자로 그 마음이 퍼진다. 베베가 얼굴이 까매졌을 때 집에 놓고 가려고 한 이유도 소중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끔 학교에 갈 때도 몰래 베베를 가져가서 책상 밑에서 만지작대기도 했다. 요즘은 어른들도 가방에 인형 하나 정도는 달고 다니지만 만약 그게 초등학생 어린이라면 그 인형은 잔혹한 장난에 의해 뺏기는 존재가 된다. 어린이들만큼 순수하고 잔혹한 나잇대가 어딨을까.. 베베가 생기고 나서 얼마 뒤 어린이들 사이에서 마시마로 캐릭터가 유행했었는데 특히 여학생들이 손바닥만 한 인형을 가져오곤 했다. 갖고 놀다가 남자애들에게 뺏기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이때 남학생들은 웬만한 건 다 발로 차고 놀았다.) 여학생들은 울면서 선생님에게 이르고 결국 선생님은 인형이 보이는 족족 압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초등학교에서 인형이란 사냥당하기 쉬운 초식동물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학교에 몰래 가져가는 재미는 쏠쏠했다. 누구에게 뺏기지 않고 무사히 집에 가져올 때마다 눈치채지 못한 남학생들을 비웃는 재미도 있었고. 같은 반 아이들의 괴롭힘이나 선생님의 엄한 체벌 때문에 짧은 나이에 깊은 우울함을 느꼈지만 유일한 친구였던 인형으로 학교를 버틸 수 있었다. (유행하는 마시마로 인형이 있었지만. 크기가 50cm나 되어서 학교에 가져갈 시도조차 안 했기 때문에 무사했다.) 그렇다고 어린 남학생들이 인형을 뺏고 망가뜨리기만 했을까. 좀 더 선명한 추억 속에선 인형을 사랑했던 두 남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장난꾸러기가 대명사인 남자아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얌전하고 선한 내 사촌 동생들이었다. (심지어 20대인 지금까지도 그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사촌 네 가족들과 함께 고깃집에 가기로 한 날 자매는 또 베베와 키키를 들고나왔다. 그런데 그건 자매뿐만이 아니었다. 사촌 동생들 손에는 문어와 도마뱀 인형이 들려있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 우리들은 보라색 저녁 하늘을 향해 인형을 높이 들면서 다 같이 이름을 외쳤다. 베베, 키키, 도마뱀, 문어. 그리고 꼬마 마법사 레미가 외우던 환상의 마법을 따라외치며 빙글빙글 돌았다 인형으로 유대감을 쌓은 날이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았다. 간혹 사람들은 상식 같은 걸 두고 쓸데없는 것만 기억한다고 놀리지만 (최근까지도 놀림받는다.) 그때가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기억들은 무슨 수를 쓰든 다시 만들 수가 없어서 어린 시절 채우지 못한 추억이 없으면 놀림이 아니라 동정과 소외감을 받게 되니 차라리 회상할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게 낫다. 어쨌든 어릴 때 인형놀이를 하면 인지발달과 상상력을 키우기 좋다고 하지만 딱 한 번 인형 하나가 상상보다 더한 현실을 만들어낸 적이 있었다.
쇼롱이를 만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모두 분주하게 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운동장. 그 당시의 체육대회는 규모가 정말 커서 전날 체육대회 연습이라며 미리 재연을 하기도 하고 여학생들은 다 같이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고 남학생들은 태권 도복을 입고 단체로 품새 자세를 취하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구경 와서 인산인해를 이룬 큰 축제였다.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수백 명의 학생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 옆에는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살구색 바위 블록으로 쌓인 돌담이 있었는데 그 밑으로 강아지 인형이 있었다. 색 바랜 크림색 몸통에 누렁색 귀와 꼬리를 가진 둥그런 귀 둥그런 얼굴의 강아지. 파도 같은 인파 속에서 눈이 마주친 나와 강아지 인형. 평소에는 앞만 보고 걸었던 오르막길이 오늘은 우연히 고개가 돌아간 것도 신기한 날. 순간 사람들이 걸어가는 소음은 물에 잠긴 귀처럼 무뎌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포말처럼 하얗게 스쳐 지나가는 형상이었으며 인형만이 선명한 형태로 보였다. 곧바로 버려진 거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집으로 가져왔다. (주인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던 어릴 때 행동을 사과드립니다.) 인형들이 모인 내 방 책상 한편에 올려두었다. 그 자리에는 어느새 손때가 묻은 베베와 키키도 함께였다. 키키마저 배를 누르면 침묵을 부를 만큼 낡았는데 주워온 인형도 마침 그만큼 색 바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있어 빨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노견을 주웠구나.) 그 강아지는 쇼롱이라는 이름으로 베베랑 키키 옆자리에 앉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새 인형들이 거치는 전통처럼 며칠은 쇼롱이를 안고 지냈다. 학교에 가져가는 건 졸업했지만 집에선 늘 끼고 다녔고 침대에 누워서 함께 티브이를 봤다. 안방의 불이 끄고 싶어서 전등스위치 쪽으로 조준하여 쇼롱이를 던지다가 그만 열려있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변기에 빠트린 이후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내방에 쭉 진열되었다. 그렇게 몇 년 뒤 인형 정리를 하다가 베베와 쇼롱이를 번갈아보더니 너무나 늦게 깨달은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세트로 팔리는 인형이었나 싶을 정도로 베베와 쇼롱이는 동그란 눈과 검은색 코 소름 끼치게도 털 위치까지 똑같았다. 더 놀라운 건 베베는 해외에서 아버지가 사다 주셨고 쇼롱이는 제조국도 모르는 운동장에서 주워온 인형인데 생긴 곳은 다르면서 어떻게 솜을 나눈 것처럼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쇼롱이가 마치 의젓한 오빠 강아지처럼 보였다. 나는 이것을 기적적인 운명이라 여겼다. 베베를 선물받았던 2002년의 나에게 훗날 "너는 4년 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남매같이 똑닮은 인형을 주워온다"라고 말해줬다면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사촌들이랑 인형으로 놀 때도 몰래 베베를 학교에 가져갔을 때도 먼지에 얼굴이 까매질 때도 나는 감히 생각했을까 우연을 넘는 엄청난 운명이 겹칠 거라고. 초등학생의 내가 그때 고개를 돌려 쇼롱이를 보지 않았더라면 베베는 그저 많은 애착 인형 중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쇼롱이가 있어 베베는 상상도 못한 곳에서 재회한 오빠와 동생 강아지라는 서사로 내 머릿속에 더욱 깊이 자리 잡았다. 누구나 이런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싶어 하니까 나는 오로지 나만 가지고 있을 특별한 기억에 남는 인형이 생겨서 괜스레 우쭐해진다. (특이한 기억을 가진 사람 있어? 하고 물으면 대답도 전에 우쭐우쭐해진다.)
어른이 되고 집을 비우는 날이 점차 늘어났다. 인형은 장난감에서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략하고 매일 껴안고 자던 침대에서 책상 한구석 위 칸으로 점점 멀어져 가다가 결국 다 같이 한 봉투에 묶여 옷장 안 구석 신세가 됐다. 검은 비닐봉지를 다시 열었을 때는 대청소를 하다 잠시 추억에 젖을뿐이고. 다시 옷장에 넣어버리기 일쑤였다. 어른은 옷장 안에서 옷 말고는 꺼내가는 것이 없었다. 봉투를 완전히 꺼내 인형들을 탈탈 쏟아부었던 날은 바로 이사 가는 날이었다.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 순간. 필요 없는 것들은 모두 버리고 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들을 하나씩 집어 들고 살펴보곤 대부분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모두 아끼고 애정하는 인형들이었지만 옛날에 아꼈다는 이유로 새 집에까지 가져가면 추억이 미련으로 변질될까 봐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 당시엔 바자회나 중고거래 같은 것도 활성화되지 않아서 아쉽게도 대부분 버리는 것으로 선택했다. 버려지는 인형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마침내 손에 베베와 키키 쇼롱이가 잡혔다. 그 세 마리 가족은 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게 가장 추억이 많이 깃들은 인형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쇼롱이는 베베와 똑같이 생겨서 신기했다는 특이한 일화가 더욱 감명 깊어 베베와 차마 떼 놓을 수가 없었다.
추억은 사람의 완고한 다짐을 방해할 수 있을 만큼 질기고 그 안에 젖을 수 있을 만큼 깊다. 결국 이 세 가족은 새로 이사 온 집까지 함께했다. 나는 오랜만에 이 가족을 꺼내 책상 옆에 진열해두었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일 수 있는 거리까지 나와 인형은 다시 가까워졌다. 책상에 앉아있다가 만져보기도 하고 다시 옛날처럼 청소하다가 같이 빨기도 하고 부모님은 가끔 어른이 되어서도 왜 애들처럼 인형을 두냐고 놀리곤 했는데, 베베와 키키 쇼롱이는 다른 소중한 것들과 더불어 지금의 나를 추구하는 감정들의 근원이자 정수 다른 의미로는 친구 같은 존재라서 차마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얻는 인형 뽑기의 인형에서는 만들 수 없는 단전에서부터 쌓인 애착은 확실히 현재에선 쌓을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애착이 붙은 물건은 내 발목이 아니라 손을 잡는다는 말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