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피규어가 아닙니다.

소년 피규어

by 얼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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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디서 샀더라?"



처음 홍대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너무 어려서 넓은 곳을 탐색할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인지 집 근처 시내 로데오 거리와 비교하면 미로 수준이었던 홍대 거리에 압도당해 길 잃은 병아리처럼 말만 버벅대며 헤매다가 같이 온 친구가 멀미를 해서 슈퍼에서 물을 사 마시며 숨을 돌리고 근처 한스델리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바로 지하철을 타고 홈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 근처의 자주 갔던 마음 놓이는 롯데리아로 들어가 양념감자를 사 먹으며 우리에겐 너무 무서운 곳이라고 대화를 나눴다. 어렸던 나와 친구에겐 즐기기엔 너무 낯선 장소라고 기억에 남은 뒤로 그 뒤로 홍대에 가는 일은 없었다. 그 당시 에는 스마트폰도 없어서 지도를 어디서 구하는지도 몰랐으니까 어리숙한 겁쟁이는 바로 도망갈 만도 했다.



20221028_153904.jpg 다소곳



"어른이 되고 다시 찾은 그 거리."


여유와 용기는 어른에게 주는 게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난다는 것을 충분히 성장을 통해 알았다. 어른이 되고 난 후 그때 그 친구와 다시 홍대를 방문했다. 그 충분히라는 의미는 단순한 문제는 스스로 해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길을 잃고 낯선 곳을 헤맬 때 머릿속이 하얘지면 집에 가고 싶다는 불안 대신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보는 사고를 지닌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기술의 발전도 뒷받침해주었고) 체인점이 아닌 이색 레스토랑도 가고 화질이 좋아진 스티커 사진도 찍어보고 소품샵 투어를 다니며 예쁜 물건들도 구경하고 공방도 가서 직접 그림도 그리고 좋은 추억을 쌓았다. 예전의 무서웠던 기억이 교차되니 같은 거리를 걸을 때도 이곳을 왜 그리 무서워했을까. 과거의 내가 좀 더 용감했으면 좋겠다는 약간의 후회를 하곤 돌아가는 길 해가 뉘엿뉘엿 사라져 갈 때 골목길에서 한 가게를 마주쳤다.



20221028_153918.jpg 어디를 보는 걸까.

"저기도 소품샵 아니야? 들어가 보자."


해 질 녘이 되어 거리가 어두워지자 밝게 조명이 켜진 하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안도 내부도 새로 지어진 것처럼 새하얀 인테리어는 어둠 속이 시작되는 길거리에서 이목을 사기 쉬웠다. 친구와 함께 들어간 가게는 소형 피규어 전문 판매점이었는데 분홍색 건물에 아기자기한 장난감을 모아둔 소품샵이랑은 명확히 다른 그곳은 하나에 만원은 족히 넘는 손가락만 한 크기의 개성 있는 상자에 하나씩 포장된 뽑기 피규어들을 흐트러짐 없이 진열해두었고 벽에는 주먹에서 머리 크기의 만화나 게임 캐릭터 피규어 대신 모던한 디자인의 유니크한 피규어 (장식품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 들을 진열해두었다. 연예인들의 집에 있을 것 같은 매끄럽고 화려한 디자인을 구경하다가 가운데에 진열된 작은 상품들로 눈길을 돌렸다. 시내 문구점에서 몇 번 본 소니엔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의 피규어들이 정말 많았다. 여러 나라의 디자이너들의 영감들이 형체가 되어 모여있는 자리에 있으니 이중에 내 취향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마치 보호소의 동물들에게 둘러싸인 것처럼 나는 어느새 가장 마음에 드는 피규어의 진열대 앞에서 같은 상자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있었다.


20221028_153952.jpg 발밑에 회사 이름이 적혀있다.

"그렇게 만난 게 너였다."


진열장 안에서 생김새를 보고 표면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상자 겉면에 그려진 캐릭터 목록만 보고 원하는 게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를 피규어를 하나 샀다. 정확한 형태를 보장하는 소비를 좀 더 선호했기에 더구나 이런 비싼 인형 뽑기를 구매한 적은 없지만 그냥 모험심에 결정한 일이었다. 아마 오늘의 나들이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에 기분을 두어 에잇, 기분이다 하고 큰맘 먹고 산 게 분명하다. 사소한 거라도 좋았다는 추억과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성취감을 기념으로 남길만한 물건이 된 것이다. 나도 오늘 낯선 곳에서 모험을 했고 이제 상자 안에 들어있는 녀석도 우리 집을 모험하게 될 운명이라 생각하면 사람의 소비의 목적은 이성과 감정을 다 포함해서 다양성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홍대에서 놀고 돌아가는 길에 피규어 한 개 샀다는 말을 꽤 거창하게 포장한 것 같지만.)




20221028_154018.jpg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왔다.

"나와 너 너와 나."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상자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해보았다. 디자이너 분께서 심혈을 기울여 귀여운 친구들을 만들었겠지만 나의 확고한 취향 밖에 나있는 인형들은 나오지 않길 바랬다. 그래도 원하는 게 나오길 바라는 게 도박하는 사람의 심정 아닌가. 내가 원하는 거 나오게 해 주세요! 하고 상자 속 포장지를 한번 더 뜯었다. 그렇게 저 하얀 고양이모자를 쓴 소년을 만났다. 어두운 밤에 가로등 빛에 의지해서 얼굴을 확인했을 때 나는 새 녀석을 녀석은 나를 만났다. 마음에 드는 소비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는 나한테 성급하게 만난 너는 그 시간도 참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이제 우리 집에 갈 거고 어디에 장식해두면 좋을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가방 한편이 두근거렸다.



20221028_154407.jpg 현재는 내 책상 옆 캔들 램프에 서있다.



"그윽하게 캔들을 바라보는 소년."



20221028_154429.jpg 램프를 킨 모습



"마치 가로등 밑에서 피규어 뜯었던 내 모습 같다."


저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책상 옆에 바로 있어서 힐끔힐끔 시선이 간다 저 눈빛이 되게 그윽해서 다른데 집중하고 있을 때 나를 쳐다보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눈빛이 초롱초롱했으면 사진 않았을 거 같다. 저 만사가 귀찮으면서도 피규어 세계에 군림하고 싶어 하는 야망이 1퍼센트 들어있는 시선... 그런 걸 나는 그윽하다고 한다. (옆에 초록색 장식품도 그렇고 다 정면을 볼 줄 모르네) 아무튼 볼 때마다 홍대에서 알차게 놀았던 추억이 한 번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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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뜻 하니 좋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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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뭐야?"



20221028_154834.jpg 옆에 있는 자석들은 또 뭐야.

"이거요?"


옆에 있는 자석들은 나중에 또 장대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이런 거 설명하는 거 좋아한다니까 정말)



20221028_154914.jpg 서커스 보이 밴드라고 쓰여있다.



"포토카드였습니다 짠"


상자 안에 같이 들어있었던 포토카드. 너무 귀여워서 버리지 않고

피겨를 위한 자화상처럼 보관해두었다.

잡동사니 정리하다가 자석 사이에 끼워놓은 것을 글 쓰다가 발견했다. 피규어 도안처럼 생겨서 더 귀엽다. 이렇게 만들겠습니다! 하고 최종으로 발표한 그림일까.



20221028_154940.jpg 자기 자화상을 흘겨보는 소년



"이 방에 전시된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저 미소"


(잘 보면 피규어는 웃고 있는데 그림은 무표정이다.) 결론은 고양이 소년 피규어는 홍대에서 놀다가 집에 가는 길에 충동구매한 뽑기 피규어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이걸 쓸데없는 소비라고 말하지만 우스갯소리로 산 사람들은 예쁜 쓰레기는 예쁨으로써 쓸모를 다했다고 받아치곤 한다. 사실상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쓸모가 없진 않다. 그저 방에 놓기만 하고 가끔 시선을 받는 피규어일지라도 좋은 하루를 보낸 뒤 산 기념품이라는 입장에선 저 피규어의 존재 자체는 그날 하루의 추억을 모두 가진 상징체가 된 셈이다. 그냥 좋은 하루를 보낸 것뿐만 아니라 다시 방문한거니까 (아주아주 별거 아닐지라도)



20221028_154956.jpg 저 살짝 튀어나온 코 합격.



"나를 주인으로 둔 심정은?"


소년이 내 방으로 들어온 지 몇 년이 지났다. 슬슬 머리색이 바래지고 발바닥은 닳고 있지만 (걸어 다니진 않음) 내가 너인 척 생각해보면 나를 주인으로 둔 너는 무슨 모험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몇 년 동안 계속 저 램프 자리에 둔 건 아니고 가끔은 침대 옆 탁상이나 높은 선반 위에 두기도 했었다. 내가 그에게 이불로 된 바다와 방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에 데려다주며 이제는 따듯한 태양 아래 일광욕을 시켜준 셈이다. 그렇게 구경을 하며 사는 소년의 입장에서 내 손을 탄 여행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20221028_155011.jpg 지금도 나를 이렇게 쳐다보고 있을 소년



"앞으로 다양한 걸 보게 해 줬으면."


작가 신청이 통과되었을 즘 이 글을 보셨을 분들은 이게 데체 무슨 소리인가 싶겠습니다.

사물에 감정을 투여해? 그게 뭔데 토이스토리냐? 싶을 만큼 저는 이런 회상을 늘여놓는 걸 좋아합니다.

이 거창하고 거친 글들이 감정적 허위가 아닌 아낌없이 감정을 주는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저랑 같은 몽상가는 공감하거나 혹은 조언을 해주시겠죠. 저는 무엇이든 꽂히든 계속해서 바라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멍 때린다는 표현이 알맞겠죠. 오늘 쓴 글도 소년 피규어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머릿속에 같은 주제가 다양한 문맥으로 떠오르고 그것들을 이어서 문장으로 만들어 글을 올려 머릿속을 비우고 (이 과정이 5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후 글이 된 기록을 다시 읽어보며 다시 생각을 정리하면 처음엔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진 구불거리는 개울가 같아도 계속 손과 머리를 거치면 언젠가는 유연하게 읽을 수 있는 강으로 변해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글이 작가 신청이 통과되었을 때 조금씩 문맥이 흐르는 글들이 쌓여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다음화를 기다리듯 빠른 성장을 보여드리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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