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고양이 유리병
어쩌면 앞으로도 쭉 감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처음에 만났던 것처럼. 죽은 듯이 자는 고양이 피규어는 마치 슈뢰딩거의 상자처럼 사실은 잠든 듯이 죽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피규어입니다만) 농담이고 그냥 꽃 속에서 잠자는 귀여운 고양이 피규어를 넣은 유리병 소품이다. 이 친구의 판매처는 진짜로 모르는 게 생일선물로 받은 거라서 내가 직접 구매한 게 아니었다.
20대 초반에 직장 때문에 강원도에서 3년 가까이 혼자 살던 나는 친구들을 못 본 탓에 외로움이 증폭된 상태였었다. (거기서도 외로움을 달랠 핑계로 이것저것 많이 샀었다.) 거창한 여가활동 없이 직장생활만 하니 비 온 뒤 땅처럼 굳어져가는 통장 잔액도 있으니 다가오는 친구의 생일날 나는 만날 수도 없는데 이렇게라도 해줘야지 싶은 마음에 인터넷에 의지해 친구가 좋아할 만한 인형이나 가방을 잔뜩 사서 커다란 박스에 담아 택배로 보냈었다. 처음으로 생일선물에 10만 원을 넘게 쓴 사실을 알고 이것이 어른의 맛이구나 하고 20살 초반에 느꼈다. 그런데 인터넷 쇼핑을 너무 빙산의 일각만 찾았기에 선물들은 다 표현하자면 메이드 인 차이나 보세 같은 품질이 대부분이었다. (이 점은 아직도 후회한다)
감동한 친구는 며칠 간격으로 내가 준 가방과 립스틱을 쓰고 외출하는 사진을 몇 차례 보내주었다. 뭐 하나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주머니 열쇠고리도 가방 한쪽에 달아두고 얇고 힘없을 동물 귀 달린 파우치 안에는 작은 메모지들을 넣어두었다. 내 정성이 친구의 일상에 잘 적응해 들어갔다. 기쁜 만큼 다음엔 더 완벽하게 해 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내 생일이 가까워질 즈음 퇴사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친구는 생일선물을 잔뜩 준비해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산타클로스 같았다. 그녀 집에 갔는데 선물 규모가 이삿짐인 줄 알았다.
귀엽고.. 실속 있고.. 맘에 쏙 들고.. 세상엔 이런 것들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예쁜 물건들을 어디서 모아 왔을까. 직업상 사용금지였던 향긋한 향수와 평생 시들지 않을 금색의 장미 새로 이사한 집을 위한 앤티크 한 냄비받침 그리고 고양이 피겨 장식 한 면에 플라스틱이 붙어 내용물이 보이는 흰색 커다란 쇼핑백 안에 숨죽여 개봉을 기다리는 포장박스들 리본 하나하나가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묶여있는 모습이 택배박스에 그냥 다 몰아넣었던 나랑은 무척 비교되었다. 우리는 10년 넘게 친구였기 때문에 상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서로 선물 하나라도 최대의 실용성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선물을 골라왔다. 이날 생일을 기점으로 숲만 주구좡창 거닐던 사람이 이제는 바다도 가보고 동굴에도 가본 셈이다 친구 덕분에. 역시 세상은 나 혼자서 일깨워가는데 무리가 잇는구나. 곁에 있기만 해도 다들 알게 모르게 서로 이렇게 돕는구나. 그래서 혼자 헤쳐나간다는 건 더한 각오가 있어야 하나 보다. 친구처럼 센스 있는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결코 혼자는 어려웠을 것이다. 네이버 쇼핑에 친구 선물 이런 거나 검색했을지도.
내 친구가 아주 센스 있고 맘에 드는 선물을 줬다. 유리병 안에 잠든 고양이를 계속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저 안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키가 커서 다리가 저려서 오래 앉아있지도 못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좁은 상자에 물건을 가득 정리해 넣거나 침대 한편에 인형을 가득 끼워 넣고 같이 이불을 덮으면 왠지 모를 안정감이 들었다. 어릴 때 박스의 뚜껑 부분 위에 인형을 모두 올려놓고(정확히는 욱여넣고) 뱃놀이를 할 때 나는 주로 이런 소리를 했다. "파도 바람에 등은 춥지만 다 같이 모여 앉아 이불을 나눠 덮으니 가슴이 따듯해." 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 옆에 눕혀둔 복슬 털이 많은 인형이더라도 다 같이 이불을 덮어주어야 하며 이불이 모자라면 수건이라도 가져와서 하나라도 따듯하게 덮어줘야 했다. 그렇게 무생물에게 친절한데 정작 기르던 강아지에는 관심도 안 가졌다.
아무튼 얘는 내 취향이다. 병 안에 들어있는 것도 내 취향이고 그 안에 잠자는 고양이가 있다는 것도 그리고 삭막할까 봐 주변에 꽃도 심어놓은 게 모든 것이 소비를 올리는 부분들로만 적당히 채워져 있다. (동네 문방구에서 스노볼이나 유리병 담긴 편지 등을 사던 사람을 위한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 저 안에 있는 것이 나라면 무슨 느낌일지 상상이 되지 않아서 대신 상상해줄 만화를 그렸다. 동그란 병 안에 갇힌 알사탕의 표류기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알사탕이 들어있는 유리병이 바다에 빠져 폭풍우를 견디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는 인형에게도 이불을 덮어주는 섬세한 면이 있어서 병의 바닥에는 푹신한 솜과 바닷속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페트병을 같이 묶어주었다. 그리고 혼자 빠지면 외로울까 봐 알사탕은 네 개가 들어있었다. 그렇게 어둡고 거센 파도를 안전하게 구경하는 알사탕들의 이야기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저 고양이 병을 보면 계속 생각이 난다.
어릴 때 성향을 비교해보면 나는 아무래도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하는 삶을 산거 같다. 마음이 맞는 친구 몇 명과 과제 및 공부는 전부 독학 취미는 혼자 몰두할 수 있는 것 심지어 회사도 홀로 떨어진 곳에서 자취 좁은 곳에 홀로 편안히 있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내가 계속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도 이어진 암시 같았지만 앞에서 말한 혼자는 무서우니 여럿이 함께한 알사탕 이야기라던가 수건까지 끌어와 인형에게 덮어준 이타심 뱃놀이에서 모두 함께 있으니 따듯하다는 대사를 생각하면 이제 공존하는 삶을 살 차례가 온 것뿐이다.
(혼자 헤쳐나가는 삶은 어떠셨나요? 여기까지 체험판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공존했던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혼자서도 잘 지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고 입사의 끝은 은퇴인 것처럼 모든 만남의 끝은 자신과의 만남이다. 남들과 있으면서 회식이나 사교모임 등을 나가다 보면 즐거움만 얻고 돌아오는 게 아닌 회의감을 안고 돌아오기도 한다. 남들에게 쓴소리를 듣고 돌아올 수도 있다. 가스 라이팅이던 진심 어린 조언이던 돌아가는 길을 거북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남이 끝나고 비로소 혼자의 시간이 온다. 나는 그때 나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내가 들어야 할 것과 걸러야 할 것들을 자신의 기준대로 정하면서 자기 계발을 한다. 그것이 상승이든 하강이든 관계없이 받아들이는 나는 그때 혼자라는 것이고 나만이 그렇게 나를 혼자 지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약도가 된다. (부모님이 잔소리를 해도 받아들이는 건 나 스스로 해야 하는 것처럼 그래서 애들이 말을 안 듣는 걸 수도) 그렇게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하나가 되든 물과 기름이 되든 어쨌든 파도처럼 부숴저봐야 해류에서 온전히 안심할 수 있게 된다. 이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구나 하고.
얘 눈감고 있지 참, 내가 대신 보자면 소품 하나하나 보면 만족스러운 것들이지만 내 방에 모여있으면 조화와 난잡함 그 사이가 보인다. 예쁘지만 같이 있으면 인테리어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애매한 것들의 향연 마치 사회에 녹아든 사람들처럼 (비록 넌 소품이지만) 서로 각자의 개성을 가진 디자이너의 손에서 태어나서 작은 사회로 모인 세계에서 자신만의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언제든 누구와 함께 할 수 있게 입구는 열어두고 홀로 자는 것을 즐기는 그야말로 무생물이기에 제일 이성적으로 사는 모습이 보인다.
무성이 제일 이성처럼 사네.
생각은 나 혼자 하고 나 혼자 받아들이겠지만 결국엔 이런 생각을 정리하게 만들어준 건 너였다. 정확히는 내 친구였다. 친구 역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나보다 일찍 알아챈 사람 중 하나다. 그 전달이 이 선물을 통해 나한테 전달되었고 나한테도 같은 가르침이 돌아온다. 이렇게 나는 혼자 사는 것을 그만두는 것을 배웠다. 본질적으로 고양이는 혼자지만 열리는 뚜껑이 있고 어디든 놓을 수 있는 점에서 다른 친구와 (고양이 소년 피규어라던지) 함께 있을 수 있다.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까 나도 소품과 다를 바 없이 여럿 사람들의 옆에 있어보고 내 방에 모인 좋아하는 것들처럼 내 주변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 이루다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숨을 돌리다가 그 공간으로 타인을 부르는 삶을 그렇게 교류를 이어서 공존을 할 시대가 언젠가 온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사진 속 노란 꽃처럼 봄이 올 때 느끼는 두근거림이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