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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혜 Aug 19. 2019

안전한 낭독 극장

진짜 이상한 공연

2018년 7월 - 안전한 낭독 극장


  말도 안 되는 공연을 벌려 놨다. 바쁜 시간 쪼개서 온 관객들을 위한 게 아니란다. 글 쓰다 지친 창작자들을 위한 작품이란다. 이 괴이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싶어 지난 달 안전가옥 에서 열린 <안전한 낭독 극장>을 관람했다.
  당시 내 머릿속엔 딴 생각이 가득했다. 낯선 실험극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올해 진행할 ‘물’ 관련 작품에 대한 압박감이 더 컸다. 물, 비, 바다, 안개 같은 습한 소재들을 죄다 긁어모아 스스로 머신러닝 중이었다. 브릿G에서 연재된 유권조 작가의 작품, 이 날 공연 으로 각색된 그의 <봄비가 내려:4월20일(곡우)>도 창작을 위한 영감 습득을 위한 것이었다. 봄비란 소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했다. 공연 보러 온 동기는 그랬다. 

  뜻밖의 장소에서 과거를 마주할 때.
  지금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 오면서 잃어버린 건 무엇인지 배운다. 공연을 보는 내내 오 래 전 잊고 있던 시간이 차례대로 스쳐지나갔다. 작가를 꿈꾸며 꿈 곁을 맴맴 돌던 스물여섯. 골방에서 습작만 쏟아내던 스물일곱. 흔히 공식이라 말하는 것들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방식 을 찾겠다며 버티던 스물여덟. 필름처럼 넘겨지는 내 삶의 순간들 사이로, 공연 속 흰 밥이, 달래가, 그리고 회초리 소리가 녹아들었다. 
  아무도 응원해 주던 사람이 없었다. 작가가 되겠다며 국문과를 나왔는데, 매체 변화에 따른 새로운 글쓰기 해보겠다며 머리털 쥐어 뜯어가며 대학원까지 겨우 졸업했는데, 세상은 내게 글쓰기보단 다른 안정적인 것을 바라고 기대했다. 졸업 후, 대부분 거기에 순응하며 살았다. 남들이 박수 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갔다. 그러다, 멀쩡히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 때려치우고 나왔을 땐, 어느 누구도 박수치지 않았다. 네가 도대체 왜? 
  스스로가 작가라 생각했지만, 타인의 눈에는 철없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사회에선, 스펙은 넘치는데 취업도 못하는 청년 백수란 프레임을 씌웠다. 여자니까 시집이나 가라. 결혼해서 글 써라. 위해서 한 말이겠으나 듣고 싶지 않았던 말들뿐이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사회로 부터의 고립. 초라한 모습에 사람을 만나기 싫었다. 친구들을 보면, 지금 내가 잘못살고 있나 생각만 들어서 더 초라해졌다. 
  완벽하게 혼자였다. 
  소설가 김영하가 어느 인터뷰에서 ‘다행히 내겐 작가 지망생 아들 책상 치워 주던 부모가 있었다’고 한 것처럼, 그 시절 내게 가족이 있었다. 네 또래 여자애들 직장 다니면서 편하게 사는데 왜 사서 고생하니. 그러면서도 강아지 산책 시키듯 여동생 데리고 나가서 밥 먹이던 오빠.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데 ‘언젠가 네가 쓴 글이 잘 될 거다(그래도 결혼은 하면 안 되겠 니?)’ 달래던 엄마. 평생 구두 한 켤레 단벌 신사 왕 구두쇠 아빠가 몰래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간 쪽지와 생활비. 
  그 기운을 받아 얼마나 무모한 글쓰기를 했던가. 신춘문예에는 좋아하는 소재와 공식이 있 다는데, 로맨스 장르 소설을 들이밀었다. 드라마로 갈 법한 소재를 영화 시나리오로 우겨 넣 었고, 그 거친 상태로 공모전에 냈다. 결론은 모두 다 탈락이었다. 결국 경장편 소설을 썼고 인터넷을 검색해 데뷔 안 한 신인의 원고를 받는 출판사에 무작위로 메일을 보냈다. 몇 년 간 모두에게 거절당하는 삶을 살았다. 그 깜깜한 시간에 치여서 아주 작은 성취감이라도 맛보기 위해 동네 백일장에 나갔다. 거기서도 떨어져서, 무서워서 쓰지도 못하는 여성용 탐폰을 사은 품으로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내가 쓴 글을 원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글을 기술적으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배워서 쓰자고. 세상에 먹힐 만한 걸 쓰겠 다고. 돈이 되는 작품을 생산해 내겠다고 악악 거렸다. 기획이 먹힐 만한지. 소재가 핫 한지. 캐릭터는 매력적인지. 구성은 빈틈이 없는지. 주제 의식은 선명한지. 하나 둘 씩 크고 작은 작 품들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점점 더 나는 테크니컬한 글쓰기에 집착했다. 좋은 작품을 쓰기보다, 먹힐 작품을 쓰겠단 일종의 독기였다. 글을 작품이 아닌, IP(지적 재산권)로 대했다. 감정이 아닌 논리로 글을 썼다. 
 
  그게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잃어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이상한 낭독 극장이 끝났다. 작가가 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 고, 보고 들은 이들이 모여 좌담을 나눴다. 극 중 회초리 소리는 일부러 다르게 낸 거냐. 흰 쌀밥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원작자와 배우와 진행자와 관객이 다양한 감정들을 주고 받았다. ‘물’소재에 대한 작품 감상 및 분석을 하러 왔던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서서히 젖 어 들었다. 논리보다 감성이 차오르는 시간이었다. 
  그대여 힘이 돼 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공연에서 불렀던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따라 부르며 집에 와서 예전에 쓰던 작가노트를 펼쳤다. 세계관, 캐릭터, 플롯 아무 것도 모르지만 오롯이 감성에 취해 썼던 서툰 문장들이 비 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잊고 있던 옛 노트들을 다시 펼쳐볼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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