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1년 이용기
2018년 8월 - 벌써 일 년 (1)
앞으로 소설은 어떻게 될까.
연구 논문 주제였다. 몇 개월 동안 데이터를 수집해도, 내 능력 부족인지, 이 시장의 특성인지 자료가 없었다. 세상의 반응에 따라 논문 주제도 유행 따라 변한다. 그래서 주제 선정 자체가 올드한 게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요즘은 웹툰이 대세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읽고 쓸 줄 아는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다양한 이야기가 모일 수 있고,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로 OSMU 될 수 있는 원천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종이책 시장이 죽어간다해도,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대중에게 다듬어진 형태로 제공되는 최소한의 모습 생각했다.
연구는 막히고, 글은 안 써지고, 답답했다.
그게 일 년 전이다.
올 여름 북극곰을 위한답시고 선풍기에 의존해 살았지만, 구워 삶아 버릴 것만 같던 올 여름보다 내겐 지난 여름이 더 최악이었다. 이번에 비해 작년엔 더운 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만큼 심경적으로 많이 다치고 지쳤고 걸어다닐 때마다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소설의 미래’를 연구한답시고 앉아 있는데 ‘나의 미래’는 보이지 않고, 글 쓴다고 하면서도 내 인생은한 글자도 적어 내리지 못하는 시기였다.
그 쯤, 텀블벅에서 오픈 전 ‘안전가옥’ 을 만났다. 지금은 거기에 무어라 적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희미하게나마 떠오르는 건, 거친 펜 선으로 무겁게 걸음을 걷는 그림과, ‘어렵게 글쓰는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말이었다. 취지는 좋은데, 어떤 미친 놈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업을 하나 걱정부터 앞섰다. 창작으로 뛰어드는 현실 감각 잃은 사람들을 많이 봐왔고, 나도 몇 년 전까지는 그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다니다 때려치고 글 쓰겠다 했을 때. 지금도 가끔 연락 주시는 팀장님이나 다른 직원 친구들이 모두 뜯어 말렸다. 평소 나를 고깝게 보시던 분들도, 혹은 전혀 관련 없는 분들도 오며 가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였다. 약간의 응원이라도 얻고자 한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주위에서 글 쓴다고 절 들어가겠다는 사람 보면 도시락 싸들고 가서 말리겠다 적혀 있어서 꽤 허탈했었다. 그 땐 당신들이 뭔데 내 인생을 막아, 라는 설익은 생각들로 똘똘 뭉쳤었다. 생고생 진탕 하고 나서 그들이 얼마나 날 걱정했던건지 알기 전까지.
연구원하며 모은 돈 조금씩 갉아 먹으며 공부하던 늦깎이 박사과정생이었고, 프로젝트도 없어서 돈 한 푼 아쉬울 때였다. 그래도 내가 기쁜 마음으로 낼 수 있는 약간의 돈을 텀블벅에 후원했다. 매체 변화에 민감하고 적응하는데 거부감 없는 젊은 피가 수혈되어, 이 정체된 곳에 뭔가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바람이었다. 장르문학이어서 더 응원하고픈 마음도 컸다. 전학생 마음처럼 여기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해 라이브러리를 둘러 보았을 때.
그 반가움.
소설도 있고, 만화책도 있고, 드라마 극본도 있었다. 작법서도 있고, 철학서도 있었다. 책들만 봐도 알 수 있는 거. 아, 같은 시대를 살아온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구나. 책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좋아하는 책이 같은 사람들. ‘소피의 세계’를 읽고, ‘장미의 이름으로’를 읽고, ‘슬램덩크’와 ‘몬스터’를 읽고, ‘소설쓰기의 모든 것’ 작법서 시리즈를 들춰 봤을 누군가. ‘플립’ 원작을 읽고, 요즘 드라마계 화두인 ‘비밀의 숲’ 대본집을 펼쳐 봤을 누군가. 출판 만화계를 쓸고 간 ‘중쇄를 찍자’도 웃고 울며 봤을 또 다른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