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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혜 Aug 19. 2019

벌써 일 년 (2)

작업실 1년 이용기

2018년 9월 - 벌써 일 년 (2)


그로부터 이곳에서의 일 년이 시작됐다.

가을, 겨울, 봄, 여름. 계절의 변화만큼 차갑기도 뜨겁기도 한 시간. 지독한 추위로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얼어붙었다가, 숨 막힐 만큼 답답한 폭염을 고스란히 내려 받다가. 따지도 보면 이건 날씨 탓.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건 내 의도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니 그 자리에서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저 폭풍 같은 계절 속에 다들 묵묵히 견뎌내고 있으니, 보고 있으면 언젠가 싹이 틔어지리라.

긴 시간을 한 문단으로 요약하는 건 그만큼 내 속으로 녹여낸 생각들이 많다는 반증일이도 모르겠다. 힘들 때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진부하지만 초심(初審). 한참 정신적으로 힘들 때 텀블벅 이벤트에 걸려 이곳으로 흘러들었다가 잠시 쉴 수 있었으니까. 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 란 팻말 문구를 보면서, 일 년 전, 안정을 찾았다. 편안해서 참 좋다. (물론, 그 이후 더 큰 폭풍우가 몰아쳐서 여러 차례 혼자 울기도 했다.)

왜 편안했을까.

이곳엔 기존 창작판에서 느낀 문화 같은 게 없었다. 그게 첫 작품이든, 혹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그저 ‘작가’라는 말에 신기해하는 눈동자들. 올 초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 간 한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래도 여긴 작가를 위해주는 곳 같지 않냐. 지망생이어도, 작은 출판사라도, 어쨌든 창작이라는 판에 있는 누군가에게 최대한 뭔가를 나누고자 했다. (물론, 그 사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상처를 주기도 했다.)

다른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곳이 여성 창작자에게 주는 안전한 느낌이었다. 기존 판에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 일종의 얄팍한 권력을 가진 이들이, 가진 거라곤 꿈밖에 없는 가난한 여성에게 저지르는 말도 안 되는 행패들을 많이 듣고 보았다. 끌어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들. 그것을 직접 당한 이들만큼은 아니겠으나, 전해들을 때마다 같은 여성 창작자로서 속에서 열불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래서 적어도 이 판에 모범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생기고, 좋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며, 가진 게 꿈 뿐인 사람들이 안전하게 꿈을 틔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오랫동안 바라왔다. 일 년을 여기서 보내기로 하면서 스스로 가진 초심(初心), 그 안에 든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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