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공유
2018년 10월 - 음악을 먹고 소설을 뱉는
글이 안 써지면 자꾸 뭘 먹는다.
사탕을 씹어 깨 뜨리거나,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차를 머금거나. 금방 밥을 먹었는데도 또 빵을 사와 뜯는다. 집중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안 되는 날에는 ‘쓰는 시간’ 보다 ‘먹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런 날은 무진장 괴롭다. 아, 오늘 내가 하루종일 작업한 건, 내 뱃살과 허벅지살이구나.
지구책으로 찾은 게 결이 비슷한 다른 창작물이다. 쓰려고 하는 작품과 톤 앤 매너가 비슷한 사진들을 보며 시야를 환기한다. 옛 사람이 그린 그림도 좋고, 요즘 사람이 만든 영화나 드라마도 좋다. 그의 감정을 공유 하든, 그로 인해 나의 감정 어딘가가 긁혀 자극을 받든. 뭐든 좋다.
그 중에서도 가장 즉각적인 건 뭐니뭐니 해도 음악이었다. 노래의 맛을 알아 버린 건,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새내기 작가 시절이다. 여럿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골똘히 고민하며 기획안을 들이밀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써낼 수 없는 -그러나 무척 있어 보이는- 무게감의 아이템이었는데, 연출님이 거기 어울릴만한 -그리고 나의 색깔에 맞는- 음악을 추천해주셨다. 곡명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도 반복해 들어서 체화된 리듬은 떠오른다. 딴 따단 딴딴. 따 따단 딴딴. 뮤직비디오는 검정과 짙은 보라가 뒤섞인 도회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이었고, 덕분에 꽤 세련되고 트렌디한 글이 나왔다.
투자 문제로 작품이 무기한 홀딩되고, 완성된 글을 출판사를 통해 전자책으로 내게 되었다. 편집자 손을 거쳐 설정상 오류 잡고 이것저것 상의하고 밉든 곱든 어쨌든 비운의 첫 책이 만들어져갔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보낸 표지 시안들이 왔는데, 거기에 글 쓰면서 내가 듣고 보고 했던 뮤직 비디오 느낌이 고스란히 다 담겨 있었다.
나중에 이 경험을 외국에서 유학한 다른 창작자 언니에게 들려준 적 있는데, 자기는 학교에서 비슷한 과제를 받았다고 했다. 이 음악을 조각으로 만들어보라. 만든 조각을 다시 에세이로 써보라. 그리고 글을 읽고 새로운 조각으로 표현해보라.
그래서 처음 들은 그 음악 느낌이 나왔어요? 아니, 넌 힙합을 듣고 힙하고 핫한 걸 썼나 보다. 난 민요만 나오더라고... 민요가 힙하고 핫한 건 아니고요? … 맞아, 어떻게 알았어?
누군가 만든 음악을 먹고, 감정을 모아 소설로 뱉고, 또 누군가 그걸 보고 디자인을 한다.
우리는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출처] [10월] 음악을 먹고 소설을 뱉는 by 김민혜|작성자 안전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