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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by 이원율 Mar 09. 2018

제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 7

<그림>

#7.  나는 한 도시에 발을 딛을 때, 그 안에 자리 잡은 미술관을 꼭 방문한다. 눈보라를 뚫고 찾은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송영옥 탄생 100주년전이 열리는 중이었다.      


 3ㆍ1 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17년 제주에서 세상 빛을 본 송영옥은 오사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의 소재는 주로 고향 제주도와 어부, 어선 등이었다. 어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 아닌 사람을 공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썩어빠진 구두를 그린 적이 있다. 그 의도는 얼핏 보면 알아내기 쉽지 않다. 고흐는 수줍은 남자였다. 그는 당시 좋아했던 화가 쥘 브르통을 만나고자 100㎞ 넘는 길을 걸었다. 문 앞에 섰지만, 수차례 망설이다 노크도 못한 채 터벅터벅 돌아온다. 그림 속 구두가 그때 고흐가 신은 신발이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해석의 폭은 썰물이 찾아온 바다처럼 넓어진다.      



 송영옥이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일관된 감정은 그리움이었다고 본다. 돈을 벌고 싶은 화가는 최대한 많은 소재를 그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남의 땅에 있으면서 똑같은 그림을 수차례 그린다. 지겹도록 비슷하다. 사심보다는 감정의 배출구로 휩싸인 감정을 충실히 종이 위에 옮긴 것이다.      


 조개껍데기가 쌓여있는 흔한 해변, 여인들이 손빨래를 하는 흔한 계곡, 그물을 잡거나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있는 흔한 어부. 사실 인물화를 뺀 풍경화의 수준은 어느 정도 '그린다'고 하는 화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차이점은 감정의 유무다. 송영옥은 태생적으로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유쾌한 사람이었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꽤 솔직한 성격을 가졌을 것이다. 이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게스트하우스는 한산하다. 눈이 쏟아지는 바닷가를 보며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거창한 건 없다. 마트에서 산 회 두 접시와 고기, 냉동 피자 등이다. 남자 세 명이 마주 앉아 입에 음식을 넣는다. 인연의 끈을 살포시 쥐는 시간이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음식과 친하지 않았다. 막 구구단을 깨우칠 때쯤까지 나는 음식으로 인한 알레르기가 심했다. 고기류를 잘못 먹으면 온몸이 뒤집어지던 시기였다. 빨간 소고깃국에 있는 고기 한 점을 먹고 다음 날까지 아무렇지 않았을 때,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았다. 십여 년간 등에 이던 괜한 죄책감에서 벗어난 날이었을 것이다.(지금은 고기 좋아요. 더 주셔도 돼요)      


 그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했다. 대회에 앞서 체급 조절을 해야 할 단계까지 왔을 때 배고픔의 감정은 짜증을 넘어 분노로 다가왔다. 그 아픔에 벗어나기 위해 베개를 배에 꽁꽁 싸매고 잠든 날이 부지기수였다. 나이를 먹고 나서는 할 일이 참 많다고 생각돼 식사시간이 아까웠다. 그럴 때는 호두와 당근, 아몬드를 갉아 먹곤 했다. 배고픔은 내 일상을 툭툭 끊게 하는 요소였을 뿐, 그 이상 의미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음식의 중요성을 깨우친 건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다. 소위 땅에 떨어진 음식들도 주워 먹던 6개월의 수습 기간 이후 내 몸은 생각보다 더 망가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식사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음식 중 마늘, 호박, 버섯과 특히 친해졌다. 혼자 사는 남자 냉장고에 술은커녕 이런 재료들에 더 있어봐야 깻잎과 바나나뿐이니 집을 찾아온 사람 중 몇몇은 당황했을 수도 있다. 나는 내 몸이 어느 정도 정상궤도로 올라선 게, 이 재료로 만든 요리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요즘에는 음식 책도 많이 읽는다. 점점 더 친해지긴 할 모양이다.      


 음식을 두고는 이런 생각도 한다. 나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조언해주는 데 참 능력 없는 사람이라, 웬만한 말을 들어서는 "아, 그랬습니까…." 내지 "아, 큰일이군요." 정도 말고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아픔을 못 느낀다기보다는, 말을 아끼려는 탓에 시의적절한 위로의 문장을 찾기가 서툰 것이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식의 방송은 평생 못할 것이라며 슬퍼한 적도 있다. 영화 심야식당을 봤을 때, 말주변이 없는 사람일수록 음식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도 붙임성이 좋은 주방장은 아니다. 그는 함부로 조언을 남발하지 않고, 가만히 듣다가 "늘 먹던 것?"이라며 대꾸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음식은 백 마디 말보다도 그 사람에게 더 큰 위로를 준다. 음식으로 위로를 전한다는 일은 참 의미 있어 보였다.      



 이날 우리 세 명은 밑반찬과 같은 흔한 이야기를 나눈 후, 우연히 미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됐다. 미학과를 나온 태현 형은 에곤 실레를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언급했다. 그 이유를 투박하게 옮겨보자면, 이 남자는 삶과 죽음의 본질을 알고 이를 그림에 나타낼 줄 알았다. 어려운 말이다. 다만, 실레가 그 누구보다 불운한 삶을 살았으며, 얼마나 많은 순간 죽음을 생각하고 고민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실레는 상실에 익숙했다. 철도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매번 스케치북을 찢었고, 그런 모습을 보는 어머니도 애초 아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레가 15살 때 아버지는 매독으로 죽었다. 매독은 단순한 성병으로 인식되는 때가 많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정신병에 가깝다. 그는 병에 따른 아버지의 기행(奇行)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한참 그림을 그릴 때는 미성년자 소녀를 그렸다는 혐의로 체포된다. 누드모델로 선 빈곤층 소녀 가운데 한 명이 그를 고발한 것이다. 재판 도중 판사는 그의 그림 한 점을 직접 불태웠다. 이후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힘들게 결혼했지만, 결혼식 후 3일 만에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다. 기다리던 종전 직전, 아내는 임신 6개월 차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다.      


 실레 같은 성격에선, 매 순간 죽지 않았던 게 되레 이상하다. 다른 화가들이 생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죽음을 되새기며 불운들을 쏟아냈다. 그렇다 보니 그림에서는 삶과 함께 죽음이 뚝뚝 묻어난다. 한 잔 '짠'한 후 나도 실레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쌍꺼풀이 있는 그의 눈이 이내 반달 모양이 된다.      


 "형, 그런데 왜 미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이 말을 하자 쑥스럽게 웃는다. 첫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그 사람과 만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인생을 걸 만큼 좋았던 거예요?" 그때는 그것 말곤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포털에서 이름을 찾아보니 몇 편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다. 잘은 안 된 모양이다. "그 나이는, 첫사랑에 매달려 다들 그럴 때야."      


 "넌 참 일관된 사람이야."      


 그간 내가 만난 친구들을 봐 온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만나는 친구의 스타일이 한결같다는 얘기였다. 인제 와서 생각하면 이상형에 대한 내 가치관은 20살이 넘어서야 세워졌다. 그 틀은 20살, 나로는 처음으로 먼저 호감을 느낀 그 친구가 만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린 늘 엇갈렸다. 그런 일을 겪은 이후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더 방어적인 사람이 됐는지도 모른다.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먼저 다가가기는 늘 조심스럽다. 

   

 "그림은, 그리워하는 것."      


 태현 형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오겠다더니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미학을 배우면서 그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느냐고 물어봤을 때였다. 늦은 밤, 눈이 쌓인 풍경, 부엌에서 먹는 음식. 이 모든 건 어떤 감성적인 대화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한다. 경계해야 하는 그리움이란 감정은, 오직 예술세계에서만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나는 나와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잔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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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제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그림 읽어주는 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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