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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by 이원율 Mar 04. 2018

제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 6

<시(詩)>

#6.


 다음 날은 소리가 벽을 울릴 만큼 눈이 많이 왔다. 오전 9시 30분쯤이었다.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한다는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나는 촌장님이 만든 짜이를 마시면서 젖은 머리를 말렸다. 창문을 내다보며 아이젠을 다시 가방에서 뺐다. 이 날씨에 한라산을 가면 조난 당하기에 딱 좋다. 몇몇과 작별인사를 한 후 가볍게 가볼 만한 곳을 찾아봤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에, 움직임에는 제약이 따랐다. 막연히 비자림과 오설록을 가볼까 생각했지만, 비자림과 오설록 간 거리는 버스로만 2시간 30여 분에 이른다. 게스트하우스와 그나마 가까운 비자림도 버스로 1시간이 걸린다.   

   

 나는 이 섬으로 자전거ㆍ오토바이 일주를 하러 왔을 때도, 겨울 한라산을 처음 오르러 왔을 때도, 비자림이니 오설록이니 하는 이름있는 관광지를 찾은 적이 없다. 이번에는 제주도의 서쪽만 돌아다니기로 한 후, 비자림을 향해 움직였다. 대중교통은 상상 이상으로 뒤죽박죽이다. 진심으로 후회했다.      


 곳곳에 눈송이가 소금 가루처럼 흩뿌려져 있다. 날씨 탓인지 사람도 많지 않다. 비자나무들이 뿜고 있는 기운을 가지고자 숨을 들이쉰다. 그 공기는 눈을 뜨자마자 마시는 물처럼 정직하게 내 몸을 타고 흐른다.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몰려있는 숲이라고 하면 나름대로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도,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한 번 걷는 데 든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가며 걸었기에 평소 걸음걸이라면 40~50분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넓은 장소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비자림에서 비자나무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하는 건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비자림에서는 소리가 났다. 나를 괴롭히는 이명과는 다르다. 빈 소라 껍데기를 양 귀에 가져다 댔을 때 들려오는 동굴 소리다. 다른 소리는 잦아든다. 잡념 없이 내 걸음에만 집중했다. 머릿속 물감들이 흩뿌려졌다. 걷기만 해도 그 기운을 가져갈 수 있다는 말 때문인지, 걸음에 중독성이 느껴졌다. 러닝을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어릴 적 나이테 하나가 나무 나이 한 살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뒷산으로 가 나무 옹이를 뒤지고 다녔더랬다. 이 나무는 다섯 살, 이 나무는 동갑, 이 나무는 나보다 열 몇 살이 더 많아요. 세상 가장 신기하다는 듯 손을 잡고 말하는 내 모습에 어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때는 나이테를 하나 더 얻으려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도 서른 대여섯 개의 나이테를 품고 살아오던 터였다. "인생은 버티는 것이란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아라." 이 글을 쓸 때 그 사람은 내가 아닌 자신에게 그 말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말하는 자와 쓰는 자가 그 문구를 가장 많이 듣는 자다. 아무렴, 흔들리지 않고 견디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비자림을 벗어났을 때 P에게 비자나무 사진을 보냈다.      


 무척 힘들 때 나무를 안았는데,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던 그 아이다. 다가오는 상처를 밀어내지 않고 왔으니 차나 한잔하고 가시라고 말할 법한 아이였다. 동굴 속을 울리는 목소리로 혼자만의 세계를 버텨내는 듯한, 그 흐뭇한 모습을 나는 좋아했다.    

  

 "너무 예쁘네요. 저도 나무 보러 가고 싶어요." 답장이 오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화제를 이어간다. "어제 좋지 않은 꿈을 꿨어요." 그 꿈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 감정 소모가 심할 것 같다며 이를 소재로 5년 전에 쓴 글을 보내준다. 이 아이가 쓴 글을 읽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읽다 보면 펭귄의 말랑말랑한 목덜미를 만지는 듯(실제로 만져본 적은 없지만요)한 느낌이 든다.      


 높은 감수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우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소리를 지르면 그 안에서만 메아리가 돼 맴돈다. 물건을 툭 던지면 밑바닥으로 정직하게 떨어진다. 어딘가로 빠질 새도 없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런데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 소리를 듣다 보면 많은 상처를 빠짐없이 품고 왔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A4용지 4장 분량인 P의 글은 꿈에 대한 수필이다. 종종 좋지 않은 꿈을 꾸는 이 아이는 특히 잘 기억되는 게 소중한 것이 부서지는 꿈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꿈을 통해 지금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게 무엇인지 알 정도라는 문장도 눈길을 끈다.      


 누군가는 그래 봤자 꿈이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꿈이 사람의 기운을 얼마나 뺄 수 있는지 안다. 나쁜 꿈이란 건 워낙 괴랄(怪辣)스러워서, 상처가 깊을수록 그 순간은 현실보다 더 생생히 다가오곤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꿈은 희망을 잃었던 순간이 재현되는 악몽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말한다. "한 사람을 짓밟고 싶을 때는 처음부터 절망을 심어주지 마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망을 심어주고, 잡기 전에 눈앞에서 밟아버려라." 사람이 가장 절망을 느낄 때는 누가 봐도 추악한 악마를 마주할 때가 아닌, 천사 같은 악마를 마주할 때라는 말에 동의한다.      


 단단하지 못했던 때, 나는 개미굴에 빠진 적이 있다. 손을 뻗어보니 잡히는 건 어둠뿐이었다. 천정은 뻥 뚫려 있었지만 타고 올라가기에는 벽이 너무 높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가 보였다. 우리는 그 굴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짧은 시간 안에 친밀해졌다. 어느 날, 하늘에서 대여섯 개의 밧줄이 천천히 내려왔다. 느리지만 하루하루 착실히 내려오고 있는 덕에 우리는 곧 빠져나갈 것이라고 안도했다. 잠들 때도 웃던 시기였다.      


 밧줄들은 결국 손끝에 닿을 만큼 떨어졌다. 나와 친구는 각자 밧줄을 잡았다. '좋아, 우리 같이 이곳을 벗어나자.' 힘겹게 밧줄에 매달렸다. 한 뼘, 한 뼘 오를 때마다 선선한 바깥 공기가 몸을 휘감았다. 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밧줄이 뚝 끊어진다. 친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빛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어차피 밧줄은 많다. 나는 두 번째 밧줄에 매달린다. 손을 몇 번 뻗지도 않았는데 밧줄이 또 끊어진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마지막 밧줄마저 끊어지고 만다. 그러던 사이 함께 있던 친구는 개미굴을 빠져나간다. 밧줄은 모두 사라진다. 미친 듯이 벽을 긁고 있을 때, 그제야 나를 보는 수십 마리의 병정개미가 보인다.      


 나는 그 날, 개미굴과 같던 그 산꼭대기 속에서 서럽게 울었다.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그들 틈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일부러 밖에 나와 용암 같은 눈물을 내뱉었다. 그들은 차라리 밧줄을 내려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애초 개미굴에 넣을 것이라면 혼자 집어넣었어야 했다. 짜낼 즙을 다 짜낸 덕에, 이제는 눈물이 없어졌다. 그 꿈을 제주도로 가기 전 일주일에 한 번꼴로 꿨다. P는 꿈을 통해 현재 자신이 아끼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나는 꿈을 통해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인지 강제로 되새기게 된다.      


 "나무 냄새 많이 담아와요. 저는 흙냄새도 맡고 싶어요."      


 P가 말했다.      

 

 "돌아와서 저에게도 전해주세요"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속 무거운 무언가가 뒤뚱이며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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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제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그림 읽어주는 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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