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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Mar 31. 2018

0. 시작

<머리말>

 어릴 적에 할머니가 얘기했지. 아가, 남을 울리는 사람이 돼라. 할머니, 선생님이 그러던데, 남을 울리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래. 그 말을 듣고, 할머니의 장미꽃이 활짝 펴지면서, 아가, 남의 마음을 울리는 사람이 돼야 한다. 생이 고이 담긴 구겨진 두 손으로, 이제 막 백합이 되어가는 내 오른손을 꼭 붙잡고. 할머니, 할머니 손은 왜 맨날 따뜻해? 아가 손을 잡을 때는, 늘 따뜻하단다. 볼에 바람 넣고 고개를 갸우뚱할 때, 할머니가 나를 꼭 안았지. 따뜻한 목덜미와, 할머니의 한복 저고리 사이에서 들려오는 울림은, 여전히 내 손에 남아있지.


 지금 생각하면 나는 항상 울림을 가까이서 마주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릴 적에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는 아무 속박 없이 하고 싶은 공부만을 할 수 있던 때였습니다. 그때 '우리 아가는 내가 늘 믿는다'며 앞머리를 옅게 쓸어주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어릴 적에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는 잠들지 않기 위해 서로의 뺨을 후려치던 눈발 속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아가, 내가 꼭 보고 싶었다'며 버선발로 뛰어오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 기억이 짙은 덕에 나는 행복할 때 더 행복했고, 힘겨울 때 덜 힘겨울 수 있었습니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앞에 놓인 길 곳곳에서 수많은 삶을 마주할 것입니다.


 일과 돈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연인이 있다면 사랑하는 만큼 다투면서, 가끔은 나 자신을 추켜세우다가, 때로는 자신을 죽이고 싶은 생각도 들 것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많은 순간 나와 당신은 아릿한 과거를 돌아보며, 또 눈이 시릴 만큼 선한 미래를 다지면서 생을 꾸려갈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생존본능입니다. 어떤 궤적을 걸어온 사람이든, 그럴 때는 각자의 서랍 속을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찾아보면 나올 것입니다.


 처음 강물에 뛰어들어 별빛을 쫓던 시절, 가로수 그늘에 좋아하던 사람과 손잡고 걷던 순간, 앞으로 만나게 될 좋은 사람들에 대한 기대. 지친 나와 당신을 위한 연료가 될 다채로운 낭만 말입니다.


 문제는 서랍 대부분이 너무 낡고 정리가 돼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더 안쪽으로, 더 깊숙한 곳으로 손을 넣어 꿈을 꺼내기 위해서는 이를 자극하기 위한 울림이 필요합니다. 그 울림은 좋은 사람의 옷깃으로, 또 깔끔하게 내려오는 햇살과 가지런히 놓인 골목길로부터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좋은 그림이야말로 울림을 주는 데 딱 맞는 소재라고 봅니다.


 좋은 그림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그림은 '그때는 그랬다'던가, 어떤 그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던집니다. 그런 그림을 읽다 보면,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 서랍의 들썩임을 느낄 것입니다. 좋은 그림은, 감동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울림을 주는 그림을 모았습니다. 나는 이 그림을 통해 내 이야기를 풀어갈 것입니다.


 이 책이 당신에게 깊은 자극을 주기를 바랍니다. 잊은 과거, 꿈꾸는 미래를 낭만으로 다시 떠올리게 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에게 행복할 때 더 행복하고, 힘겨울 때 덜 힘겨울 수 있는 용기가 전해지길 기원합니다. 


빌헬름 하메르스회, Interior in Strandgade, Sunlight on the Floor,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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