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금쯤, 제주 #2

<냄새>

by 이원율

섬의 감촉을 느꼈을 때 코끝에선 옅은 소금 냄새가 나는 듯했다.


000038-3.jpg


소금 향을 따라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댄다.


코가 저민 느낌이다. 높은 기압으로 귀가 아플 때면 으레 겪는 증상이다. 좁아진 귓속에서 견딜 수 없던 세포들이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래!"라며 가까운 코로 피신하는 느낌이다. 후각이 민감해지는 것이다. 그러고는 2~3시간 후 내가 귀를 싸매고 있지 않을 때쯤 다시 돌아오곤 한다.


늘 그렇듯, 이명은 까다로운 친구다.


하지만 이로 인해 나는 여행지의 인상을 냄새로 기억하는 습관을 다질 수 있었다. 일본은 먼지 낀 전구와 빳빳한 나뭇잎 냄새, 인도네시아는 코르크 메모판과 물기 묻은 모래알 냄새로 기억되는 식이다.


내게 다가오는 제주도의 냄새는 비 온 뒤 아스팔트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


좋은 인상 덕분일까. 갓 복사한 종이 냄새, 새집에서 나는 굳기 직전 시멘트의 냄새, 아침에 눈 떴을 때 이불에서 나는 냄새도 떠오른다. 서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칠 때의 비껴지나가는 땀 냄새도 연상된다. 쉼표를 찍을 때마다 새로운 땅을 밟았던 탓일까. 이런 증상을 겪어야만 휴가가 시작됐다는 생각이다.


"이제 실감이 나."


내 양쪽 귀를 감싸주며 소곤대듯 말했다. 종이 위에 찍힌 잉크처럼 꽃물결로 넓어지는 목소리다. 파란빛의 수국 원피스가 하늘하늘했다.


우리가 휴가를 맞춰 떠나는 첫 여행지로 제주도를 택한 이유가 분명히 기억나진 않는다. 같이 밥을 먹고 옛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정해졌다. "제주도는 내게 늘 좋은 기억만 안겨줬으니까." 내가 말했다. "맞아."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 모양이 누운 반달처럼 바뀐다. "다음 휴가 때 같이 갈까?", "응." 우린 늘 이런 식이었다.


사진.jpg


평소라면 필시 공항, 공항 근처 카페에서 1~2시간은 멍하게 있다가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넋을 놓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차를 빌렸고 조작법을 능숙히 익혔다. 차 안에선 비에 젖은 레몬 방향제 향이 났다.


우리가 섬에 있는 많은 날 하늘은 흐렸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날씨 따위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그저 벗어났고 당분간은 갈 일이 없다. 무엇보다 일정이 자유롭다.


차가 움직였다. 첫 목적지는 구좌읍에 있는 카페 행온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금쯤, 제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