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가벼움과 무거움≫ #1.

①오판 :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by 이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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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판 :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6. 5~)


현실은 책 속에 있지 않다. 현실은 책 속에 전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그는 지쳐보였다.


나는 탈(脫) 수습을 1개월여 앞 둔 기자였다. 그런 햇병아리 눈에서도 초조함이 느껴졌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이 된 이래 최대 위기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2016년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큰 사고는 언제나 예고없이 일어나는 법이다.


정비업체 직원이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기계 수리를 하다 전동차에 끼여 사망했다. 주변 목격자가 쿵 하는 소리를 들을 만큼 노골적인 사고였다. 이로 인해 전동차 운행도 26여분 중단됐다.


치명적인 건이다.


통상 기사 가치는 사람으로 결정된다. 한 두명 목숨을 앗은 사고 기사가 몇억 원 재산 피해를 낸 재난 기사보다 우선 배치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다 이 사고는 하루 평균 800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안에서 일어났다. 이 일이 있기 3년 전 성수역, 9개월 전 강남역에서 똑같은 사망사고가 있던 상황이다. 사고를 육하원칙으로 풀어내는 스트레이트, 발생 원인과 전망을 예측하는 박스, 숨은 사실을 파헤치는 기획·탐사 등 기사는 각종 방식으로 며칠간은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예상대로였다. 기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력이 옅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이 사고에 대한 무게감은 점점 더해지기만 했다.


박원순 시장을 찾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서울 지하철 최종 관리자가 서울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는 그가 직접 말한대로 사고 발생 직후부터 뼈 아픈 실수를 한 후였다.


박원순 시장은 사고가 터진 직후 하던 일을 멈추고 현장으로 나서지 않았다. 다른 이도 아닌 그가. 당시 박원순 시장은 주된 지지층인 청년·비정규직을 위해 어딜가도 이들 권리를 강조했다. 그러던 사람이 꼭 필요한 시기에 움직이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망자인 김 군이 1997년생의 당시 19세 남성이었으며, 정규직을 위해 군말 없이 무리하게 일한 비정규직이었던 점이 사실로 밝혀졌다. 작업 가방에선 컵라면이 발견돼 안타까움은 더 깊어졌다.


'정신 차려보니 물이 턱 밑까지 차 있더라.'


침몰 사고에서 살아남은 수 많은 사람들이 약속한 듯 내뱉는 이야기다. 박원순 시장은 딱 그런 상태였다.


그에게 구의역 사고는 큰 의미를 갖는다. 승승장구하던 문학적인 대응이 외면받던 첫 순간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은 따가운 눈총 속 사고 발생 사흘 만인 5월 31일 김 군의 시신이 있는 병원과 구의역 사고 현장을 찾았다.


그는 공식 방문일정에 앞서 이날 오전 출근길에 홀로 병원을 찾아 고인에게 애도를 표했다는 말을 굳이 흘렸다. 정무(政務)적인 행보 아닌 진심으로 조의를 표했다는 점을 전할 의도로 보였다. 하지만 이는 여태 뭘했느냐는 비판 앞에 무용지물이 됐다. 사고 발생 이후 24시간도 안 된 다음 날 K리그 클래식 시축에 웃으며 참석했다는 말이 퍼졌다. 미운 털은 더욱 깊어졌다.


박원순 시장의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도 곱게 들리지 않았다.


그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는 문법을 갖는다. 우리 모두에게 잘못이 있지만, 그 중에서 시민 대표로 총대를 메겠다는 뉘앙스로 분위기 반전을 노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정부, 여당을 비판한 이가 구의역 사고를 두곤 모두의 탓인양 넘어가려 하니 좋은 반응이 나올 수 없다.


박원순 시장이 신경을 썼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있던 후 비난은 더욱 깊어졌다. 당시 서울시 공무원도 사석에서 "서울메트로 홈페이지에 있는 운영 현황만 살펴봐도, 한 줄 한 줄이 모두 기삿감으로 손색 없을만큼 문제가 많았다"며 "왜 박원순 시장과 경영진이 사고가 터질 때까지 빈틈을 몰랐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라고 말할 정도였다. 누군가로 책임을 전가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김 군에게 명예 기관사 자격 부여를 고려하겠다고 한 일 또한 문학적인 대응의 대표적인 사례다.


박원순 시장은 6월 2일 늦은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 방송 '원순씨X파일'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김 군에게 명예기관사 자격을 부여했으면 좋겠다는 시민 요청에 따라 "(유족과 협의해)동의하면 이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사망자에게 명예를 주겠다는 판단이다. 이 또한 시민의 감동을 바라고 한 행동이란 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김 군 어머니는 "아이를 처참하게 죽인 데 이어(…)서울메트로(서울 지하철)에 아이를 다시 입사시키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여론은 당연히 싸늘했다.


지도자가 미움 받는 이유, 변덕, 경박. 우유부단함.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박원순 시장은 좌파냐, 우파냐는 질문에 항상 시민파라며 웃음 짓곤 했다. 선명한 정치기반이 없다. 소위 밀어주는 높은 사람도 없던 때다. 그런데도 당당히 서울시청 안 주인이 된 사람이다. 청년과 노동자 등 평범한 소시민이 날개를 달아줬다. 그에게는 시민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이도저도 아닌 우유부단한 행동으로 비정규직 청년의 비극을 마주했다. 핵심 지지층이 그를 좋게 볼 수 없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10월 시청에 입성하던 때 지금 추세라면 시민은 결코 자신을 등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오직 범죄, 비리, 추문에 따른 구설수에 오르지만 않는다면. 그런 그가 2016년 6월 7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고인과 유가족, 시민에게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일 당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론은 생각보다 훨씬 더 민감한 파도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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