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변화 2 : 공무원의 자살
5. 변화 2 : 공무원의 자살 (2017. 9~)
날이 아무리 험악해도, 시간은 흘러간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서울시 공무원이 자살했다. 박원순 시장이 재직한 후 일곱 번째다. 그로 인해 목숨을 끊기 전 "일이 힘들다"고 밝힌 공무원은 최소 3명으로 증가했다. 또 지난해에만 서울시 간부급 공무원 2명이 사의를 표명했다. 두 사람 모두 박원순표 핵심 정책을 주도하던 간부였다.
이 모든 일은 2017년 10월 17일 국회의 서울시 국정감사(국감) 직전 발생했다.
국정감사란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 국회가 입법 기능 외 정부를 비판·감시하는 데서 인정됐다. 국가기관, 특별·광역시·도, 정부투자기관 등이 대상이다. 서울시는 대한민국 수도이자 특별시 자격으로 국정감사 대상에 포함된다.
쉽게 말해 국회의원이 해당 기관을 찾아 한 해 정책을 살펴본 후 잘못된 점을 찾아 단체·기관장을 두고 따끔히 질책하는 시간이다. 가령 행정안전위원회가 진행하는 서울시 국감은 배정(配定) 국회의원이 일 년간 서울시가 펼친 행정·안전 관련 정책을 두고 비판 거리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이어 국토교통위원회가 진행하는 국감이 뒤따른다. 비판의 장이라는 점에서 엄밀히 보면 국감은 야당 국회의원들을 위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기자들도 바쁠 때다.
국회에서 서울시를 살펴보는 동안 기자들이 놓친 특종 거리를 찾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18년도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논란 또한 첫 신호탄은 정치·사회부 기자가 아닌 유민봉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실에서 쏘아 올렸다. 물론 서울시 공무원도 바빠진다. 국감 때는 꼭 하나 이상 큰 논란거리가 생긴다. 이들은 이를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맞받아칠 논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국감 최대 현안은 서울시청 공무원 자살·사의 표명이었다. 특히 야당 국회의원들은 이 부분을 집요하게 건드렸다.
이 현안이 박원순 시장에게 흠집을 남길 수 있었을까. 아니었다. 그의 이미지만 더욱 뚜렷이 새겨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차라리 공격자가 박원순 시장이 다른 길을 염두에 두며 한눈을 팔았던 일 등 그가 뼈아프게 여길만한 다른 것을 후벼팠다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아쉬웠다.
기자 처지에서 볼 때 시청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박원순 시장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할 때였다.
공무원 자살·사의 표명 건은 마음 아픈 일이다. 특히 일곱 번째 자살자의 경우 20대였으며, 그의 아버지에 따르면 오전 3~4시에 퇴근하고 다시 오전 8시에 출근하던 비정상적 행보가 지속되던 상태였다.
야당은 20대 공무원이 일이 힘들다는 의사를 밝힌 후 목숨을 끊은 일에 초점을 둬 19세 김 군이 희생양이 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와 연관시키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 건은 큰 논란거리로 뜨는 데 실패했다. 불법적인 일은 없었다. 구의역 사고처럼 간부가 일을 떠맡기곤 집회에 나갔다는 등 표면적으로의 어이없는 일 또한 발생하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은 국감에서 "전적으로 제 책임"이라며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만 풀어내면 됐다. 이어 "이번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완벽한 대안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하면 야당 입장에선 따로 더할 말이 없던 분위기였다.
20대 기자가 볼 때도 답답했으니, 이를 보는 일부 서울시 공무원은 피눈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행정판에서는 어쩔 수 없는 그림이다. 당장 지금만 해도 박원순 시장이 있는 동안 서울시 공무원 몇 명이 목숨을 끊었는지, 이 가운데 몇 명이 격무를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헤아리는 시민은 극소수다. 공무원이 일이 힘들다고 하면 대부분은 코웃음을 치는 사회 분위기다. 시민 상당수는 공무원을 부정적인 눈빛으로 본다. 9시 출근~6시 퇴근으로 대표되는 칼퇴근, 공무원 연금으로 대표되는 철밥통과 무사안일주의(無事安逸主義)가 이들 대표 이미지란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국감 당시 야당은 박원순 시장을 두고 일을 많이 시켰다는 걸 강조하지 말고 일을 비효율적으로 시켰다는 데 중점을 둬야 했다. 자살이란 결과에 초점을 두지 말고 그사이 어떤 비효율이 있었는지 과정을 파헤쳐야 했다는 이야기다.
야당은 박원순 시장을 일 많이 시키는 리더라고 알린 꼴이었다. 이는 일 많이 하는 리더로 바뀌기에 딱 좋은 말이었다. 말이 살짝 뒤틀릴 뿐인데 분위기는 상당 부분 달라진다.
우리 사회에선 '일 많이'가 미덕이다. 엄밀히 다른 개념인 많이 하는 것과 효율적으로 하는 것을 혼동할 때도 많다. 이 분위기가 우리나라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2위로 이끌었다.(2017년 기준)
박원순 시장 측은 공무원에 대한 반감과 함께 이 미덕을 교묘하게 융합했다.
그 결과 국감 이후 야당 의도와는 달리 박원순 시장은 요지부동(搖之不動) 공무원을 채찍질하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가장 위험한 건, 전혀 결점이나 약점 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일이다. 질투는 무언의 적을 만든다. 때때로 결점을 드러내고 해로울 일 없는 악행을 해야 한다. 더 인간적인 사람을 만드는 길이다. 오직 신과 죽은 자만이 완벽해 보여도 탈이 없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지금도 그를 말할 때면 일 중독자란 말이 붙는다. 심지어 인간적인 점을 표현할 때 관용어처럼 쓰기도 한다. 그 누구도 공무원 몇 명이 스스로 목숨 끊은 비극을 말하지 않는다. 가까운 미래, 그가 서울시장 생명 연장을 확실시했을 때 시청에 들어와서 공무원을 모아 처음 한 말도 "이제 일 많이 안 시킬게요"였다. 그 자신도 이런 말을 하는 게 흡족한 듯, 농(弄)이 섞이지 않았다고 볼 수 없는 어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