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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Sep 20. 2020

그 남자의 말로

<12. 폴 고갱,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나는 그 해 12월에 죽으려고 했습니다. 죽기 전, 오래 전부터 생각한 대작을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은 그간 그린 어떤 그림보다 뛰어납니다. 앞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작품, 아니, 이 정도의 작품도 다시는 그릴 수 없을 것을 확신합니다. 내 모든 에너지를 이 작품에 쏟아부었습니다."


   이 사람은 뭐하는 양반이기에 스스로 죽는 날도 정하려고 했을까요. 그간 얼마나 제멋대로 살아왔으면요. 폴 고갱(1848~1903)의 남다른 유서로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자기 마음대로 산 한 남성의 말로를 살펴봅니다. 



폴 고갱,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가로 4m에 이르는 이 그림을 읽는 순서입니다. 파노라마 사진 느낌이 납니다.


   맨 오른쪽 아기는 과거입니다. 가운데 과일을 따고 있는 청년은 현재입니다. 웅크린 채 눈을 감은 노인은 미래입니다. 배경은 문명 색이 완연하지 않던 남태평양 타히티 섬입니다.


   고갱이 유서 격으로 남긴 것인만큼, 각 시점의 대표 인물들을 모두 고갱에 대입해볼까요.


   먼저 과거를 보겠습니다.


   아기 고갱은 자기 앞 여인 세 명과 강아지에게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뒤에 있는 자주색의 여성 둘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서로 귓속말을 주고 받으며 작당 모의를 하는 듯도 합니다. 바로 앞 앉아있는 한 청년은 이를 보고 불안한 듯 머리를 긁적입니다. 뒷 배경을 보니, 아기 고갱의 생명력은 넘쳐 보입니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잘 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기 고갱은 시간이 흘러 청년 고갱으로 큽니다.


   매달린 열매를 홀로 따려는 게, 완연한 주체성이 읽혀집니다. 저 열매는 혹시 선악과가 아닐까요. 창세기 때 신이 결코 건드리지 말라고 한 그 열매요. 이미 이를 따서 먹고 있는 꼬마 곁엔 악마의 상징으로 통하는 흑염소로 보일만한 게 앉아있습니다. 청년 고갱은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맘대로 당돌히 떼내려고 합니다. 뒷 배경을 볼까요. 산과 들에 녹기는 여전합니다만, 나무는 뿌리부터 썩어들어가는 게 보입니다. 심상치 않네요.


   이제 노인 고갱을 볼 차례. 


   안색부터 좋지 않아 보이는 게, 얼핏 봐도 몸 상태가 심각해보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깡 마른 그는 눈과 귀를 닫고, 오직 웅크리는 데만 집중하는 듯합니다. 한 여성이 말을 걸고 있지만 이 또한 애써 외면 중입니다. 새 한 마리가 눈을 깔곤 애처롭게 보고 있습니다. 화마(火馬)가 한바탕 휩쓴 양, 주변은 황무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한 석상.


   이미 모든 걸 알고 있고, 결국 이렇게 될 것 또한 예측했다는 양 우뚝 솟아있는 한 석상이 눈길을 끕니다. 그 석상 옆 여성은 한평생을 기도하며 산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한 편의 대서사시 같은 그림이었습니다. 붓질이 유난히 거칠어보입니다. 거친 삼베에서 스케치도 하지 않은 채 휘갈겼기 때문입니다. 


   고갱의 후회 내지 절규가 서린 듯한 1.39mX3.75m 유서, 영혼을 갈아 그려놓곤 부연설명 따위 하지 않은 작품,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1897)입니다. '어디서 왔습니까,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어디로 갈 것입니까….' 이렇게 소리내 읽으면 마음 속 울림이 더 커지는 듯합니다.




   고갱이 이 그림을 만든 1897년은 그 자신에게 가장 참혹한 해였습니다. 그간 제멋대로 벌인 일에 대해, 나약한 노인이 돼 모든 대가를 돌려받고 있는 때였습니다.


폴 고갱, 타히티의 여인들.


   고갱은 당시 두 번째로 타히티 섬에 터를 잡고 요양 중이었습니다.


   과거 그의 도시 생활은 방탕 그 자체였습니다. 술에 취해 싸움을 걸었고, 바닥에 넘어지고 구르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대가로 간과 뼈, 관절은 제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그를 지탱해줄 발목마저 녹이 슬었습니다.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매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주머니엔 동전 몇 개 잡히는 게 없었지요. 먹고, 놀고, 그리기만 한 탓입니다. 


   그렇게 몸을 옮겨 가만히 찬 공기나 들이쉬고 있던 무렵, 편지가 온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사랑했던 어린 둘째 딸 알린(Aline)이 폐렴에 걸려 죽었다는 내용이 담긴 종이를요. 해준 것 하나 없지만, 똑똑하고 당돌한 게 딱 자신의 분신 같던 딸이었습니다. 


   그의 몸과 마음은 무너집니다. 자살을 기도할 만큼, 삶의 의지를 놔버립니다. 딸의 장례식조차 끝내 찾아가지 못합니다.


   그는 타히티 섬의 구석진 곳에 있는 움막 같은 집에 칩거합니다. 어디에 홀린 양, 정신병자처럼 그림에 몰두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밑그림이 없는 즉흥적 드로잉, 원근법과 해부학의 무시. 주관적인 색채. 이 작품은 그가 세상에게 내던진 마지막 투서였습니다.


   술과 진통제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던 그는 1903년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죽는 그 순간, 두 눈을 부릅 뜨곤 허공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꼭 쥐려는 것처럼.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지?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야?"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中>

   그 남자의 말로. 어디부터 잘못 됐을까요.


   1.   화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고갱은 그림으로 돈을 벌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주식 중개인이었습니다. 헌신적인 덴마크 출신 여성 메트 소피 가드와 결혼한 후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1883년,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35살 때 돌연 처자식을 내버리고 화가 생활을 시작합니다.  


   당시 증권사는 금융위기를 겪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고갱이 붓을 든 것은 이런 환경적 요인만은 아닌 듯합니다. 고갱의 가계를 올라가면 페루를 통치한 바 있는 스페인 관리 집안으로 닿습니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와 페루에서 살며 분방함을 만끽했습니다. 주식 중개인이 되기 직전에는 견습 도선사로 세계의 항구를 돌아다녔습니다. 그의 피에는 이미 틀에 안 박히는 '자유'가 흐르고 있던 셈입니다. 줄곧 그래왔던 것처럼 그 본능을 억눌렀더라면, 그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겠지요. 


   2. 고흐와 마주하지 않았다면.


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

   고갱이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 집'에서 2개월 넘게 함께 산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고갱은 고흐의 소심함, 돈은 신경쓰지 않고 그림에만 몰두하는 태도 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둘의 싸움이 잦아집니다. 결국 고흐가 자기 귀를 베어내는 자해를 합니다. 고갱은 질린듯 짐을 싸고 떠납니다. 그와 고흐와의 불화설은 프랑스 예술계에 일파만파 퍼집니다. 사람들이 고갱 주변을 슬금슬금 피합니다. 예전에는 그저 건방진 프랑스인 정도의 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당사자인 고흐가 앞장서 해명하는데도 그는 성격 파탄자가 돼 있었습니다. 고갱은 그때부터 '떠남'의 필요성을 절감하죠. 그래, 이런 머저리들은 아예 볼 수 없는 곳에 가겠다고.


   3. 이 두 일을 겪었다고 해도, 끝내 타히티에만 가지 않았다면.


   고갱의 일탈 종착지는 도로 가족 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제멋대로 살기로 한 이 남성은 당연히 이를 거부합니다. 고갱이 택한 곳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인 타히티 섬이었습니다. 그가 있는 돈을 몽땅 긁어모아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원시적인 공간을 택한 것입니다. 


   고갱은 타히티 섬 주민들과 교류하는 따뜻한 미래를 꿈꿨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와 손 잡고 산 페루의 분위기도 떠올렸을 것입니다. 밝고 희망찬 분위기 속 예술적 영감이 살아나길 바란 것입니다. 문제는 타히티 섬도 문명화가 꽤 진행됐다는 점이었습니다. 고갱은 그저 항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지인일 뿐, 그 안에서 특별한 이가 아니었습니다. 




   고갱이 영혼을 갈아 만든 투서는 예술계에 반향을 일으켰을까요.


   그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생명력을 다시 찾았지만, 이후에도 상당수의 작품들은 혹평을 받았습니다. 이젠 가족까지 등을 돌립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자유분방한 삶에 빠진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저는 돈도, 용기도 떨어졌습니다. 다락방으로 가 목에 밧줄을 걸어야 할까, 자괴감이 엄습합니다. 저의 발목을 붙잡는 것, 이젠 오직 그림 뿐입니다."


   서머싯 몸은 그의 소설 같은 삶을 주목, 이를 토대로 소설 '달과 6펜스'를 집필했습니다. 고갱은 이 안에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돼 등장합니다. 달은 광기와 예술의 극치, 6펜스는 재산과 세속적 명성을 뜻합니다. 고갱의 고민을 생생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머싯 몸은 이 작품을 통해 장편 작가로 명성을 굳힙니다. 그만큼 흥미롭게 썼다는 뜻입니다.



폴 고갱의 자화상.


   고갱이 안식처로 여긴 타히티 섬에는 고갱 박물관이 있습니다. 근데 정작 그의 진품 그림은 단 한 점도 없는 곳입니다. 고갱이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진 도자기 하나와 숟가락 3개가 전부지요. 고갱은 타히티 섬에서 그림을 그리면 곧장 프랑스로 보냈습니다. 그림 값을 받고, 이를 몇 푼 어치의 술 값으로 쓰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결국은 죽을때까지 그다운 행동을 하다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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