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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Sep 13. 2020

'백내장'이여, 너 또한 축복이었구나

<11. 클로드 모네, '수련'>

   "그 눈. 어디 보통 눈이란 말인가."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을 감쌉니다. 둘 다 늙을만큼 늙어보입니다. 


   위로 받는 그 남자는 자기 눈을 비비면서 소래를 내 웁니다. 주변을 볼까요. 꽃과 나비가 넘실거립니다. 호수 위로는, 울고 있는 그 남자가 찢어버린 그림들이 나풀거립니다. 쉽게 그려지지 않는 풍경입니다. 절망에 빠진 이는 클로드 모네(1840~1926)였습니다.


클로드 모네, 수련.


   수련. 다른 말로 연꽃.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는 꽃과 잎입니다. 이 그림은 모네의 '수련'(1914)입니다. 사실상 그의 명성에 걸맞은 최후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야성이 보입니다. 굵고 거친 선, 얇고 섬세한 선이 조화롭습니다. 마냥 예뻐보이려고 손 댄 흔적은 없습니다. 자연 그대로입니다. 물길은 묵묵하고, 수련은 유유히 떠다닙니다. 무한한 공간, 소우주(小宇宙)가 떠오릅니다. 이 풍경만 몇 년을 봐야 그릴 수 있는 경지입니다. 은은히 비춰지는 빛 덕분일까요. 마음이 괜히 따뜻해집니다. 온통 축축한 색이 그 빛을 감싸는데도, 비온 뒤 맑은 날 같은 개운함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황사, 미세먼지가 뒤덮인 하늘 아래서도 기분이 맑아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눈치 채셨나요. 색이요. 수련을 그린 것 치고는 색이 필요 이상으로 푸릅니다. 특히 파란색과 자주색은 물길 넘어 연꽃까지 물들입니다. 디테일도 포기한 것 같죠. 얼핏 보면 수련을 본 딴 추상화같기도 합니다. 모네가 본 수련이 그랬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가 병을 앓은 탓입니다.





   말년에 접어든 모네가 앓은 병은 백내장입니다. 모든 게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히 보이는 병입니다. 손은 피아니스트, 발은 발레리나의 생명이죠. 그렇다면 눈은요? 화가의 목숨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네의 절망을 이해할 수밖에 없지요. 사실 그가 백내장을 앓을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모네는 일단 꽂히면 죽을만큼 몰두하는 남자였습니다. 


클로드 모네, 생 라자르 역 : 기차의 도착.


'생 라자르 역 : 기차의 도착'(1876)입니다. 젊은 모네가 프랑스 파리에서 두 번째로 큰 이 역에 꽂혔을 때 그린 것입니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생 라자르 역을 그립니다. 수백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하루는 다짜고짜 역장을 찾습니다. 모든 기차를 플랫폼에 세우고, 엔진으로 연기와 수증기를 내뿜도록 시킵니다. 일개 화가가 역장에게 그런 황당한 지시를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장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하나에 미친 모네의 눈에서 광기(狂氣)를 봤을지도 모릅니다. 


   모네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모네는 차츰 역과 같은 사물을 넘어 '빛' 그 자체에 꽂힙니다. 오늘날 그가 있었다면 필시 빛을 공부하는 과학자가 됐을 것입니다. 빛을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 보는 것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봄, 여름, 가을 겨울.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해의 각도, 빛의 세기와 반사량, 사물과의 조화를 계속 보는 것입니다. 모네는 맨 눈으로 봤습니다. 보고, 또 봤습니다. 그림으로 그 결과를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 상당수가 연작인 까닭입니다.



클로드 모네, 일본 의상을 입은 카미유.


   빛에 대한 모네의 우직함은 그의 아내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네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가 그림으로 번 돈 대부분은 아내의 선물용으로 쓰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지금도 아내 카미유를 모델로 한 그림 '일본 의상을 입은 카미유'(1876)가 꼽힙니다. 진심 어린 사랑이 담겼다는 점에서요. 


   그런 모네는 1879년 아내의 그 죽는 순간에도 빛을 관찰합니다.


   "그녀는 소녀 같았다. 그녀는 졸린 듯 얌전히 누워있었다. 당장 온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파해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였다. 눈을 깜빡였다. 크고 깊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긋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도 했다. 그녀의 침대 옆 커다란 창문 틈에서 주황색 빛이 들어왔다. 그녀의 발치, 여윈 가슴을 타고 올라가다 이내 그녀를 쓰다듬는 내 얼굴을 비추었다. 나는 그 옅은 빛을 피하지 않았다. 나를 뒤덮을 때쯤, 나도 모르게 붓을 들게 됐다."


   '너무도 소중한 여인의 죽음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어.
   본능적으로 추적하는 내 모습 말이야.
   그녀를 둘러싼 빛,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위 글은 모네가 아내의 임종을 지켜본 후 친구에게 보낸 이러한 편지를 각색해 꾸민 것입니다.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은 카미유


   그 순간에도 빛을 연구한 모네가 그림으로 남긴 게 '임종을 맞은 카미유'(1879)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네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모네는 결국 백내장과 화해합니다. 되레 손을 내밉니다. 자신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이 빛의 풍경을 그리기로 합니다. 이쯤 보면 그는 우직함을 넘어 불굴의 의지를 가진 것 같습니다. 병과 화해해야 할 다른 이유도 있었죠. 너무 예쁜 정원을 가만 둘 수 없었던 탓입니다. 그는 1883년 파리 지베르니에 1ha에 이르는 큰 정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파리에서 서북쪽, 약 60km 떨어진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입니다. 젊은 시절 지베르니 풍경에 감탄한 그가 유명해진 후 직접 사들인 것입니다. 모네는 푹 숙인 고개를 들고 다시 붓을 꺼냅니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립니다. 어떨 땐 성치 않은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꺼이꺼이 울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처지 탓이기도 하고, 또 이런 그림마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파란색, 자주색이 점점 짙어지던 그림은 결국 기하하적 모습을 갖춥니다. 모네의 말기 회화가 추상화에 영향을 줬다는 말도 있습니다. 죽기 1년 전인 1925년까지 붓을 놓지 않습니다. 수련을 통해서만 또 그림 250여점을 그립니다. 그는 결국 백내장마저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남겼습니다.



클로드 모네, 지베르니 정원
클로드 모네의 초상.

   "내 최고의 명작은 지베르니 정원." 


   한편, 모네가 스스로 칭송한 지베르니 정원은 지금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이미 관광 명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팔레트'란 별명도 있는 곳입니다. 그는 붓을 들지 않을 때면 이곳에서 온종일 땅을 뒤집고 식물을 가꿨습니다. 그는 '무리 지은 덩어리' 기법으로 정원을 꾸밉니다. 꽃과 나무 색을 보고, 한가운데 한 식물을 모아 심은 후, 테두리에 대비되는 색의 식물을 심는 식이었습니다. 그의 그림 기법과 유사한 것 같기도 합니다. 파리를 찾는다면 지베르니 정원을 방문하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모네의 열정, 절망과 환희. 그의 드라마를 느끼고 싶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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