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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Sep 06. 2020

알고보니 지옥의 몸부림이라니

<10. 오귀스트 로댕, '입맞춤'>

   입맞춤.


   서로 입술이 맞닿는 것. 주로 사랑의 표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가장 설레는 순간을 잡았다는 찬사가 쏟아지는 입맞춤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작품, '입맞춤'(Le Baiser)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도 알고 보면 그저 단편적인 예쁜 작품만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어떤 사연이 스며있기에 그럴까요.




오귀스트 로댕, 입맞춤 (Pixabay, Patricio Hurtado)


   벌거벗은 두 남녀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온 몸으로 입맞춤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두 인물이 한 인물처럼 뭉퉁히 붙어있는 데서 왠지 모를 울컥함도 올라옵니다. 소금물을 한가득 마신양 서로를 향한 갈증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입니다. 마치 이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것처럼, 둘을 빼면 그 무엇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 같은 인물들입니다. 그대로 시간이 멈춰 굳어버린 게 이 형상이라해도 이들은 되레 기뻐했을 것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마냥 예쁘게만 봐야 할까요. 그저 낭만주의의 표상일 뿐일까요. 예민하신 분은 눈치 채셨을 것입니다. 이들의 입술이 닿아있지 않다는 점을요. 이 작품이 마냥 설레는 형상만은 아니라는 것을요.


   남자의 자세가 눈에 밟힙니다. 여자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모든 것을 내줄 마음으로 사랑을 표합니다. 그런데, 남자의 모습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묻어납니다. 오른쪽 손이 그녀의 허벅지에 닿았지만 엉거주춤합니다. 왼쪽 손에는 정열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책을 들고 있다곤 하나, 힘 없이 축 늘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입맞춤에 더는 집중하지 못하는 양, 다른 생각들에 휘감겨 지친 듯한 느낌도 듭니다.





   로댕의 입맞춤, 얼핏 보면 천상의 상징으로 읽힐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되레 반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로댕은 원래 이 작품을 자신의 걸작 '지옥의 문' 중 일부로 쓰려고 만들었습니다. 천국이 아니라, 지옥. 고통, 분노, 불안 같은 감정들과 어울리는 그 지옥이 맞습니다.


   로댕은 이 작품에 대한 모티브를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두 인물에서 얻었습니다.


   13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입니다. 그렇다면 격렬히 입 맞추는 이들은 사실 형부와 시동생 관계가 됩니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금지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겐 이번이 첫 입맞춤이자, 마지막 입맞춤입니다.


   때마침 프란체스카의 남편이 이 모습을 보고, 곧장 활과 화살을 꺼내 두 사람을 모두 죽여버렸기 때문입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파울로와 프란체스카가 지옥에서 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그립니다. 이들이 받은 형벌은 끝없는 갈증이었습니다. 서로를 지독히 탐한다고 해도 결코 해소되지 않는 욕망이요. 사랑할수록 깊어지기만 하는 갈망, 충만한 순간이 이어지는 데도 끝없이 욕구가 생기는 늪에 빠뜨린 것입니다. 로댕은 이를 움직일 수 없고, 결코 벗어날 수도 없는 조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냥 봐선 지옥의 형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로댕의 뛰어난 묘사력이 되레 독이 됐다는 말도 있죠.


   특히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인사에겐 그저 낭만스러운 조각상으로만 보일 뿐입니다.  로댕도 그 부분을 거듭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양한 의견을 들은 끝에, 결국 이 작품을 '지옥의 문'의 일부에서 빼게 된 것입니다.




   솜털 구름일지, 끊임없이 빠져드는 늪일지를 알지 못해 망설이는 남성. 그런데도 이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남성…. 로댕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입맞춤' 속 남자를 조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한때 그의 연인이던 카미유 클로델(1864~1943)과의 기억을 떠올리면서요.


   그 전에 또 다른 작품 하나를 언급하겠습니다. 클로델의 작품 '중년'(1893~1899)입니다. 한 중년의 남성이 나이 먹은 여인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이미 체념한 양 고개를 떨궜습니다. 뒤에는 한 젊은 여인이 있습니다. 이 남성에게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듯 두 손을 뻗어 붙잡으려고 합니다. 이는, 결단코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로댕은 1883년 클로델을 만납니다. 로댕은 43살, 클로델은 고작 19살이었습니다. 로댕은 클로델을 보자마자 호감을 느낍니다. 미술이 남성의 전유물인 시절, 그녀는 어쩌면 자신을 뛰어넘을지도 모를 만큼의 재능을 품고 있었습니다. 또,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에 쏙 들만큼 예뻤습니다. 당시 로댕은 파블로 피카소와 비견될 만큼 호색한으로 유명했습니다. 조수, 모델, 조각가 등…. 품에 안은 여성을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로즈 뵈레라는 사실혼 관계의 여성도 있었습니다.


오귀스트 로댕, 두 개의 몸체


   "그대는 타오르는 기쁨을 줘. 내 인생이 구렁텅이에 빠진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아. 나는 당신과 있을 때 몽롱히 취해." 로댕이 클로델에게 반해서 쓴 편지입니다.  


   두 사람은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소 아슬한 연인이 됩니다. 로댕은 그녀를 뮤즈로 삼았고, 클로델은 그를 위해 모델과 조수가 돼 줬습니다. 


   로댕도 선천적으로 불안한 남성이었지만, 클로델도 그 못지 않게 온전한 정신 상태를 갖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의 악몽 때문입니다. 클로델의 마음 속에는 로댕이 결국은 로즈에게 돌아갈 것이란 불안감을 커지기만 했습니다. 그에게 더 집착하고, 의존하게 되죠. 로댕은 그런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일 만큼 그릇이 큰 사람은 아니었기에, 조금씩 이별 준비를 합니다. 로댕은 그런 상황에서 클로델과 함께 '입맞춤'을 작업했습니다. 그가 그녀에게 품은 온갖 복잡미묘한 감정을 남성 조각상에 새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이쯤 되면 로댕과 클로델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도 궁금해집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좋지 않았습니다.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1886년 로댕은 클로델의 병적인 추궁에 결국 로즈와 헤어지겠다는 각서를 씁니다. 물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요. 로댕은 자신에게 헌신한 로즈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클로델은 그런 모습에 또 속앓이를 하고, 마음 고생으로 말라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로즈는 로댕과 클로델의 관계를 몰랐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로즈가 클로델을 찾아 머리채를 잡은 적도 있습니다. 로댕과 클로델 둘 중 한 명이라도 평범한 사고를 했다면 진작 끝날 관계였습니다. 애석하게도 둘 다 그렇지 않았기에 이런 관계가 이어졌던 것입니다. 1892년, 결국 일이 터지고 맙니다. "나는 로댕의 아이를 임신했다. 하지만 원치 않게 유산할 수밖에 없었다." 신경쇠악에 젖은 클로델은 그 해의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주변 사람들을 모아 이런 선언을 합니다. 물론 로댕은 극구 부인합니다. 누구의 주장이 사실이었는지는 현 시점에서도 밝혀진 바 없지만, 이 두 사람은 이 일을 계기로 완전히 갈라섭니다.


   그 이후 로댕은 더욱 승승장구하고, 클로델은 더욱 나락으로 빠집니다. 


   "로댕이 내 작품을 훔치고, 내 구상을 베꼈다." 클로델은 이런 말을 하며 그에 대한 증오감을 키웁니다. 로댕 생각이 날 것 같은 작품은 모두 때려 부숩니다. 술 없이 잠들기 힘든 밤들이 지나갑니다. 그녀는 결국 1913년 49살 나이로 정신병원에 들어갑니다. 자신을 그나마 보호해 준 아버지가 사망한 때입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30년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죽습니다. 


   로댕은요. 1917년, 결국 로즈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로즈는 결혼 2주일 후 죽고, 로댕도 정해진 수순인양 몇개월 후 눈을 감습니다. 치매를 더해, 온갖 병을 몸에 안고서요. 유언은 쥐어짜듯 소리친 말이 있죠. "난 신이다."




오귀스트 로댕, 알퐁스 르그로(Artvee)


   로댕의 '입맞춤' 원작은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파리를 가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주물만 있으면 여러 점을 찍어낼 수 있는 청동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서울시내 플라토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2011년 5월 문 연 국내 유일의 로댕 전문 갤러리였습니다. 삼성그룹 계열의 '삼성미술관 리움'이 운영했지만 2016년 8월 경영상 이유로 문을 닫았습니다. 로댕의 '입맞춤'은 이후 경기 용인시에 있는 호암미술관 수장고 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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