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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Sep 06. 2020

촌스러운 이 남자가 세상을 바꾸리라곤

<9.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그 사람이 20세기의 현대 화가들을 모두 만들었습니다. 내가 스승으로 모실 만한 유일한 이가 있다면, 오직 폴 세잔 뿐입니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

   폴 세잔이 처음 프랑스 파리의 한 살롱에 등장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미련한 둔재로 봤습니다. 거무튀튀한 수염, 촌스러운 옷차림, 불안한 시선과 어색한 걸음걸이…. 매력 하나 찾기 힘든, 덩치만 큰 곰같은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그 누구도 이 남성이 19세기 최고의 화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그는 어떻게 독보적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까요?


   그만의 '천재되기 비법'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사과와 오렌지를 그린 정물화입니다.


   긴 의자에 올려진 과일들은 흰 천과 접시에 놓여있습니다. 사과 몇 알은 꼬깃한 천 주름을 타고 밑으로 굴러 떨어질 듯한 느낌을 주지만, 이 자체가 불안감을 안기지는 않습니다. 사과와 오렌지 모두 짙은 붉은색부터 옅은 노란색까지 색 변화가 다채롭습니다.


   일반적인 정물화 같지는 않지요.


   정물화의 묘미는 그대로 옮기기, 즉 사진과도 같은 정밀성에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 그림은 원근법부터 완전하지 않습니다. 좀 더 가까이 있는 과일, 한 두 뼘 떨어진 과일 모두 크기가 뒤죽박죽입니다. 명암도, 고유한 색채도 없기는 마찬가집니다. 몇몇은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여있어 이게 사과인지, 오렌지를 그려넣은 것 아닌지 헷갈립니다.


   시점과 소실점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위에서, 어떤 것은 옆에서 본 듯한데 이를 두 그림으로 나타내지 않고 한 그림으로 묶어 표현한 것 같습니다. 가령 항아리와 굽이 있는 과일 그릇은 옆에서, 앞에 있는 과일 접시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렸습니다.


   심지어는요. 알레고리(Allegory)도 없지요. 


   당시 평론가들은 정물화를 보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기 바빴습니다. 뛰어노는 개와 고양이는 가정의 행복, 칼은 권력, 해골은 죽음 같은, 그런 '뼈'가 있는 사물 배치를 분석하는 데 힘을 쏟았지요. 그런데 이 그림은 말그대로 사과와 오렌지일 뿐, 다른 어떤 메시지도 없었습니다.


   19세기 모든 화가들은 원근법과 명암을 교리처럼 받들었습니다. 오직 하나의 시점과 소실점을 갖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 또한 숙명이자 신의 뜻이었습니다. 근 200여년 전부터 유행하던 알레고리 배치도 빠질 수 없는 요소였죠.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1895~1900)가 그 법칙을 처음으로 박살낸 것입니다.


   그가 깨부순 틀을 뒤따른 사람요? 모더니즘을 따른 화가들 전부입니다.


   파리의 둔재는 어떻게 이런 혁명적인 작품을 내놓게 됐을까요.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난 세잔에겐 애초 예술 재능이 '1'도 없었습니다.


   사실 그런 건 상관 없었지요. 아버지가 프랑스 전역에 지사를 둔 대형은행 설립자였기 때문입니다. 소위 눈을 뜰 때부터 금수저를 물었지요. 아버지가 정한 길을 따랐다면 세잔은 회사 변호사가 돼 부유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잔은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의 열병'을 앓고 맙니다. 그때 여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걸렸다는 그 병은, 나도 이름난 화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생기는 게 핵심 증상이었습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마주할 수 있던 특유의 온화한 빛과 바람이 그를 더욱 부추깁니다. 


   어린 세잔은 목덜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육각형 눈송이가 돼 비춰지는 빛줄기를 보며 감성을 키웁니다. 


   그는 결국 아버지의 뜻을 등지고 예술계로 나섭니다.



   <의지력>


   세잔은 그때부터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그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재능은 끈기였습니다. 


   좀처럼 발전 없는 화가 지망생이란 비웃음을 샀지만, 이를 무시하곤 또 도화지를 펼치곤 했습니다.


   사실 세잔의 모든 그림을 보면, 그가 붓을 쥐는 동안 단 한 순간이라도 이 행위 자체를 즐긴 적이 있을까란 의문이 듭니다. 신바람이 느껴지는 그림이 단 한 장도 없습니다. 노력하는 이는 즐기는 이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잔의 생을 따라가보면, 즐기는 이도 결국 끈질긴 이에게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세잔은 10년 넘게 자신의 뜻대로 선 하나를 못 그었습니다. 20년 넘게 '고전'이 될만한 그림 한 장 못 그렸습니다. 툴루즈 로트렉(1864~1901),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같은 이가 붓을 쥐자마자 할 수 있던 일을 하는 데 세잔은 셀 수 없이 많은 날이 걸렸습니다.


   그때는 수많은 이가 세잔과 같은 일을 겪고, 몇개월만에 '파리의 열병'에서 치유돼 예술계를 떠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불굴의 이 남자는 그럴수록 더욱 매달렸습니다.


   득도하기 전 세잔이 그림을 익힌 법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같은 풍경을 계속 그리는 겁니다. 잘 안 그려지면 포기할 법한데, 아침 먹고 그리고, 점심 먹고 그리고, 저녁 먹고 또 그렸습니다. 그날 인상, 느낌, 몸과 기분 상태에 따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 종이를 펼쳐 새롭게 붓을 들었습니다. 답답함을 느낀 아내가 '등짝 스매싱'을 내리 꽂을 때도 어우어우하며 피하고는 다시 몰두했습니다.


   세잔은 어쩌면 편집증을 앓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자식을 키울 때, 세잔은 정신 착란 증세를 안고 그림을 키운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폴 세잔,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


   <주체성>


   당시 파리를 떠돈 화가 지망생들의 공부법 중 하나는 명장의 작품 모작이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폴 고갱(1848~1903)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 클로드 모네(1840~1926)는 외젠 부댕(1824~1898)의 그림을 몸에 달고 다녔지요. 


   세잔은요. 앵그르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곤 하지만, 그는 대체로 참고하는 작품 없이 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혼자 자연 속에서 빛과 선, 형태를 연구합니다. 그는 남과 같은 그림을 그리는 일만큼은 노골적인 거부감을 보였다고 합니다. 


   애초 빚지기를 싫어하는 내성적인 성격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은둔의 화가였던 그는 다른 화가들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젠체하는, 자의식이 뚝뚝 묻어나는 일부 화가들에게는 대놓고 적대감을 표출했습니다. 그와 그나마 교류한 이는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1830~1903), 에두아르 마네(1832~1883) 등 당시 이단으로 취급받던 인상주의 화가들이었죠.


   남의 그림은 죽어도 베끼지 않겠다는 그 고집 덕분에, 19세기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도전력>


   그는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하겠다며 참고 교재를 모두 걷어찬 그였기에, 되레 틀에 박히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의식했든 안 했든, 이에 따라 그의 그림은 10년, 20년에 걸쳐 차츰 세잔 스타일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클로드 모네의 연작을 아시나요. 


   그는 시간별로 달리 보여지는 건초 더미를 각각 다른 종이 위에 담았습니다. 빛의 양과 바람 세기가 상이하니, 똑같은 건초 더미가 담긴 종이들은 각각 다른 인상들을 안겨줬죠. 


   세잔은 더 혁명적입니다. 모네가 나눠 그린 것을 종이 한 장에 쓸어담은 것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아침, 점심, 저녁. 또 위, 아래, 옆모습이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특유의 우직함을 동반, 종이 한 장을 붙든 채 시간대와 상관없이 온종일 그렸으니, 무심결에 '이것도 괜찮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은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이 아니다.' 지금 시각에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처음 일깨운 것입니다.


   그의 시도는 파리 예술계에 열병처럼 퍼집니다. 눈에 띄는 것을 싫어했던 그는 세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화가가 됩니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입체주의,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야수주의가 떠오르죠. 이들의 스타일은 사실 세잔 스타일을 밑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폴 세잔, 사과.


     <그 결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대상을 모방하는 게 아니다. 여러 관계 사이에서 화음을 포착하는 것이다."
   <폴 세잔>


   깨우친 세잔의 정물화를 한 번 더 볼까요.


   이 그림들이 흔히 정물화의 무덤으로 칭해지는 이발소에 걸리지 않은 것은 깊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을 넣으면 두어 마디가 푹 빠질 것 같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화가들의 그림조차 자꾸 보면 질리는데, 세잔의 이 그림은 좀처럼 질리지가 않습니다. 


   세잔이 그린 사과와 오렌지는 말 그대로 '사과와 오렌지' 그 자체입니다.


   실재와 닮게 그리려는 노력, 또 붉고 노란 색채, 달콤 시큼한 맛, 씹으면 흘러나올 과즙 등 고정관념은 모두 배제됐습니다. 풀어 쓰면 사과를 '입 안에 넣고 씹으면 달콤한 과즙이 나오는 붉은 열매'라는 인간의 영역 속 본질이 아닌, 사과 그 자체를 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흩어지고 사라지지. 자연은 늘 그대로인데 외양은 늘 바뀐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예술가의 임무는 다양한 요소와 늘 바뀌는 외양을 가졌으면서도 여전히 그대로인 자연의 영원함, 그 신비로움을 꽉 붙잡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림이란 모름지기 그 자연의 영원함을 맛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해."
   <폴 세잔>


   그림에서 주관이란 기름기가 사라지니 보는 이도 훨씬 더 쉽게 소화를 합니다. 


   세잔이 우뚝 선 후, 그 시대의 화가 지망생 모두가 세잔의 그림을 베끼고, 연구하고, 발전시키게 된 이유입니다. 세잔의 화풍과 비슷한 그림을 보셨나요. 세잔이 그 그림의 원조일 가능성은 99%입니다.




   '까칠남' 세잔이 끝까지 교류한 유명인은 작가 에밀 졸라(1840~1902)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죠. 어린 졸라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달려와줬던 이도 세잔이었습니다. 졸라가 부추기지 않았다면, '화가 세잔'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유명한 작가가 된 졸라는 1886년 단편 소설을 펴냅니다.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는 불안감이 크고 성적으로 자신감이 없는 실패한 화가였습니다. 자살로 생을 끝내는 불운한 남자였지요. 졸라가 알고 있던 많은 화가들을 섞은 인물이라지만, 세잔은 자신을 풍자했다고 생각해 절연을 선언합니다.


   세잔과 졸라가 나이가 든채로 갈라졌다면, 세잔과 그의 아버지는 나이가 들었을 때 어쩔 수 없이(?) 가까워졌습니다.


   변호사 길을 접은 세잔이 파리로 떠날 때도 돈 한 푼 쥐어주지 않습니다. 그런 그가 말년때 쯤 아들에게 미안함이 들었는지, 거액의 재산을 상속해줍니다. 지금으로 치면 100억원 정도 될까요. 19세기 프랑스 화가 중 1등 후보로 무혈입성합니다. 보통 먹고 살 걱정이 사라지면 한 눈을 팔기 마련인데, 세잔은 얼씨구나하며 그림을 그리는 데만 더 집중합니다. 불가사의한 남성입니다.


   세잔은 죽은 이후에야 인정받은 고흐보다는 좀 더 빠르게, 그리자마자 찬사 받은 르누아르보다는 좀 더 느리게 유명세를 얻습니다. 


   처음에는 조롱 뿐이었지만, 그의 '천재 되기' 비법이 그를 전설로 만들었습니다.


폴 세잔의 초상.


   세잔은 평생을 우직히 살아갑니다. 생도 조용하게 마감하죠.


   그는 1906년 10월 어느 날, 화구를 챙겨서 생 빅토와르 산에 오릅니다.


   그림을 그리던 중 폭풍우가 쏟아지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그립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쓰러지고, 한 운전사가 그를 집까지 태워줍니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린 세잔은 팔 다리를 덜덜 떨면서 다시 화구를 챙기지만, 이내 쓰러진 후 다신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게 끝이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67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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