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에게 자신의 대표작을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요?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귀가 잘린 자화상까지. 강렬한 붓질이 머릿 속을 채웁니다. 두꺼운 물감 냄새가 코 끝에 닿는 듯합니다. 분명 고흐의 역작이 맞습니다. 다만 고흐는 그 스스로 이런 작품들을 언급했을까요. 그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고흐가 가장 먼저 꼽을만한 작품, 바로 '감자 먹는 사람들'(1885)입니다.
저밉니다. 절절합니다. 남자 한 명, 여자 네 명. 남편과 아내, 시어머니와 두 딸 같습니다. 이들을 호롱 불 하나만이 비춥니다. 식탁이 보입니다. 김자가 담긴 큰 접시가 있습니다. 남편은 뼈가 앙상히 드러나는 손에 쥔 포크로 감자를 집습니다. 남루한 큰 딸은 눈치를 봅니다. 농사일을 도맡아 하는양, 손도 형편 없습니다. 둘째 딸은 뒷모습만 보입니다. 감자만 뚫어져라 보는 듯합니다. 아내는 커피를 따르고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흰색 컵을 들고 이를 재촉합니다다. 광대뼈와 굵은 주름. 과일도 없고 아채도 없는 식사. 짠합니다. 그림 곳곳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 있습니다. 이들이 가난을 고민할 수 있도록 숨을 죽여야할 것 같습니다.
"내 첫 작품. 그간 그린 것은 모두 습작이야."
이 그림을 그린 고흐가 완성한 후 한 말입니다.
"감자 먹는 농부를 그린 이 그림이 결국 내 그림들 중 가장 훌륭할 작품이 될 거야."
여동생 빌헬미나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고흐가 그린 회화 중 여러 사람을 그려 담은 최초 작품입니다. 신도 아니고, 왕도 아닙니다. 귀족도, 지역 유지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난에 갇힌, 가슴 여민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고흐는 왜 이들을 담은 그림을 첫 작품이라며 감격했을까요.
고흐는 당시 그림다운 그림이 절실했습니다. 화가로 살 수 있을지, 이보다도 앞서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고흐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으로 가는 중 이들 가족을 만납니다. 그는 앞서 누에넨에 살았습니다. 그도 예상 못한 스캔들로 쫓겨나듯 길을 나서기 전입니다. 고흐를 짝사랑한 여인, 마르호트 베흐만이 다량 수면제를 먹고 죽을 뻔한 그 일입니다.
고흐가 가정집 문을 두드리자 한 농민이 맞이합니다. 자신을 호르트로 소개한 이 농부는 그를 가장 큰 방으로 안내합니다. 천을 걷습니다. 여자 네명이 감자를 먹고 있습니다. 고흐는 이때 영감을 얻습니다. '나는 '진짜 화가'로 살 수 있을까.' 그는 이 그림을 통해 그 스스로를 평가하려고 했습니다. 가족들을 한 명씩 따로따로 40번 이상 그립니다. 말그대로 영혼을 담은 것이지요.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접시를 향해 내미는 손…. 자신을 닮은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어."
동생 테오 반 고흐에 보낸 편지입니다. 얼마나 감동했을까요. 꿈꾸던 그림, 자기 손으로 마침표를 찍은 순간에요. 고흐는 이때쯤 호르트 가족을 만나지 않았다면,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리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릅니다.
고흐가 짠한 농민 삶에 영감을 얻은 것은 왜일까요. 누에넨과 아인트호벤 사이에서 많은 것을 봤을텐데도요. 고흐의 당시 아이돌은 '만종'(1857~1859), '이삭 줍는 여인들'(1857)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였습니다. 고흐는 밀레처럼 농촌 애환을 담은 농민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밀레를 따른 한편, 또 밀레를 뛰어넘고 싶은 욕망도 품고 있었습니다.
고흐는 밀레에 딱 하나 불만이 있었습니다. 분명 밀레 작품에는 더 이상 손댈 게 없었습니다. 예쁘고 평화로운 게, 신성함까지 묻어날 정도였으니까요. 문제는 이 지점이었습니다. 밀레 작품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가 볼 때 농촌은 숭고한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집집마다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 있습니다. 꽃과 풀, 나무 곳곳에는 고개를 숙여야 할 애잔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간 밀레의 모순을 넘을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자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지도 염려했습니다. 이때 그의 머리를 호르트 가족의 풍경이 때린 것입니다.
고흐는 구차한, 때로는 조악한 '감자 먹는 농민'을 있는 그대로 그립니다. 진실 담긴 진짜 농촌입니다. 추함이나 불쾌함에 망설이지 않습니다. 밀레의 한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가난. 한(恨)의 정서와 가까운 탓일까요. 고흐의 이 그림은 우리나라 다수 문학가에게 영향을 줬습니다. 정진규 시인은 앞서 보듯 시를 썼고, 신경숙 소설가는 이 그림을 갖고 소설을 썼습니다. 제목은 '감자 먹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나'가 '윤희 언니'에게 쓰는 편지 형식 소설입니다. 주제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입니다. 이야기는 근친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가 과거 남편 죽음을 경험한 '윤희 언니'를 떠올리며 시작합니다. 그녀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녀는 어떻게 툭툭 털어낼 수 있었을까. '나'는 조약합니다. 더 비틀거립니다. '나'는 우연찮게 병원 벽에 걸린 고흐 그림을 봅니다. 호르트 가족이 힘든 노동 끝 감자 몇 알로 저녁 식사를 하는 중입니다. 삶의 비참함, 다만 그 뒤로 보이는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 애정…. '나'는 삶이란 결국 고통과 아픔이란 점, 그럼에도 온 세상을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윤희 언니'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던 이유 또한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존재의 무(無), 하지만 끝 없는 순환. 한편에서 나의 증인들은 사라지고, 다른 한편에서 나의 증인들은 태어나고…. 생의 갑옷은 철갑옷인가 봅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들 앞에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해지는 건 또 어인 까닭인지…."
'나'가 '감자먹는 사람들'을 보고 중얼대는 독백입니다. 이 그림을 알게 된 지금,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오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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