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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Oct 03. 2020

차라리, '절규'라도 내지르면 좋을 것을

<15. 에드바르트 뭉크, '병든 아이'>

 

  "언니는 작가가 어떤 불행도 마주하지 않고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 니나 부슈만의 말입니다. 실존 인물은 아니고,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1911~2002)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입니다. 


   니나는 전쟁 한복판에 뛰어든 여성입니다. 그 안에서 자유와 타락을 만끽한 그녀는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몸을 숨길 안식처로 친언니 집을 찾습니다. 언니는 말합니다. 왜 평범하게 살지 않느냐고. 니나는 그 물음에 이같이 답하고는 다음 말을 덧붙입니다. 위험에 중독됐다고. 평범히 살지 않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없게 돼버렸다고.



에드바르트 뭉크, 병든 아이

   한 소녀가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아파 보이네요. 움직일 힘도 없이 아파보입니다. 깡 말랐습니다. 얼굴과 손이 희다못해 창백합니다. 며칠간 음식은 먹지 못했으며, 몇달 내지 몇년간은 햇빛을 쬐지 못한 사람 같습니다. 눈에 띄게 움직이는 건 머리카락 뿐입니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얇은 바람이 쓰다듬어준 덕입니다. 소녀는 옅은 미소를 짓습니다. 엄마를 보면서, 또 창문 밖을 보면서요. 풍경은 어떨까요. 흐드러진 꽃과 풀잎들이 춤을 추고 있을까요. 소복한 눈이 세상을 설국(雪國)으로 만들었을까요. 소녀는 건강했던 시절의 추억에 잠긴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손 잡고 향기로운 정원을 꾸미던 일, 엄마와 함께 꽃 머리띠와 꽃 반지를 엮고 서로를 꾸며주던 일…. 어떤 추억이든 행복한 회상임은 틀림 없습니다. 


   그런 소녀의 눈에 이제 더는 삶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헝클어진 붉은 머리를 정돈하는 것조차 한참 전에 포기한 듯합니다. 앞으로는 보이는 것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하는 시간은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소녀는 더 이상 소화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추억을 녹여 먹고 있습니다. 사신이 곧 나설 채비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소녀를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억장이 무너지겠죠.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절규 소리를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소녀의 지금 미소는, 어릴 때 뛰어놀던 그 미소와 전혀 다를 것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어머니는 소녀의 팔 위로 기도합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제발 낫게 해달라고. 내가 대신 아프겠다고. 아니, 내 목숨을 바치겠다고. 소녀의 생은 그럼에도 얇은 유리병에 담긴 한줄기 물처럼 위태롭습니다. 윤곽이 없습니다. 거칠고 채도가 낮습니다. 죽음을 토해내듯 그렸습니다. 위험을 숙명처럼 새기고 산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작품 '병든 아이'(1885~1886)입니다. 사진보다 더 사진같이 그린 사실주의가 미술계를 평정했을 무렵, 그가 던진 괴작(怪作)이었습니다.



 

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태어날 때부터 걱정, 불안, 공포, 죽음의 천사들이 내 편으로 섰다. 봄의 햇볕, 여름의 영광을 보러 밖으로 나갈 때면 이들도 나를 어김없이 따라왔다." 


   뭉크는 유독 우리나라에선 '절규'를 그린 작가로만 전해집니다. 알고보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도 한 수 접을만큼 불행의 인사였고, 이 때문에 예술 혼을 활짝 펼친 화가였습니다. 몇몇 분들은 뭉크가 '아픈 아이'를 그렸다는 데 놀랐을 것입니다. 절규의 화가가 저런 절절한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뭉크는 평생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의사였던 아버지 탓이 큽니다. 아버지로는 최악의 의사였습니다. 얼마나 무능했느냐면, 일과 육아를 한번에 하겠답시고 아이들을 병원에 풀어놓습니다. 아이들은 뭘 볼까요. 심장이 멎는 환자, 아픔에 신음하는 환자, 피칠갑이 되곤 실려오는 환자…. 아버지는 또 광신도(狂信徒)였습니다. 매일 밤이 되면 5남매가 침대 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에드가 알렌 포의 공포소설을 읽어줍니다. 아이들은 하나씩 죽거나 미칩니다. 뭉크는 자신 또한 곧 죽거나 미칠 것이라는 강박에 빠집니다. 어머니는 뭉크가 5살 때 죽습니다. 5남매에게 일일이 긴 편지를 남길 만큼 정이 많은 어머니가 죽은 후 불행은 중력처럼 가속도가 붙습니다. 


   뭉크는 병약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없던 병까지 생겼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학자의 길을 걷지만, 심신이 버티지 못합니다. 꽤나 재능이 있었으나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갇혀 관둬버립니다. 그는 화가의 길을 걷기로 합니다. 무엇보다 언제든 쉴 수 있고, 굳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인 게 마음에 들었지요. 후략할 모리스 위트릴로(1883~1955)의 사례에서 보듯, 심리 치료 효과까지 있었습니다. 그는 미술이 방파제 역할을 해준 덕에, 형제 모두가 미쳐 죽어갈 때도 꿋꿋이 살아갔습니다.   



에드바르트 뭉크, 병든 아이

   다시 '병든 아이'를 볼까요. 뭉크가 그린 '병든 아이'는 사실 그의 친누나 소피아입니다. 간호하는 여인은 이모 카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왕진을 갔을 때 본 풍경을 모티브로 한 것입니다. 소피아는 뭉크가 15살 때 폐렴으로 죽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난 후 그 역할을 이어받은 누이마저 똑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뭉크는 이 그림을 소피아가 죽고 8년 후인 23살 때 그렸습니다. 그에겐 언제나 생생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도록 할 '방아쇠'만 없었을 뿐이었죠. 뭉크는 이 그림을 그린 후 비로소 어머니와 누이를 위로했다는 생각으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혈연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일까요. 뭉크는 이 그림 이후에도 수많은 복제품을 그립니다. 


"나에게 '병든 아이'는 새로운 지평이었다. 내 예술에 있어 이는 돌파구였다. 훗날 내가 한 대부분은 이 그림덕에 탄생했다…나는 '병든 아이'를 그릴 때 그림 주제에 몰입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병든 아이에서 앉아있는 인물은 나 자신은 물론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이를 대변한다." 


   뭉크는 1928~1929년 사이에 이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뭉크의 '병든 아이'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대한 문학작품에서 뿜을 만한 카타르시스를 단 한 장 그림에 옮겨 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가슴 치는 절규, 토해내는 핏자국보다도 죽어가는 병든 누이, 먼저 떠난 언니 생각을 하며 간호하는 이모를 보는 위로의 눈길 한 자락이 우리에겐 더 짙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웬만한 문학작품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작품. 이 그림을 보면 떠오르는 문학 작품이 있으실까요. 작가 막스 뮐러(1823~1900)의 《독일인의 사랑》은 어떤가요. 이 책의 주인공은 소년과 소녀입니다. 가난한 소년은 죽을 병에 걸린 고귀한 소녀를 사랑합니다. 소년은 수차례 망설임 끝 소녀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끝내 소녀의 죽음이 갈라놓고 맙니다. 성스러움이 느껴질 만큼 담담합니다. '신의 뜻대로.' 소녀는 이 메시지가 새겨진 반지를 소년에게 쥐어준 후 생을 마감합니다. 소녀도, 뭉크의 친누나인 소피아도 그런 담담함을 갖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홀로 고통 받아야 했을까요. 


   앙드레 지드(1869~1951)의 《좁은 문》이 생각나지는 않으신가요. 소년과 소녀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집니다. 소년을 너무나 사랑한 소녀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소년의 창창한 미래를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소녀는 소년보다 '신'을 더 사랑하기로 합니다. 소년을 위해 소년을 포기하고는, 종교로의 귀의를 택합니다. "저를 사랑하는 일보다 훌륭한 일을 위해 태어난 그가 아닙니까. 그가 저로 인해 걸음이 멈추게 되는데도 제가 그를 계속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소녀가 신을 놓고 한 독백입니다. 극복과 체념, 그리고 받아들임. 당시 소녀와 소피아의 눈빛은 분명 같았을 것입니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초상


   그간 다수 해설에서 아이러니를 말했지만, 뭉크의 삶과 작품만큼 아이러니가 짙은 경우는 드뭅니다. 뭉크의 삶은 양면적이었습니다. 유년기의 고통, 우울·무기력증, 병약함과 무기력함, 알콜 중독 등이 끝없이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뭉크는 이와는 반대로 역동적, 생산적 면에서 상당한 힘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스페인독감의 유행 시기도 버텨냈습니다. 그는 81살까지 삽니다. 그간 사업가적 수완으로 직접 수차례 전시회를 기획합니다. 필생 목표였던 존중받는 예술가의 삶도 기어이 이룹니다. '병든 아이'도 아이러니합니다. 이 작품은 영국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걸려 있습니다. 원래 소유주는 독일 드레스덴 시였습니다. 그런데 1938년 나치 지지자가 뭉크의 그림을 퇴폐 예술로 간주, 그의 모든 작품을 베를린에 가져와 헐값으로 경매에 부칩니다. 노르웨이 화상 하랄 할보르센이 사들고 오슬로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토마스 올센이란 자가 '병든 아이'를 구입한 후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기증합니다. '병든 아이'가 그간 걸어온 길입니다. 그 후 할보르센의 뭉크 그림 상당수는 파괴됩니다. 나치 색에 물든 독일이 1940년 노르웨이를 점령했고, 훨씬 더 기세 오른 나치 지지자가 뭉크의 작품을 모조리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병든 아이'가 되레 뭉크의 작품 중 가장 긴 명을 갖게 된 작품을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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