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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Oct 04. 2020

'신비주의 끝판왕'의 일일을 들춰보니  

<16. 빌헬름 하메르스회, '햇빛 속에 춤추는 먼지'>

   고요, 적막.


   홀로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붓을 든 화가가 있었습니다. 남들 모두 인상주의 바람을 맞고 밖을 정처없이 돌아다니던 때입니다. '아싸'(아웃사이더)의 아이콘으로 꼽힐 만한 빈센트 반 고흐마저 있는 힘을 다해 쏘아다녔으니,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예상할 수 있으시겠지요.


   적응하지 못한 은둔의 남성, 실제로 도태될 뻔한 수수께끼의 화가. 지금은 북유럽의 대표적인 인물이 돼, 에든바르트 뭉크와 함께 손 꼽히는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빌헬름 하메르스회(1864~1916)의 이야기입니다.


빌헬르 하메르스회, 햇살 혹은 햇빛(햇빛 속에 춤추는 먼지)

   고요함이 마음 속 구석구석 퍼집니다. 


   창문 틈 들어오는 빛이 방바닥에 스며드는 일을 보면 왠지 모를 나른함, 편안함이 피어오릅니다. 북유럽의 겨울 빛을 담고 있는 가정집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회색 톤의 벽, 다듬어진 흰색 격자무늬 창틀이 아름답습니다. 둥둥 떠다니고 있을 먼지마저 친근히 느껴집니다. 집 안 풍경일 뿐인데, 웬만한 '비밀의 숲'보다도 더욱 신비로운 기운이 감싸는 듯합니다.


   있는 것이라곤 정직하고 내려오는 빛, 그리고 이를 쬐며 부유하고 있을 먼지 뿐입니다. 더할 게 많아보이는데, 또 더할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텅 빈 곳에 막힌 공간인데도 긴장감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래된 나무 냄새랄까, 햇빛을 잘 받은 주름진 커튼 천의 냄새랄까, 묘한 여운만이 남습니다.


   마음 한 켠으로는 홀로 있을 때에야만 느껴지는 외로움과 공허함 같은 감정들이 밀려오는 듯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찾아오면 찾아오는 대로, 밀려오면 밀려오는 대로 손 흔들며 반겨야 할 것 같습니다.


   슬플 때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과장된 코믹 영화가 아닌 잘 다듬어진 멜로 영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소하게 잘 정리된 그림은 조용히 울고 있는 이에게 담담한 위로를 전해주는 듯합니다. 


   "이 공간이야말로
   나에게는 완벽한 아름다움이에요.
   아무도, 아무 것도 없더라도,
   그 자체만으로요." 
   <빌헬름 하메르스회>


   하메르스회의 '햇살 혹은 햇빛'(1900)이란 그림입니다.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 이후 '햇빛 속에 춤추는 먼지'(dust motes dancing in the sunbeams)란 제목을 붙여줬죠. 


   다양한 붓 터치, 섬세한 색 단계가 눈길을 끕니다.


   회색과 갈색 톤 중심의 제한된 색이 담긴 이 그림이 꽉 찬 밀도를 보이는 이유입니다. 붓의 시작점과 끝점을 찾기 힘듭니다. 같은 뿌리를 둔 색은 갖은 질감, 채도로 다가옵니다. 같은 시대 인상주의 화가들이 원색의 진한 물감 묻은 붓을 종이 위로 억세게 찍어낼 때, 하메르스회는 아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 것입니다.


   <질문 1. 하메르스회는 왜 이런 그림들을 그렸나요?>


   무엇보다, 하메르스회는 천성 자체가 예민하고 내성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한, 무뚝뚝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또 변태 기질이 있었던 것인지, 그 스스로 외광이 없는 어두컴컴한 방구석을 좋아했습니다. 


   1864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하메르스회는 8살 때 첫 드로잉 수업을 받았습니다. 왕립미술학교(The Royal Academy of Fine Arts)를 졸업한 후, 자연주의 화가 크뢰위에르(1851~1909)의 아틀리에에서 그림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애초 프랑스 파리의 '많고 많은' 인상주의 화가 중 한 명으로 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림 좀 그린다는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에 태어나도 꾸역꾸역 올 정도로, 파리가 예술의 중심지로 우뚝 선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빌헬름 하메르스회, 이젤이 있는 배경

   하메르스회는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참여합니다. 


   많은 화가들이 이때 파리의 다채로움에 반해 일대에서 뼈를 묻기로 결심하지요. 


   그는 달랐습니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인상주의 화풍에 젖어 이곳 저곳을 쏘아다녔지요. 그런데 영 재미도, 감동도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메르스회가 1898년 코펜하겐 해변로 30번지(Strandgade 30)에 있는 네덜란드 풍의 집을 얻고, 이 곳으로 무대를 완전히 옮긴 까닭입니다.


   앞서 그에게 변태 기질이 있다고 언급했지요.


   하메르스회는 방구석에서 꽉 막힌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신바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화가들은 빈 방만을 그리지는 않지요. 공식처럼 한 무리를 세우거나 앉히고, 강박적으로 무언가의 상징물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하메르스회는 이와 반대로, 공간이 허할수록 감정이 배로 차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런 흥분감이 있어서인지, 같은 장소의 비슷한 시각이 담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립니다. 집착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질문 2. 은둔자와 같은 삶인데, 그의 예술활동을 도운 사람은 있었나요?>

빌헬름 하메르스회, 편지를 읽는 이다

   하메르스회의 그림에 등장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은 그의 아내 이다 일스테드(Ida Illested), 누이동생 안나(Anna)였습니다. 워낙 내성적이었으니, 그냥 가족을 모델로 삼은 것입니다. 특히 하메르스회는 꾸밈없이 평범한 차림으로 있는 이다의 뒷모습을 마치 집 안 인테리어의 일부처럼 담아냈습니다.


   가족 외 인생의 귀인들도 있었지요.


   하메르스회는 자신의 집, 가족과 함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지만, 대중들의 첫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습니다. '인상주의'와 '인상주의가 아닌 것'으로 구분되던 때, 그의 그림들은 후자로 꼽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요. 진부한 일상생활 그림이란 평이 대부분이었죠. 근 10년간 무명의 세월을 보낸 까닭입니다.

빌헬름 하메르스회, 피아노 앞 여성이 있는 배경

   그는 예상 못한 인사들의 찬사로 재조명 받습니다.


   조국이 그를 별로 관심에 두지 않는 동안,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차츰 시선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테의 수기'를 쓴 독일 시인 겸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나는 그의 작품과 내면의 대화 나누기를 멈춘 적이 없다"는 말을, 말년에 독일 공로 훈장을 받게 되는 화가 에밀 놀데(1867~1956)는 "팔레트로 그린 시적인 서정시인"이라는 평을 합니다. 진작 그의 재능을 알아본 치과 의사 알프레드 브란센도 끊임없이 후원을 해줬습니다.


   찬사를 등에 업은 하메르스회의 작품들은 독일 뮌헨과 베를린,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등에 연달아 걸립니다. 1911년 로마 국제전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쥔 그는 비로소 덴마크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자리매김합니다.


   <질문 3. 그런 그도 동경(憧憬)하는 대상이 있었다는데요….>


   시점을 잠시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로 앞당겨볼까요.


   당시 거리에 걸려있던 대부분의 그림들을 시큰둥히 본 하메르스회가 딱 한 명 마음 속에 품은 화가가 있었습니다. 제임스 휘슬러(1834~1903)입니다. 하메르스회가 회색 등 단색의 색채로 명암과 농담을 나타내는 그림 기법을 즐겨 쓰게된 건 그날 이후 휘슬러에 대해 갖게 된 동경심 때문이었습니다.


   남의 눈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였지만, 휘슬러를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 그의 집 앞으로 찾아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문전박대를 당해, 차 한 잔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지만요.


   "하메르스회는 휘슬러를 존경했다. 휘슬러가 가라앉은 톤과 빛의 추상적 효과를 능란히 다루는 것을 부러워했다. 그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휘슬러의 집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대가는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그를 외면했다. 하메르스회는 발길을 돌렸다. 다시는 휘슬러와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영국 방송인 겸 작가, 마이클 팰린>
빌헬름 하메르스회, 두 개의 초가 있는 배경

   하메르스회가 동경한 또 다른 대상은 런던의 안개입니다.   


   하메르스회는 분명 '아싸'였지만 종종 유럽 등지를 여행했습니다. 아내가 의외로 '인싸'(인사이더)였는지, 혹은 예술가 특유의 호기심이 발현됐는지는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부유한 상인 집안이던 만큼, 여행 자체는 전혀 부담되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1897~1906년 사이 런던만 3차례 찾았다네요. 축축한, 거무스름한 안개를 보기 위해서요. 정말 변태 기질이 있던 것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에드워드 호퍼의 기묘하지만 영리했던 융합."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초상

   하메르스회는 1914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사실상 작품활동을 멈춥니다. 그는 1916년 52세의 나이에 후두암으로 눈을 감습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서 대대적인 회고전을 합니다. 후원자 알프레드는 1918년 그가 소장하던 하메르스회 작품을 코펜하겐의 스테든 박물관에 기증합니다. 


   '침묵의 시'. 하메르스회가 죽은 후 세상이 그의 작품에 지어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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