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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Oct 10. 2020

"한없이 잔인하게, 한없이 아름답게"

<17. 윌리엄 터너, '노예선'>

윌리엄 터너, 노예선

   1783년 어느 가을 날. 노예 400여명을 태운 종(Zong) 호는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자메이카로 움직였다. 선장과 선원들은 즐겁게 잔을 부딪혔다. 어림 잡아 노예 중 절반 이상은 'A급'이었다. 턱과 이가 단단하고, 팔·다리도 멀쩡했단 이야기다. 선장이 주도한 검사는 철저했다. 눈은 잘 뜨는지, 말은 잘 하는지 등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한 노예 상인에게 벙어리를 멀쩡한 척 넘기면 어떡하냔 말을 들은 이후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눈에 띄지 않는 신체 부위(가령 귓불) 중 두 어곳을 자르는 일이다. 녹슨 칼을 보는 노예의 면이 하얘지고, 떼어지는 순간 소리가 난다면 합격이다. 날씨는 좋았다. 돌고래 8~9마리가 선박과 경주하듯 따라붙었다. 바닷물이 튈 때마다 옅은 비린내가 났다. 선원들의 휘파람이 배 안에 가득했다.


   선장이 해군 보급병 출신의 선원들을 데려온 건 잘한 일이었다. 종 호는 애초 초대형 선박급이 아니었다. 물품 정리에 일가견이 있는 자가 없었다면 배에 남·녀, 어린아이·노인이 섞인 노예 400명을 싣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 노예들은 양팔을 엑스 자로, 손바닥을 반대편 어깨에 붙인 채로 실려졌다. 


   선원들은 꼼꼼하고 성실했다. 일에 밤낮 구분없이 매진했다. 선원들은 사실 낮보다도 밤에 벌어지는 일을 더욱 좋아했다. 노예를 싣는 데는 1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선원들이 만지고, 던지고, 죽이는 등 장난을 치지 않았다면 훨씬 더 빨리 끝났을 것이다. 눈치 빠른 선장도 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예들 중 절대 다수는 가지런히 선박 하층부에 놓여있고, 각자 팔·다리에 꼼꼼히 쇠사슬이 묶여있는 것을 보곤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선장은 자메이카 땅을 밟는다면 이들에게 보너스를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종 호는 몇개월 간 항해를 해야 한다. 날씨가 매일 좋으란 법도 없다. 눈 앞에 긴 여정이 놓인 셈이다. 다행히 술과 소금은 가득했고, 보급품도 탄탄했다. 


   선원들 중 상당수는 전리품에 큰 관심을 보였다. 색(色)은 다르지만, 어쨌거나 자신들과 비슷한 외양을 갖췄기 때문이리라. 선원들은 남·녀, 어린아이·노인 구분 없이 노예 30여명을 특별 관리했다. 400명 중 그나마 건장하고 생기있는 특등품이었다. 선원들은 때때로 선박 상층부의 창고를 찾아 이들을 먹여주고 씻겨줬다. 말을 잘 들으면 쿠키, 먹다 남은 정어리 등 특별식도 제공했다. 장난끼가 있는 선원들은 이들을 묶어놓고 그 앞에서 파티를 했다. 노예들은 그때마다 고장난 듯 쇳소리를 냈다. 선원들은 소금 절인 고기 몇 점을 던져줬다. 요구하는 일을 들어주는 노예에 한해서였다. 대개 남자보단 여자가 더 많은 고기를 얻어 먹었다. 


   선원 몇몇은 실험 정신이 투철했다. 이들은 꼬챙이 등 잡동사니를 들고 창고 문을 열었다. 큰 집중이 필요한지, 한참 후 눈이 새빨개지고 난 후 돌아오곤 했다. 선장은 가끔씩 주의를 줬지만 크게 말리진 않았다. 항해는 무료하다. 항해 도중 노예들 가운데 일부가 죽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의 신선도는 가만 둬도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종 호가 물 위에 오른 지 1개월 째, 불침번의 일은 점점 많아졌다. 


   애초 불침번은 1시간 주기로 선박 밑 바다 깊이를 재야 했다. 바다는 하늘만큼 변화무쌍하다. 너무 얕아도, 너무 깊어도 안 됐다. 바닷 바람의 방향·세기를 보고, 멀리서 섬이나 암초 따위가 있는지도 봐야했다 모두 베테랑인 만큼, 이런 건 큰 일이 아니었다. 불침번을 곤욕스럽게 한 것은 차츰 살펴볼 게 많아지는 선박 지하 점검 일이었다. 불침번은 등불을 들고 노예들을 쌓은 선박 지하실을 한 바퀴 크게 돌아야 했다. 날이 지날수록 형용할 수 없는 악취가 코 끝을 날카롭게 찔러댔다. 


   또 불침번을 귀찮게 한 것은 노예들의 상태였다. 동공이 풀렸거나, 손·발가락, 머리카락 등이 후두둑 잘려있는 노예들이 차츰 많아지는 탓에 일지를 놓고 특이사항을 써야 할 일이 잦아졌다.


   애초 선원들은 배를 출항하기 전 노예들을 바닥에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눕혀놨다. 쌓다보니 거진 4층 높이였다. 서로 팔과 다리를 쇠사슬에 끼운 상태였다. 등불을 든 불침번은 이 모습을 보고 종종 흔들림을 막기 위해 배와 배를 묶는 일을 떠올리곤 했다.


   익히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인간은 텅 빈 방에서 물 없이 3일, 음식 없이 3주를 살 수 있다. 그러다면 쥐와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곳에 넣은 채 물과 음식을 하루 한 줌씩만 준다면? 생존은 3주 이상 이어지겠지만, 그들의 몸과 정신은 온전하지 않으리라. 물론 예상대로였다.  


   특히 맨 밑 노예들의 품질은 눈에 띄게 나빠지는 중이었다. 수백명이 쏟아내는 배설물에 곧장 노출되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매일 한 움큼도 되지 않는 말린 멸치, 새우를 먹고도 열심히 부산물을 쏟아냈다. 움직일 수 없으니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했다. 가장 아래 깔려있는 노예들은 독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바닥의 색은 급속도로 누래졌다. 저녁 점호 시간에야 대충 이뤄지는 청소로는 역부족이었다. 


   노예 일부는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켰다. 이들은 자기 손·발가락을 미친듯이 문지르고 물어뜯었다. 긴장감을 풀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지만, 그 자체가 편집증이 된 듯했다. 하얀 뼛가루가 묻은 검고 길다란 조각이 바닥을 뒹구는 건 이 때문이었다. 굶주린 일부는 고개를 돌린 후 바로 옆 노예의 얼굴을 뜯어댔다. 쥐와 바퀴벌레도 시간이 지날수록 뒤룩뒤룩 살이 쪘다. 불침번은 뭘 이렇게까지 살펴봐야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


   전염병이 지하실을 중심으로 퍼진 건 어찌보면 예고된 일이었다.


   계절을 건널만큼 긴 항해를 한 때쯤, 지하실에선 끙끙대는 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선원들이 특별 관리하는 노예들을 풀어 장난을 칠 때 나는 것과 다른 소리였다. 선장과 선원들은 지하실 점검도 소홀히 할 때 쯤이었다. 노예 중 불량품은 어쨌거나 소수였다. 10명 중 7~8명 꼴로만 살아도 큰 성공이다. 


   이상현상을 가장 먼저 인지하게 된 이는 선장이었다. 그는 막내 선원들을 지하로 보내 노예들을 전수 조사하도록 주문했다. 사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노예 1번, 노예 4번, 노예 9번, 노예 13번…. 거진 절반에 전염병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윌리엄 터너, 좌초한 배

   그간 너그럽기로 이름 난 선장은 화가 울컥 올라왔다. 병균 보유자에 대한 원망이자 분노였다. 판단은 빠르고 정확해야 했다. 선장은 발열하는 노예들을 모두 골라내길 지시했다. 이들은 선장의 내지르는 억소리 속에서 한때 포도주가 가득 담겨있던 술통으로 욱여진 채 들어갔다. 문제 되는 노예는 얼핏 봐도 150여명이었다. 이들 모두는 술통 10여개에 구겨진 채로 담겨져야 했다. 코를 막은 선원들은 이들의 목뼈와 날갯죽지가 부러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하나라도 더 넣는 데 집중했다. 뚜껑 닫힌 술통에는 비명과 함께 빠지직거리는 불분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굴려." 


   선장의 말은 간결했다. 선장은 사실 모든 손익을 계산한 후였다. 지하실 위로 전염병이 돌아 모두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일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노예가 배 안에서 죽으면 보험사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데 주목했다. 선장은 노예가 실종되면 그 규모 당 일정 금액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노예가 병들어 죽기보단, 사라지는 게 더 나은 상황인 것이다. 선장은 그런 다음 선원들과 합을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항해 도중 큰 태풍을 만났다…. 우리는 겨우 살았지만 노예들을 모두 살릴 수는 없었다…는 식으로. 


   때마침 괜찮은 폭풍우가 다가온 때였다. 배는 결코 뒤집어지지 않겠지만, 그런대로 생색을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선원들은 땀을 뻘뻘 흘렸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100kg이 넘을 술통을 거듭 굴려 버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해질녘 바다가 보여주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노예들은 바다로 떨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술통 안을 모두 깨부쉈다. 재질 자체가 나무였던 만큼, 물을 품을수록 강도가 약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서로를 물어뜯던 노예들이 어디 성한 상태인가. 이들은 바다 위로 팔을 뻗곤 피와 눈물을 거듭 흘려댔다. 몇몇은 아직도 팔과 다리에 덜 잘린 쇠사슬이 묶인 상태였다. 타는 듯 샛노란 노을 빛이 이들을 따뜻히 덮어주는 듯했다. 노예들은 곧 하늘과 바다의 친구들도 맞이할 수 있었다. 기러기와 육식 물고기는 귀신 같이 이들에게 달라붙였다. 살아생전 그렇게 뜨거운 포옹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바닷 속 노예들이 하늘을 향해 뻗는 손은 봄철 아지랑이가 사라지듯 점차 옅어졌다. 


윌리엄 터너, 노예선 (일부 확대)

   선원들은 그 모습을 폭죽놀이 관람하듯 넋 놓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다시 이런 장관을 볼 수 있을까 하고서. 모두 육지 땅을 밟는 즉시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잠깐 잊은 상태였다. 이들 중 일부는 이날 잠자리에 들기 전 옆 선원에게 그 광경을 볼 때 노예를 갖고 노는 일 이상의 묘한 쾌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선장만이 그런 광경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책임감을 갖고 항해를 지휘했다. 선원들도 곧 제 자리를 찾았다. 선장은 막내 선원들을 모아 일주일 치의 불침번을 면제해주는 합리적인 결정을 했다. 선원들은 다음 주 식사 당번을 정하는 데 집중했다. 이들은 2주 연속 제비 뽑기에 실패한 한 선원을 보고 크게 비웃었다. 이제 곧 저녁을 먹고, 늘어지게 휴식을 할 수 있는 때였다. 아직 아무도, 지하실이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는 걸 알지 못했다.




윌리엄 터너의 초상


   영국 풍경화의 역사를 대표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는 1840년에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터너는 영국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19세기 초 토머스 클랙슨의 역사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영국은 이미 1807년부터 노예 거래를 금지하고 있었지만, 그림이 발표된 때에도 노예 시장은 여전히 성행했습니다. 터너는 이 그림을 통해 당대 사회 이슈에 일침을 가하면서, 물질적 이득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의 비인간성을 비난한 것입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노예선'으로 익히 알려졌지만, 진짜 이름은 '폭풍우가 밀려오자 죽거나 죽어가는 이들을 바다로 던지는 노예 상인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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