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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Oct 10. 2020

152cm의 작은 거인, 물랑루즈 뒤흔들다

<18. 툴루즈 로트렉, '세탁부'>

   "이건, 그냥 저네요."


   1889년, 카르망 고댕이 자신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받아들곤 싱긋 웃습니다. 마음에 쏙 드는 듯 품에 꼬옥 안습니다. 그녀는 당시 내로라한 예술인이라면 모두가 애정어린 목소리로 '붉은 머리 로자'라고 부른 뮤즈(Muse)였습니다. 


   그녀가 그림을 건넨 이를 봅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호감, 그 너머로 사랑의 감정마저 읽혀집니다. 이런 '파리의 요정'을 어린 아이처럼 들뜨게 한 이를 볼까요. 그런데, 애초 점친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154cm의 작은 키입니다. 위는 어른, 아래는 아이 같은 게 임프(imf) 같습니다. 말은 어눌하고, 걸을 때마다 눈에 띄게 절뚝입니다.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옷에선 씻을 수 없는 짙은 술 냄새가 풍깁니다. 툴루즈 로트렉(1864~1901), 그는 그럼에도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툴루즈 로트레크, 세탁부


   먼 곳을 보는 한 여인입니다.


   헝클어진 머리가 귀찮은 듯 뒤로 묶었습니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에선 지침 내지 체념의 감정이 보입니다. 손은 거칠고 투박합니다. 흰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를 입었습니다. 남루합니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옷들입니다. 크게 보면 색채는 밝지만, 분위기는 쓸쓸합니다. 속도 있는 붓 터치, 짜임새 있는 구도 사이로 고독함이 새어나옵니다. 겉보다는 내면을 생각하게 합니다. 얼굴도 보이지 않고, 특별히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데도 여운이 남습니다.


   로트렉의 '세탁부'(1886~1887)입니다.


   이 여인 앞에는 구겨진 흰색 천이 있습니다. 세탁물입니다. 


   남이 입던 옷을 빨고 다리면서 생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그 당시 일반인이 영세 세탁부, 게다가 여성 세탁부를 보는 시선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습이야 말로 카르망의 진짜 일상이었습니다.


   당시 카르망은 파리 몽마르트 언덕을 부유한 만인의 연인이었습니다. 그녀의 매력은 묘했습니다. 두 눈은 촉촉했고, 꾹 다문 입술에선 삶에 찌든 절절함, 결연한 생의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부드러운 곡선에선 야성미가 흘러내렸습니다. 약하고 깡 마른 다른 여성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로트렉은 애초 꾸밈이란 게 불가능한 인사였습니다. 그부터 왜소증이란 눈에 띄는 장애를 갖고 있었기에, 삶을 대하는 데서 꾸밈이란 것은 사치였습니다.


   로트렉은 1864년 프랑스의 이름 난 귀족인 알퐁스 백작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와 명예를 함께 갖고 세상에 난 셈입니다. 다만 행운만은 아니었습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뼈가 약한 유전병을 물려 받아서입니다. 순수혈통을 지킨답시고 행한 근친상간의 결과였습니다.


   로트렉은 겉으로 보여지는 꾸밈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되레 어린 시절의 악몽 이후 병적으로 기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아버지는 로트렉이 날렵한 사냥꾼으로 크길 원했습니다. 귀족이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고상한 취미에 익숙해지길 바란 것입니다. 하지만 로트렉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허약 체질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878년, 의자에 떨어져 왼 다리에 골절상을 입습니다. 비극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해엔 오른쪽 다리마저 골절상을 당합니다. 고작 14살, 다리의 성장은 멈췄습니다. 아버지는 차츰 그의 아들을 무시하더니, 증오하고 경멸합니다. 로트렉도 그런 아버지에 반발합니다. 귀족 사회가 품은 허위, 위선에 환멸을 갖습니다. 


   로트렉의 생을 두 다리 대신 지탱해준 것은 특유의 쾌활함과 예술 뿐이었습니다. 


   로트렉은 연필 스케치를 하는 그에 대해 "자기 지팡이로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듣고도 너털웃음을 지을 정도였습니다.


   귀족 수업 중 일부로 배운 인성과 그림 수업이 인생 그 자체가 된 것입니다. 18세 무렵, 그의 어머니가 아틀리에 중 한 곳으로 '보나'를 소개해줍니다. 그와 같은 은둔형 인물인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고, 당시 꿈틀대고 있던 인상주의를 만나게 된 곳입니다. 로트렉은 새로운 세상에 눈 뜹니다.


 



   로트렉이 생의 둥지를 틀었던 곳은 몽마르트 언덕이었습니다. 그는 1889년 문 연 주점 '물랑루즈'를 제집처럼 드나듭니다.


   지금은 예술가의 살롱으로 기록되지만 당시에는 취객과 부랑자, 몸을 파는 여인이 뒤섞인 난장에 가까웠습니다. 로트렉은 그런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는 꾸밈 없고, 가식 없고, 위선도 품지 않은 채 오롯이 오늘 하루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뿜는 특유의 분위기에서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정상인 이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의 어눌함과 왜소증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로트렉은 특히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몸을 파는 여인들에게 주목합니다. 카르망은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저주같은 삶이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투영됐을지도 모릅니다. 


툴루즈 로트렉, 휴식
툴루즈 로트렉, 화장

   그는 이들과 함께 삽니다. 돈이 많으니 비싼 술, 비싼 음식을 기꺼이 꺼내줍니다. 삼류 드라마 같은 고민도 모두 들어줍니다. 함께 웃고, 함께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늘 붓을 들었습니다. 반라로 성병 검진을 기다리는 모습, 레즈비언들이 침대에서 입맞추는 모습, 하룻밤을 팔기 위해 응접실에 있는 모습 등. 찰싹 붙어있지 않으면 결코 그릴 수 없는 현실적인 모습입니다.


   그림이면 예쁘고 아름다워야한 때입니다. 당시 피어나던 인상주의가 모욕받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볼품 없는 난쟁이 화가가 이 시대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고 다닌 격입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갈색 머리의 소녀(수잔 발라동·왼쪽) / 툴루즈 로트렉, 수잔 발라동의 모습.


   로트렉과 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당시의 사실상 1세대 여성 예술가이자 '파리의 낭인' 위트릴로의 어머니인 수잔 발라동이었습니다.


   수잔 발라동은 로트렉에 푹 빠졌습니다. 로트렉이 '수잔'이란 이름을 지어줬을 때부터인지, 아니면 그녀의 솔직한 모습이 담긴 그림을 받아들었을 때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몽마르트 언덕을 떠돈 화가들은 수잔을 놓고 '여신 만들기' 프로젝트를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로트렉은 이같이 숭배받는 수잔의 본 모습을 솔직하게 품어냈습니다. 


   수잔은 자살 소동을 벌이면서까지 끈질기게 구혼합니다. 로트렉이 되레 고개를 젓습니다. 저주 받은 생을 덜어주고 싶지 않았던 건지, 수잔의 격정적 면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는지, 비극에 비극을 더해봤자 더 큰 비극 외엔 올 게 없다는 점을 알았는지,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로트렉은 말 없이 독한 압생트만 마시고, 몸을 파는 여인들과 함께 몽마르트 언덕을 돌아다니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더하자면, 로트렉과 고흐의 우정도 눈길을 끕니다. 


   1886년. 22살 로트렉과 33살 고흐가 만납니다. 로트렉은 유머 속 쾌활함을 발산했고, 고흐는 정반대로 진중함과 우울함만을 뿜어냈습니다. 로트렉은 물랑루즈 등 실내 풍경을 그렸고, 고흐는 사이프러스와 밀밭 등 실외 풍경을 즐겨 그렸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압생트를 더해 갖가지가 섞인 술을 마신다는 점 뿐입니다. 이들은 숱한 차이점을 뚫고 끈끈히 이어집니다. 몸은 불안정하지만 정신만은 멀쩡한 로트렉, 몸은 멀쩡하지만 정신만은 불안정한 고흐. 서로의 슬픔이 결국 맞닿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까닭입니다.


   두 사람은 함께 전시회를 기획할 만큼 친해지지만, 우정은 고흐의 자살로 종지부를 찍습니다. 로트렉은 고흐의 죽음을 알게 된 후 더 많은 술을 마십니다.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됩니다.




툴루즈 로트렉, 카바레 앙바사되르에 출연하는 아리스티드 브뤼앙 (포스터)


   로트렉은 그런 와중에도 꾸밈 없는 그림을 계속 그렸습니다. 우아함은 개나 주겠다는 식의 태도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로트렉은 상업용 포스터 제작에 앞장섭니다. 예술인들 상당수가 화려한 배경, 아름다운 모델 등 비싼 값이 팔릴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던 때입니다. 상업용 포스터는 고매한 예술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대놓고 천시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로트렉의 시선은 늘 그랬듯 몽마르트 언덕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 물랑루즈에서의 춤


   그는 숙명처럼 그려갑니다. 길거리 벽에 붙었다가 나뒹굴고, 지저분하게 떼어져버리는 그 그림들에 생명을 겁니다. 핵심과 상징만 보이는 간결함, 현란한 선과 파격적인 구도, 홍등가를 떠올리는 듯한 우려한 색상. 로트렉의 포스터는 벽에 붙는 즉시 사라집니다. 스토커가 생기고, 그의 포스터만 거래하는 시장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추한 걸 추한대로 그리는 것. 그 뿐입니다."


   로트렉은 누군가가 그림을 왜 그렇게 노골적으로 그리느냐고 물을 때 이같이 답했습니다. 그는 결국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었습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장 낮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 더럽고 비루하며, 퀭하고 쓸쓸한 것. 몸 파는 여인부터 상업용 포스터까지. 로트렉은 이를 가슴으로 품었고, 결국 성스러움까지 느껴지는 숭고한 작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제 죄는 살인보다 더 크고 잔인합니다. 저는 난쟁이로 태어나는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미국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온 전략가 '티리온 라니스터'(피터 딘클리지)를 아시나요? 


   왕족으로 세상 빛을 본 그는 불굴의 의지, 재빠른 두뇌를 가진 인사입니다. 술과 농담 속 사교성을 발휘하고, 왕의 따귀를 내려칠 만큼 배짱도 타고 났습니다. 소위 '엄친아'라고 할만 합니다. 


   그의 딱 하나지만, 그 자체로 치명적 결점이 된 것은 135cm 밖에 되지 않는 키였습니다. 그는 어딜 가도 오해 받고, 누명을 씁니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조차 외면 받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누나에게 사실상 사형 선고를 받는 등 최악의 일까지 겪습니다.


   로트렉이 바로 티리온의 공식적인 모델입니다.


   로트렉은 티리온이 생생히 보여준 삶처럼, 끝없이 무시받고 계속해서 질타를 받습니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그 이유 때문입니다. 똑같은 좋은 말도 10번을 들으면 지루해진다는 데, 나쁜 말은 오죽할까요. 그의 속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로 가득해집니다.




   로트렉은 1890년대 말, 30살이 넘어설 때를 기점으로 부쩍 난폭해집니다. 20대 중후반 쯤 걸린 것으로 보이는 매독의 영향도 컸을 것입니다. 그쯤 로트렉의 상업용 포스터로 더욱 유명해진 물랑루즈가 '물 관리'를 명목으로 그를 쫓아버린 일 또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장난질로 주변인을 놀래켰고, 평생 지기처럼 대한 무희와 부랑자들에게도 거침없는 폭언을 했습니다. 더 많은 술을 마셨고, 더 많은 착란 증세를 보였습니다. 자기 주변에 석유를 한가득 뿌린 후 전염병에 걸리는 게 무섭다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삶에 대한 푸념, 분노는 그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그의 음주 습관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1901년 8월, 로트렉은 폐결핵으로 죽습니다. 그는 그가 평생 원망한 아버지 앞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친구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을 등진 나이와 똑같은 37세였습니다.


   로트렉의 집을 굳이 찾아와 그의 그림을 애써 불태우던 아버지, 그는 로트렉이 죽은 후 그 작품들이 루브르 박물관에 걸리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아들의 진가를 인정했다는 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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