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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Oct 11. 2020

반 고흐가 권총 자살을 계획했다고? 천만의 말씀

<속사정 특집1 :  빈센트 반 고흐>

   "스스로 총을 쏘는 일마저도 실패했어."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일기 중 한 페이지를 보면, 죽어가는 빈센트는 "난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을까"라고 푸념한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테오가 쓴 이 한 줄은 빈센트의 '자살설'에 힘을 싣는 사실상의 스모킹 건(smoking gun)으로 다뤄졌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오베르의 거리

   지난 1890년 7월 27일. 빈센트는 프랑스 파리 주변의 작은 마을이던 오베르의 한 들판에서 총을 맞습니다. 


   그의 자살을 주장하는 쪽은, 충동적으로 자신의 배에 총을 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사하길 바라고 쐈지만, 당초 계획에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서툴렀던 탓에 일이 잘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하지요.


   자살이면 명분, 방법을 수백번 고민하고 유서까지 쓴 후에야 행하는 것 아니냐. 충동적 자살이란 게 어딨느냐. 빈센트의 '타살설'을 주장하는 쪽은 이렇게 꼬집습니다.     


   하지만, 당시 빈센트는 충동적 자살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생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의 늪에 빠진 그는 지난 수십 년간 나름의 노력을 해봤지만 모두 수포였습니다. 


   술도 끊고, 음식도 조절하고, 정신병원에서 사실상의 감금 생활도 했습니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누가 장난스레 스위치를 마구 누르는 양 눈물이 흐르고, 무언가를 찢고 던지고 부수고 싶어집니다. 조울증과 신경쇠약증, 경계성 인격 장애 등은 악령처럼 따라옵니다. 정신병은 암세포와 같았습니다. 몸의 상처는 가만히 두면 아물 수 있지만, 정신의 상처는 평생을 보살피지 않으면 예고 없이 덧나기 일쑤입니다.


   침대에 누웠을 때, 옛날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괴로웠던 적이 있지요? 정상적이라면, 애꿎은 이불을 뻥뻥 차다가도 잠에 듭니다. 하지만, 정신이 아플 때라면 좀처럼 악몽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처럼, 멀쩡해보이던 이도 그렇게 한 순간 무너지고 맙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이와 관련, 네덜란드 그로닝겐대학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빈센트가 오베르에서 생활하던 시기, 금주에 따라 발생하는 '섬망'(급성 기질성 뇌증후군·delirium)에 시달렸다고 밝혔습니다. 연구 결과는 국제조울증저널(IJBD)에 소개됐습니다. 이 또한 술, 약물 등으로 인해 환각, 비정상적 정신운동 활성, 판단력과 인지기능 저하를 겪는 정신병의 한 종류입니다.


   이 말인 즉, 빈센트도 어떤 계획으로 오베르의 들판에 나왔든지 간에, 교통사고처럼 치고 들어온 정신적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에게 총을 겨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학대, 한때 결혼까지 꿈꾼 사창가의 여인 시엔과의 다툼, 폴 고갱 등 옛 동료들과 갈등, 감옥같은 가난, 동생에게 끊임없이 손 벌리는 데 대한 자기혐오 등…. 그를 칠 수 있는 자동차는 많습니다.


   빈센트의 몸을 가른 총알은 그의 가슴을 뚫고 척추를 조각 냈습니다. 그는 즉사하지 않고 척추가 조각난 채 피투성이로 여관에 돌아옵니다. 깜짝 놀란 여관 관리인은 곧장 의사부터 부릅니다. 총알을 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빈센트도 다음 날 아침에는 물을 마시고, 담배도 피울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방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길

   문제는 2차 감염이었습니다.


   빈센트는 총알이 뚫어버린 그의 가슴 쪽에서 균이 증식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틀 후인 7월 29일에 숨을 거뒀지요. "집에 가고 싶다"란 말을 유언처럼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런데, 빈센트가 살해를 당했다는 설도 근거가 적지 않습니다.


   미국 출신의 법의학자 디 마이오는 '진실을 읽는 시간'이란 저서를 통해 빈센트가 살해 당했음을 주장합니다.

   디 마이오는 먼저 빈센트가 오른손잡이였다는 점을 꼽습니다. 빈센트가 자살을 할 생각이었다면 계획적이든, 충동적이든 오른손으로 총을 쐈을텐데 총상은 왼손과 더 가까운 배 왼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앞서 애초 그가 왜 굳이 확실히 숨통이 끊어지는 머리, 입, 가슴이 아닌 배에 총을 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합니다.


   디 마이오는 빈센트의 당시 기록에서 그의 상처 주변이 깨끗하고, 총알이 몸을 뚫지 못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짚습니다.


   법의학은 권총으로 인한 자·타살 감별에서 사정거리를 파악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로 꼽습니다. 총구를 피부에 딱 붙여 쏘면 접사, 약 0.5~1cm 거리에서 발사하면 근접사, 30~45cm 정도 거리에서 쏘면 근사, 이 이상을 원사라고 칭합니다. 총이야 어쨌건 화약으로 작동하는 만큼 접사에 가까울수록 옷에 그을음이 남고, 피부에도 적지 않은 화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지요. 


   디 마이오는 빈센트의 상처에 관한 기록들을 보고, 최소한 근사 내지 원사로 총알이 몸을 뚫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는 타살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되는 이는 동네 청소년들입니다. 요즘 시대로는 '날라리' 정도가 되겠습니다. 오베르를 정처없이 떠돌던 미숙한 사냥꾼이 아니었을까란 말도 있지요. 빈센트가 이들에게 살인죄를 씌우게 하고 싶지 않아 기왕 이렇게 된 것 에이 모르겠다, 이렇게 살 바에 죽는 일도 나쁘지 않겠지란 생각으로 자살을 주장했다는 설입니다. 당시 남의 작은 부탁 하나도 쉽게 거절하지 못할 만큼 소심했던 그였다면, 또 정신마저 불안정한 상태였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살설에 대한 반론도 충분히 있지요.


   특히 빈센트의 최후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보면 죽음을 상징하는 까마귀가 가득하다, 타살 아닌 자살을 암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 속 황금빛 밀밭에서 삶을 향한 의지를 느낀다는 말도 나옵니다. 실제로 휘갈긴 붓 터치로 담긴 밀밭에선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불안정한 하늘마저 노란 활기로 가득찰 것처럼요. '황금 밀밭이 까마귀를 압도하듯, 내 생도 변할 수 있다.' 최소한, 이 그림을 그린 순간 빈센트는 강렬한 생의 믿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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