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7년 I.M.F 사태가 터지고 아버지는
창고에 쌓아두었던 재고 중 일부를
집 마당 빈 공간, 비어두었던 몇 군데 방에
쌓아두셨다.
아마 창고 운영비를 내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상황이 어려우셨나 보다.
2.
재고 옮기는 걸 도와달라는 아버지 말씀에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호승심에 열심히 날랐던 게 기억난다.
3.
공간에 가득 찬 재고를 보면서
뿌듯한 마음에 좋아하던 나를 보며
아버지는 한마디 하셨다.
“재현아 창고는 항상 텅 비어있어야 하는 거데이.”
4.
고객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들거나 선정해서
영업을 열심히 하고
판매를 열정적으로 해서
재고 관리는 항상 ‘0’으로
수렴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5.
생각지도 못 한 상황에 처한 아버지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
그날부터 애쓰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의 공간은
텅 비었던 걸로 기억한다.
6.
5층 높이로 쌓아 올렸던
와인들이 한 층 한 층 낮아지더니
어느새 한 팔레트가
‘텅 비었다.’
7.
같이 일해 주시는 대표님이자 형님 덕분이다.
나는 사실 크게 한 일이 없다 ㅠㅠ
8.
아버지가 창고를 텅 비우기 위해 애쓰셨듯
지금 나는 팔레트를 텅 비우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9.
고향에 일이 있어서
해결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48살이었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때의 아버지와
지금의 팔레트를 기념하고 싶어서
글을 한번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