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HER를 다시 만나다
#1.
설날 아버지 차례를 마치고 어쩌다가 'her'를 다시 보게 되었다.
무료 영화로 보게 되었는데 한번 보다가 계속 보게 되었다
#2.
'사랑'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떤 이는 '사랑'이라는 말은 '살아가다'는 말의 명사형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생각할 사 '思'와 헤아릴 량 '量'이 조합된 '사량'이라는 말이 사랑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둘 중 어느 것이 맞건 간에, 사랑과 삶과 사람은 서로 뗄 수 없는 무엇임에는 분명하다.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사람도 없고, 사랑의 끼어듦이 없는 삶도 없다.
#2.
주인공은 beatifulhandwriting.com이라는 회사에 다닌다.
편지를 대신 써 주는 회사다.
이용자가 상대방과 찍은 사진이나 일기장을 보내주면 그에 맞게 편지를 써 준다.
편지를 잘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상대가 했던 말이나 행동과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쓰면 된다.
네가 그때 그랬는데, 나는 이랬다, 네가 그때 그런 말을 했는데 나는 이랬다…를 반복하면 된다.
허공에 흩어졌던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누군가가 기억하고 의미 있게 다시 선사해주었다는 것에 사람은 감동하게 된다.
중요한 건 필력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다.
대행 편지 업이 등장했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사회라는 거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가까운' 미래 사회가 이 영화의 배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여전히 삶에 녹아져 있다.
그것이 참 다행스럽긴 하다.
#3.
성서 창세기에는 신이 인간을 벌주다가, 봐주다가, 이해했다가, 용서해주는 상황이 자주 등장한다.
결국 창세기는 ‘신이 없더라도 너희는 정의롭고 올바르게 살 수 있느냐?’를 묻는다
그렇게 물으면서 성서는 몇 천년 동안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주었다.
우리는 이미 사랑과 삶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알고 있는 개념 자체는 너무나도 정확해서 이상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랑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영화에서는 수 천 줄 혹은 수 만 줄의 코딩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 사람을 올바르게 이끌어준다.
‘진짜 사랑’이 입력되어 있는 프로그램이
'진짜 사랑이란 이런 것이지 않아?'라고
진짜 사랑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묻는 사회가 이 영화의 배경이다.
#4.
PC 및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미래 사물인터넷의 본질은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알아서 ‘떠 먹여’ 주는 것이구나
자신도 모르게 옳고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주는 것이구나...
싶었다.
#5.
그때도 여전히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커버를 씌운다.
디자이너들이 좀 싫어할 듯.
수많은 실험과 연구와 회의를 통해 스마트폰을 디자인해서 내놓으면
사람들은 바로 커버를 씌우고..ㅠㅠ